올 오브 어 서든All of a Sudden1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Ryusuke Hamaguchi | France, Japan, Germany, Belgium | 2026 | 196 min | Fiction | 2026년 칸영화제 월드 프리미어 상영작
돌연함과 속도. 하마구치 류스케의 영화를 설명할 때 가장 먼저 자연스럽게 떠올릴 만한 단어들은 아니다. 〈올 오브 어 서든〉(2026)만 하더라도 그는 철학자 미야노 마키코와 인류학자 이소노 마호가 주고받은 서간집2을 세 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으로 스크린에 옮겼다. 원작의 두 사람은 각색을 거쳐 프랑스 요양원 원장 마리루(비르지니 에피라 분), 그리고 신작을 상연하기 위해 파리에 체류하는 도중 암이 악화되어 가는 일본인 연극 연출가 마리(오카모토 다오 분)로 변주되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질병과 결부된 ‘돌연함’은 사실 하마구치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속성이기도 하다. 그것은 삶에 실제적이거나 은유적인 균열을 내는 사건의 형태로 그려져 왔는데, 이를테면 그가 다큐멘터리에서 다룬 쓰나미, 〈아사코〉(2018)의 지진,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두 인물의 아내와 어머니를 각각 죽음에 이르게 한 뇌색전증과 산사태가 그러하다. 하마구치의 서사는 이런 맥락에서 인물의 내적 격변을 함께 통과하며 위기 이후 삶을 재건하려는 시도의 어려움을 따라가는 과정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해피 아워〉의 몇몇 인물이 겪은 추락을 떠올려 보라.)
어떤 일은 우리 손에서 벗어나고 또 어떤 일은 예기치 못하게 들이닥친다는 마리의 말은 현실의 통제 불가능성을 드러낸다. 동시에 그러한 현실을 하마구치가 담아내는 방식, 즉 충격과 은총을 오가는 연출을 암시하기도 한다. 〈올 오브 어 서든〉의 도입부는 마리루를 중심으로 그가 직업 면에서 겪는 어려움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다. 요양 보호사 둘이 퇴사하고, 직원들은 실습 기간 때문에 업무가 과중해졌다고 불평하며, 한 입소자가 사망한다. 이후 마리를 만나기까지의 과정은 우연의 연속인 한편으로 운명의 징후처럼도 그려진다.(두 인물의 이름이 놀랍도록 비슷하다는 점 또한 이를 뒷받침한다.) 트램 안에서 눈물을 터뜨리기 직전이었던 마리루는 차창 밖으로 도모키가 환하게 뛰노는 모습을 보고는 미소를 되찾는다. 도모키는 마리가 만드는 연극에 출연하는 배우의 손주이자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소년이다. 이후 마리루가 퇴근길에 사무실을 나서려는 순간 서류 더미 아래서 바로 그 연극의 전단이 나타난다. 국적은 다르지만 서로의 나라에서 공부한 두 여성, 마리와 마리루가 언어를 공유하는 과정을 다루며 하마구치는 일종의 ‘첫눈에 반한 우정’을 그려 낸다. 두 사람이 센강 변을 걷는 모습을 비추는 롱 테이크는 호기심과 경청의 시공간을 만들어 낸다. 극장에서 시작된 이 밤의 여정은 요양원까지 이어진다.
정신 의료 시설을 무대로 우리 사회에서 정신 질환자가 놓인 위치를 다룬 마리의 연극을 보며 마리루는 자신이 요양원에서 실천하고자 애써 온 ‘휴머니튜드humanitude’(인간 개인의 존중을 바탕으로 한 돌봄의 방식) 원칙이 메아리치고 있음을 발견한다. 공연이 끝난 뒤 다른 관객들을 위한 통역 없이 두 사람이 일본어로 나누는 대화는 그들 간 유대를 더욱 단단히 해준다. 둘은 연극 속 대사처럼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기”라는 목표를 공유한다. 의사들로부터 진작에 사망했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라는 진단을 받았음에도 삶을 향한 의지를 놓지 않는 마리의 태도는, 최악으로 치닫는 듯한 현실에서도 유토피아적 가능성을 열어 보려는 마리루의 염원과 교차한다.
〈열정〉(2008)에서 한 교사는 학생들에게 개인이 저지르는 폭력이란 사회가 가하는 외부적 폭력에 대한 응답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올 오브 어 서든〉에서도 울려 퍼지는데, 특히 어느 간호사가 도모키에게 조용히 해달라고 요청하자 마리루가 “그 아이는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기에 소리를 지르는 것”이라고 설명하는 장면에서 그러하다. 마리루를 요양원 원장으로 설정한 것은 결정적인 선택이었고, 이를 통해 하마구치는 실존적 테마를 구체적인 사회 현실에 가져다 놓는다. 그는 실제 요양원에서 영화를 촬영함으로써 이 현실을 다큐멘터리적으로 기록하는 동시에 픽션으로 재구성한다. 하마구치는 앞서도 이런 방향성을 뚜렷이 드러낸 바 있는데,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2023)에서 글램핑 개발 사업이 생태계와 공동체의 안녕보다 경제적 논리를 내세우는 현실과 한 여자아이의 불가해한 실종을 교차해 다뤘던 것이다. 〈올 오브 어 서든〉의 현실로 돌아오자면 요양원이 겪는 재정 압박은 돌봄 시간을 단축할 수밖에 없게 함으로써 환자와 돌봄 노동자 모두를 고통에 빠뜨린다.(영화는 2022년 프랑스 사회를 뒤흔든 요양원 운영 기업 오르페아Orpea 스캔들을 직접 언급하기도 한다.) 마리루와 마리는 제도에서 비롯한 폭력을 조금이나마 완화하고자 분투한다.
하마구치는 진정한 소통과 타인과의 윤리적 관계에 대한 탐구를 바탕으로, 몸의 자세와 숏의 기하학적 변주를 통해 추상적인 연결감을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데 재능을 보여 왔다. 이러한 연출력은 첫 장면에서부터 뚜렷이 드러난다. 마리루는 몸을 낮춰 입소자와 눈을 맞추고 손바닥으로 상대의 손목을 받쳐 부드럽게 움직임을 이끈다. 마리루와 마리의 관계 역시 서로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구축되는데, 특히 마리의 지지하고 연대하는 태도는 그가 마리루를 안아 주는 장면이나 두 사람의 시선을 엮는 숏/역숏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이를테면 마리루가 요양원 직원들 앞에서 자신이 꿈꾸는 개혁에 관해 이야기하는 순간에 그러하다. 하마구치의 명료하고도 온화한 연출은 눈 맞춤, 말 걸기, 귀 기울이기, 가능하면 환자로 하여금 눕기보다 앉거나 서 있도록 하기를 강조하는 ‘휴머니튜드’의 핵심 원리와 완벽히 호응한다. 아울러 마리가 요양원에서 진행하는 워크숍, 즉 참가자들이 줄을 이루고 리듬에 맞춰 천천히 나아가거나 서로 발을 마사지해 주는 활동과도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룬다.
한편으로 마리가 연극 무대 위에 거울을 설치하고 관객의 손에 악기를 쥐여 줌으로써 관객과 배우 사이 경계를 허물려는 것처럼 하마구치 역시 새로운 관계를 구성하고 실험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영화의 마지막 몇 분은 돌봄과 예술, 위험과 삶, 진지함과 사소함 사이의 익숙한 구분이 사라진 경이로운 시퀀스를 펼쳐 보인다. 도모키의 예측 불가능한 움직임과 보호사가 데려온 고양이의 난입, 한 입소자의 등장으로 혼란해진 가운데, 요양원 정원에서 펼쳐지는 마리의 연극은 그 어느 때보다 생동감 넘치는 장면으로 변모한다. 겉보기에 혼돈 같은 그 순간은 모두가 함께 나누는 기쁨으로 이어지며 다가오는 상실과 슬픔마저 넘어서는 생명력을 전한다.
〈올 오브 어 서든〉은 지적인 사유와 일상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는 듯 전개되는데, 궁극적으로는 삶 속에서 이론을 실천하고자 탐색한다. 이때 실천은 삶의 통제 불가능성과 존재의 덧없음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삶을 조금 더 견딜 만한 것으로 감싸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향해 있다. 영화는 노인들이 직립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하면서도 입소자가 넘어지거나 마리가 고통에 겨워 쓰러지는 모습 또한 포착해 보여 준다. 마리가 도표를 활용해 ‘지금, 여기’의 즉각성에만 몰두하는 자본주의가 어떻게 자연과 인간이라는 자원을 소모하며 인구 구조와 수면 패턴까지 교란하는지 설명하는 장면은 특히나 밀도 높게 구성되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이론적 사유는 아주 사소한 해프닝과 공존한다. 후반부에 낮잠에서 깬 마리루의 얼굴 위로 새똥이 떨어지는 장면에서처럼 말이다. 마리루는 현실의 예측 불가능성을 보여 주는 그 작은 사건에서 유쾌함을 발견한다. 이 영화의 철학은 인물의 대사뿐 아니라 호흡을 늦추는 방식이나 웃음에도 깃들어 있다. 하마구치는 충격 속에서, 심지어 추락의 순간에조차 은총의 기회를 발견해 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