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수연 감독의 다큐멘터리 〈수궁〉은 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는 그의 첫 영화다. “처음 영화를 꿈꾼 30년 전부터 언젠가는 내 영화도 영화제에 갈 수 있을까, 생각했지만 요원한 일인 줄 알았다”는 그는 “선정 소식을 듣고 실감이 바로 나지 않았는데 다음 날 가슴이 벅차올랐다. 관객을 만날 생각에 떨리지만 한편으론 신난다”고 환호했다. 〈수궁〉은 국내 4대 국창 가문의 마지막 전수자 정의진을 중심으로 30년이 걸려야 이름 석자를 얻는 소리꾼의 길을 담담히 비춘 작품. 150년 전 왕 앞에서 소리를 하던 어전 광대 정창업의 증손녀이자 대한민국 최초 판소리 인간문화재 정광수의 딸 정의진은 여든을 앞두고 가문의 소리이자 사라져가는 수궁가를 물려주려 하지만 전수자를 쉽사리 찾을 수 없다. 유 감독은 “전주에서 공연하는 장면을 찍기도 했다”면서 ‘소리의 고장’ 전주에서 영화를 처음 선보이게 된 걸 반가워했다.


〈수궁〉 이전에도 소리와 연관된 작품을 한 적이 있나.

20대 중반부터 시나리오를 쓰면서 영화 관련 학과의 석·박사 학위를 땄다. 연출은 감히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아이 둘을 낳고 6년간 경력 단절 이후 다시 박사 과정을 하면서 2017년 직접 〈어릿광대〉라는 단편 극영화를 연출하게 됐다. 국악을 하는 어린 신동에 관한 25분 길이 영화였는데 당시 유명했던 국악 신동 표지훈을 캐스팅해 대한민국의 입시 제도 문제점을 드러내고자 했었다.

 

〈수궁〉은 정의진 명창이 중심이지만전승그 자체에 초점이 맞춰진 다큐멘터리로도 느껴진다.

촬영을 시작하기 전까지 전승이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것, 스승에서 제자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전수자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그 부분을 전하고 싶었는데 기쁘다.

 

이 작품의 출발점이 궁금하다.

정의진 명창은 국악 쪽에서 70대에 박사 학위(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를 받은 유일한 분이다. 박사 학위 논문을 쓸 때 지도 교수가 〈수궁〉의 기획자인 허혜정 교수였다. 정의진 선생의 논문을 읽고 가문의 소리를 알게 된 허 교수가 다큐멘터리를 찍자고 권했는데, 정의진 선생이 세 번을 거절하고 네 번째 설득 끝에 응한 것이다. 나도 친분이 있던 허 교수의 제안으로 참여하게 됐는데 다큐멘터리가 이렇게 길고 어려운 작업인 줄 미처 몰랐다. 2020년 1월 첫 촬영해 마지막 촬영이 2022년 11월이었다. 완성까진 40개월이 걸렸다.

 

초창기 기획 의도에서 달라진 부분도 있을까.

처음엔 정의진 선생의 2020년 완창 공연과 중앙문화재 심사가 주된 내용이었는데 중앙문화재에서 탈락한 정 선생이 ‘이대로 포기할 수 없다’ 하면서 ‘내가 아버지 이름으로 앞으로 1년 동안 어떤 방법으로든 대회를 만들 테니 유 감독이 1년 더 찍어서 영화의 엔딩을 아버지 대회를 여는 것으로 하자’ 제안하기에 받아들였다. 정의진 선생이 동료, 선배, 아버지의 제자들, 친구들 등 많은 이에게 도움을 청하고 힘을 모아 대회를 만들어갔다. 양암제 소리를 전승하고자 하는 열망이 처음 만났을 때보다 더욱 강하고 절박해졌다. 그리고 내게 마음의 문을 열면서 어딜 가든 같이 다녔다. 남원, 순창, 사천, 경주, 광주, 전주, 익산, 나주, 함평 등 안 가본 판소리 대회가 없을 정도로 스무 군데 가까이 심사와 공연 일정을 따라다녔다. 그렇게 그들만의 리그에 다가가 은밀한 이야기를 듣게 됐다. 〈수궁〉에 대략 열 명의 인간문화재가 나오는데 사실 장시간 인터뷰에 참가해준 인간문화재가 스무 명에 가깝다. 여성 소리꾼 중심으로 서사를 진행하다 보니 남자 소리꾼들은 다 담지 못해 아쉽지만, 그들 이야기 덕분에 영화가 깊이를 갖게 됐다.

 

일제강점기에 소리를 지켜나간 이들의 이야기는 이전엔 잘 접하지 못했던 내용이다.

나 역시 2020년 정의진 선생을 만나기 전까지 소리에 대해 지식이 하나도 없었다. 선생을 만나고 다큐를 찍게 되면서 여러 책과 논문, 영상을 보고 공부하며 판소리에 빠져들었다. 그러면서 권번, 관극시를 알게 됐다. 일제강점기에 우리 소리를 기록하게 도움을 줬던 이영민의 이야기를 꼭 영화에 넣고 싶었다. 정광수 선생은 동일창극단을 하며, 만주 지역의 우리 동포, 전라도 부락 등을 찾아가 판소리 위문 공연을 여러 차례 했다는 증언도 들었다. 이번 영화에 다루기엔 자료가 부족했었기에 기회가 된다면 동일창극단이 만주 지역에서 어떤 활동을 했는지 당시 기록과 영상을 찾아보고 싶다. 일제강점기 내 나라에서 일본말로 창을 하라 해 서러웠을, 오히려 타지에 가 내 나라말로 실컷 소리 질렀을 그들의 만주 이야기가 궁금하다.

 

〈수궁〉에는 소리꾼이 천대받은 설움, 생계 문제, 그런 어려움 속에 꽃핀 예술혼을 폭넓게 담았다. 촬영하며 가장 기억에 남았던 소리꾼이 있다면?

이런 말씀을 한 조영숙 선생이다. “즈그 할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그걸 숨기고 살았던 얘기야. 나는 그럴 필요없단 말이야. 누가 뭐래? 나는 다 까발려! 나! 조자 몽자 실자 소리하는 광대 딸이다 이 말이여!” 이 순간 촬영하다 소름이 끼쳤다. 그 당당한 말투와 눈빛에서 진정 살아 있는 예술혼을 봤다.

 

정의진 명창이 완성된 영화를 봤는가. 다른 소리꾼들의 근황도 궁금하다.

정의진 선생은 4월 8일 시사회를 통해 처음 보는데(인터뷰는 3월에 진행됐다) 반응이 나도 궁금하다. 이지선 선생은 완창 발표회를 준비하면서 노래방 잘 운영하고 있고, 윤은서 씨도 인천 시립 국악단에서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다슬 씨는 광주 본가에 내려가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부모님 간호하고 소리는 잠시 쉬면서 지낸다.

 

〈수궁〉이 우리 전통 소리, 전승자들에게 어떤 역할을 하길 바라나.

100년 후에도 판소리를 하고 판소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때 이 작품을 보게 된다면 100년 전 이렇게 치열하게 소리를 지켜갔다는 걸 알아줬으면 한다. 또 일제강점기 우리 소리를 지켜낸 많은 선생들의 이야기를 기억해주면 좋겠다. 소리란 무엇인지, 소리를 지켜간다는 건 무엇인지, 이어지는 작품에서 더 깊이 있게 다루고 싶다.

 

이미 차기작에 착수한 건가.

91세 조영숙 선생을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를 3월부터 촬영하고 있다. 1950년대 여성국극을 한 유일한 생존자이고, 70년 동안 쉬지 않고 창극을 한 국악의 산증인이다. 여성국극, 박탈, 창극, 승무를 중심으로 일제강점기 남자 소리꾼들의 이야기와 분단이 가져온 우리 소리계의 변화, 그러니까 북으로 간 소리꾼들의 이야기와 함께 〈수궁〉에서 미처 말 못 한 이야기를 신나게 춤추며 해볼 예정이다.

유수연 Suyeon YOO

1977년 대한민국 태생. 단편 〈어릿광대〉(2018)를 연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