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드 어드벤처The Dreamed Adventure
감독 발레스카 그리제바흐Valeska Grisebach | Germany, France, Bulgaria, Austria | 2025 | 167 min | Fiction | 2026년 칸영화제 월드 프리미어 상영작
먼지를 뒤집어쓴 차 한 대가 불가리아의 남동쪽 끝, 그리스와 튀르키예의 국경이 만나는 소도시 스빌렌그라드로 들어선다. 한때 카지노로 흥청거렸으나 고속도로가 모든 것을 실어가 버린, 이제는 국경 통과를 기다리는 화물 트럭들이 코를 맞대고 끝없이 펼쳐질 뿐인 도시다. 카메라는 한동안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온 한 남자가 물 한 병을 사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거는 모습을 따라다닌다. 9년 전, 감독의 전작 〈웨스턴〉(2017)에서 발칸의 바위산처럼 풍상 어린 얼굴을 보여 준 슐레이만 알릴로프 레티포프Syuleyman Alilov Letifov가 ‘사이드’라는 새 이름을 달고 돌아왔다. 비전문 배우를 기용하는 감독의 선택을 그 자체로 각별한 용기처럼 격상하는 한 경향이 미심쩍어질 무렵에 발레스카 그리제바흐의 영화는 명확한 필연성을 보여 준다. 풍화된 장소와 그곳을 떠도는 사람들의 얼굴이 각각의 퇴적층처럼 생생하게 자신들이 살아 낸 시간을 보여 주는 덕분이다.
크리스티안 페촐트, 앙겔라 샤넬렉, 토마스 아르슬란 등과 함께 베를린학파로 묶이곤 하지만, 발레스카 그리제바흐는 그중에서도 가장 끈질기게 서사의 문법 바깥에 머무르는 것처럼 보이는 감독이다. 그는 시나리오 대신 산문에 가까운 메모를 적는데 심지어는 이조차도 배우에게 건네지 않는다. 대신 입으로 들려준다. “쓰인 것과 실제로 일어나는 것 사이의 긴장”을 사랑한다는 감독의 말은 그리제바흐의 현장에서 관념이 아닌 치밀한 실천의 요약이다. 5년의 현지 조사 끝에 출연진의 절반 이상을 현지 주민으로 채운 〈드림드 어드벤처〉가 도달하려는 곳은 한갓 ‘사실적인 영화’라기보다 리얼리즘의 인력을 뒤집는 자리다. 픽션은 리얼리티의 권위를 빌려 그럴듯함이라는 지위를 얻곤 한다. 그리제바흐의 도큐픽션은 한발 더 나아가 사실과 허구의 위계질서를 무너뜨린다. 감독은 현실과 가장 가까운 환경을 찾아간 다음 인물의 동선, 장소의 배치, 상황의 설계라는 인위적 틀을 구축한다. 현실이 스스로 픽션을 분비하게 만들기 위해 유도하고 통제한 다음, 기다린다. 예컨대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처럼 실제 같은 술자리의 한담이 영화 후반부에 급소를 찌르고, 천장에 숨겨 둔 총은 학습된 긴장감을 일으킨 뒤 끝내 미미하게 잊히며, 주인공처럼 움직이다 불현듯 내러티브에서 사라졌던 남자는 뜻밖의 역할로 돌아온다. 느린 비정형의 영화 〈드림드 어드벤처〉는 그래서 관찰된 장소와 상황의 파편들이 감독이 치밀하게 계산한 서사의 인력 속에서 극적인 순간으로 변성되는, 조용한 연금술과도 같다.
생계를 위해 경유 밀수에 발을 들였던 사이드란 남자가 영화에서 갑자기 사라지고 나면, 167분에 이르는 영화의 무게 중심은 거의 감지되지 않을 만큼 매끄럽게 옛 연인 베스카(야나 라데바Yana Radeva 분)에게로 옮겨 앉는다. 고고학자인 여성이 국경 지대에서 고대의 유물을 발굴한다는 설정은 일종의 맥거핀이나 다름없다. 〈드림드 어드벤처〉가 파내고 있는 것은 땅속의 패물이 아니라 이미 표면에 드러나 있는 최근의 상처이기 때문이다. 영화 속 한 무리의 마을 여성들이 야만적이었던 1990년대를 떠올리며 “우리는 늘 두려웠다”라고 말할 때 공포는 과거형이 아니다. 국경 지대 갱단의 밀수와 인신매매로 굴러가는 그림자 경제는 이 지역에 뒤늦게 부과된 민주적 합법성보다 여전히 더 끈질기고 또렷하게 읽힌다. 이것은 공산주의가 도미노처럼 무너진 1989년 이후의 동유럽에 대한 베를린파 감독의 반성적 자각이자 고백이기도 하다. 무지와 공백으로 기록된 시간에 발레스카 그리제바흐는 남성적 권력과 경제, 섹슈얼리티의 각주를 덧붙인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그 남자들이 ‘사라진’ 자리에서 카우보이(이자 탐정)의 외투를 중년 여성에게 입힌다. 호기심과 피로, 장난기와 결기가 한 표정 안에 공존하는 얼굴로 이 대범한 구도를 감당해 내는 배우 야나 라데바가 데뷔작으로 혁명에 동참했다. 동시에 영화 제목이 약속하는 ‘꿈꿔 온 모험’의 주체로 나는 어렵지 않게 아버지 곁에서 TV로 서부극을 보던 어린 그리제바흐를 상상할 수 있었다. 그 세계에 자신을 동일시하면서도 자기 자리가 없음을 알았던 소녀는 훗날 〈웨스턴〉 이후 〈드림드 어드벤처〉를 만든다.
평범한 독일 노동자들이 서부극의 신화로 부풀어 올랐던 〈웨스턴〉이 그랬듯 〈드림드 어드벤처〉 역시 ‘미회수’가 윤리적 선택임을 알려 준다. 현실은 끝내 하나의 이야기, 하나의 장르, 혹은 하나의 꿈으로 결정화되지 않는다. 이것을 믿는 감독들은 어떤 카타르시스도 영화를 집어삼키지 못하게 한다. 〈드림드 어드벤처〉가 허락하는 단 한 번의 도주 장면, 그리고 가슴이 뛸 정도로 애틋한 재회 장면을 마주한 순간에 나는 깨달았다. 이 모든 (장르적) 짜릿함이 애초에,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들의 삶 속에 잠들어 있었다는 사실을. 빼앗긴 이름과 묻히지 않는 상처를 짊어진 얼굴들이 꾸는 변방의 꿈이 〈드림드 어드벤처〉에서 끝끝내 아름다운 이유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