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산드로 알론소의 삶과 작업에 관한 간략한 소개

때는 2001년, 아르헨티나 영화계는 훗날 ‘뉴 아르헨티나 시네마’라 불리게 될 세대교체의 흐름 속에서 새로운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공교롭게도 당시는 아르헨티나가 최악의 경제·사회적 위기를 겪던 시절이기도 했다.) 루크레시아 마르텔, 파블로 트라페로, 로드리고 모레노 같은 감독들이 막 데뷔하던 시기였다. 바로 그 무렵, 학업을 채 마치지 않은 한 젊은 영화학도가 첫 장편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그리하여 리산드로 알론소는 가족에게 빌린 돈과 소수의 스태프, 친구들의 도움으로 〈자유La Libertad〉(2001)를 완성한다. 〈자유〉는 아르헨티나 팜파스에서 살아가는 젊은 벌목꾼의 삶을 이야기한다. 혹은 이야기한다기보다 보여 주는데, 이때 벌목꾼이 통나무를 베는 동작처럼 느리지만 정교한 스타일을 취한다. 영화는 모든 서사적 장치나 형식적 기교를 멀리하면서도 단순한 다큐멘터리적 접근에만 머물지 않는다. 우리가 보는 것은 차라리 벌목꾼이 자기 자신의 한 버전을 연기하는 픽션이다. 〈자유〉를 처음 본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혹자는 지루하고 상상력이 결여된 영화라 했고, 심지어 훗날 이 영화의 배급을 맡게 된 이조차 감독에게 “이건 영화가 아니다”라고 했을 정도다.

 

상황이 바뀐 것은 당시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부에노스아이레스 국제독립영화제(BAFICI)의 집행 위원장 에두아르도 안틴(일명 킨틴Quintín)이 VHS 테이프로 이 영화를 보고는 깜짝 놀라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대하기로 하면서부터다. 이후 일은 좋은 의미에서 더 복잡하게 흘러갔는데,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머물던 칸영화제 작품 선정 담당자가 거의 동시에 알론소 영화의 가치를 알아보고는 그 이름난 프랑스 영화제에 초청한 것이다. 다만 조건이 하나 걸렸다. 원래 〈자유〉의 엔딩은 주인공 미사엘 사아베드라가 카메라를 응시하며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웃음을 터뜨리는 장면이었는데, 프랑스 측에서 해당 숏을 삭제해야만 칸영화제에 초청할 수 있다고 요구한 것이다. 경험이 적었던 젊은 감독은 조건을 받아들였고 오늘날 전설로 회자되는 그 숏은 최종본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자유〉는 마침내 2001년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서 상영되었고 (영화감독 클레르 시몽을 비롯한 당시 심사 위원 몇몇의 말에 따르면) 권위 있는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할 뻔하기도 했다. 결국은 아무런 상도 받지 못한 채 칸을 떠나기는 했지만 영화는 평단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비평가들은 그 작품에서 새로운 작가주의 감독의 탄생을 목격했다. 이후 알론소가 발표한 작품들은 그의 재능을 입증했을 뿐 아니라 그 정교한 스타일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보여 줬다. 〈죽은 사람들Los muertos〉(2004)과 〈리버풀Liverpool〉(2008), 그리고 메타시네마적 실험이라 할 수 있는 〈판타스마Fantasma〉(2006) 모두 엄밀하고 금욕적인 영화 미학을 향한 알론소의 비전을 더욱 공고히 해줬다.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이른바 ‘국제적 시기’라 부를 만한 단계가 이어졌다. 그 시기에 알론소의 영화는 초기 제작 방식을 뒤로하고 국제 무대를 정복하기 위해, 또 모든 감독의 ‘흰 고래’와도 같은 칸영화제와 그 공식 경쟁 부문 진출이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갔다. 이를테면 〈도원경Jauja〉(2014)과 〈유레카Eureka〉(2023)는 둘 다 알론소가 접근법을 바꾸는 동시에 더 밀어붙인 결과물이다. 비고 모텐슨, 키아라 마스트로이안니 등 국제적 배우들을 기용하고,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오랜 협업자로 알려진 촬영감독 티모 살미넨과 같은 유명 기술진과 함께했으며, 다양한 서사 층위가 하나의 퍼즐처럼 맞물리지만 결국 조각들이 완벽하게 들어맞지는 않도록 하는 화려한 스타일을 선보였다. 이제 알론소의 영화는 엄격한 연출을 바탕으로 한 미니멀한 이야기가 아니라, 꿈과 현실이 교차하고 지리적 공간들이 뒤얽히는 복잡한 서사를 갖추게 되었다. 그 안에서도 알론소의 재능은 몇몇 장면이나 시퀀스에서 번뜩이지만 초기작들이 보여 준 완결된 형태로는 구현되지 못했다. 그러다가 〈유레카〉 촬영을 개시한 무렵 팬데믹이 창궐한 탓에 제작에 난항을 겪은 점,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서 잇따라 낙선한 점이 감독으로 하여금 아르헨티나의 팜파스와 자신의 첫 영화로 되돌아갈 생각을 하게끔 이끌었다고 추측해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그에게는 다시 ‘자유’로 돌아갈 순간이 찾아왔다.

 

자유로 돌아가다

〈두 배의 자유La libertad doble〉(2026)의 관객은 도입부를 보고 영화가 〈자유〉의 리메이크작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2001년작에서처럼 첫 장면은 상의를 벗은 채 밤에 홀로 식사하는 미사엘 사아베드라의 모습이며, 배경에서 번쩍이는 번개가 폭풍우의 조짐을 나타낸다. 물론 시간이 흘렀고 주인공은 더 이상 소년이 아니라 성인 남성의 얼굴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삶은 변함이 없다. 나무를 베고 생필품을 사며 하루가 끝나 밤이 오기를 기다린다. 심지어 첫 영화 속 개와 닮은 하얀 개가 그의 곁을 지킨다. 감독은 전과 같은 인내와 섬세함으로 주인공의 일과와 공간을 묘사하며, 초기작에서 보여 준 엄밀함을 되찾아 문명에서 멀리 떨어진 채 구속 없이 살아가는 삶을 끈기 있게 담아낸다.

 

하지만 모든 것이 그대로인 것은 아니다. 변한 것도, 곧 변하게 될 것도 있다. 영화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주인공에게 여동생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여동생은 국가가 운영 예산 지원을 중단한 탓에 폐쇄 위기에 처한 병원에 입원해 있다. 이러한 제스처(이러한 캐릭터의 창조)를 통해 알론소는 뜻밖의 시도를 감행한다. 바로 동시대 아르헨티나의 사회상을, 특히 병원, 학교, 문화 공간 등의 기관들이 방치된 현실을 논평하는 것이다. 여동생은 결국 병원을 떠나 오빠의 돌봄을 받게 된다.(칠레 출신 배우 카탈리나 사아베드라가 놀라울 만큼 사실적으로 여동생을 연기했는데, 두 배우는 우연히 성이 같을 뿐 혈연관계는 아니다.) 자발적으로든 비자발적으로든 세상과 단절된 두 인물을 그리면서 알론소는 전작들에서 이처럼 명시적으로는 볼 수 없었던 어떤 요소를 더한다. 바로 두 인물이 주고받는 ‘돌봄’이라는 개념이다. 그들은 작고 단출하지만 엄연한 둘만의 사회를 만들어 낸다. 서로 돌보며 함께 살아갈 존재가 생긴 것이다. 그와 동시에 어떤 감정이, 절제되었고 침묵에 가깝지만 그럼에도 분명한 감정이 자라난다.

 

〈자유〉가 공개된 이후 25년이 흘렀다. 당시 첫 영화를 연출했던 리산드로 알론소의 나이와 거의 맞먹는 시간이다. 그동안 영화계뿐 아니라 세상 자체가 달라졌다. 3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일어난 변화를 일일이 열거하자면 끝이 없고 그럴 필요도 없을 것이다. 다만 영화라는 매체의 측면에서 몇 가지 변화를 짚어 보자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결정적인 전환, 소셜 미디어를 통한 이미지의 출현(그리고 강제적 소비)을 들 수 있겠다. 이러한 변화는 영화에 대한 인식뿐 아니라 관객이 소비하는 이미지 자체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이 시대에 〈두 배 자유〉를 보는 것은 마치 영화의 과거로, 아주 멀지는 않아도 분명히 지나간 과거로 돌아가는 경험처럼 느껴진다. 그 과거에 영화는 다른 무엇일 수 있었다. 현대 사회를 지배하는 자본의 논리와 숨 가쁜 속도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언어를 갖춘 하나의 예술일 수 있었던 것이다.(반면 오늘날 칸영화제 출품작을 둘러보면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제작비 규모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어쩌면 영화란 그런 것일 터다. 우리가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영원한 과거 말이다. 뤼미에르 형제 중 한 명이 영화는 “미래 없는 발명품”이라고 했을 때, 그는 영화가 순수한 과거 그 자체라는 사실을 말하려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다만 그 과거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알론소가 그의 영화를 통해 겪어 온 것과 같은 여정을 거쳐야 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