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민 감독은 〈당신으로부터〉에 누군가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을 담았다고 말한다. 이 작품은 비슷한 사건, 대사, 에피소드를 공유하는 세 개의 챕터로 이뤄져 있다. 각 챕터의 이야기는 주인공의 고민, 욕망, 소망이 드러나는 과정을 따라간다. 신동민 감독은 픽션적인 접근과 논픽션적인 접근을 뒤섞으면서 작품 속 주요 인물의 삶이 투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을 그린다. 그것은 ‘당신’의 삶이 ‘나’에게 투명하게 와닿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당신으로부터〉라는 제목은 이 작품의 모티브가당신에게 있음을 암시하는 것 같다.

이 영화의 제목은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리면서 지은 것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이후에 아버지와 나 사이에 닮은 구석이 여럿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때 아버지와 함께 영화를 찍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할 즈음에 어머니가 꿈속에서 아버지를 자주 만난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만약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눈다면 어떤 대화를 나눌지, 두 사람이 어떤 마음을 주고받을지를 상상하면서 이 영화를 만들었다.

 

이 영화는 총 세 개의 챕터로 이뤄져 있고, 한 챕터를 다른 챕터와 느슨하게 연결하는 방식을 따랐다. 이 영화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어떤 고민을 했는지 궁금하다.

영화를 세 개의 챕터로 나눈 이유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 제작비 때문이다. 영화를 만들 때 하고 있던 일을 그만둘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지 고민하던 중 세 개의 챕터로 나뉜 영화를 떠올렸다. 촬영은 매주 틈틈이 진행했다. 그런데 이런 제작 방식은 전체 촬영 일정이 기약 없이 길어질 수 있기에 배우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챕터마다 주인공을 다르게 설정했다. 외적인 고민만 한 것이 아니라 내적인 고민도 했다. 전작 〈바람아 안개를 걷어가다오〉를 만든 이후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여러 사람이 다른 시간을 살았어도 서로 같은 시간을 공유할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외에도 영화에 대한 고민, 어머니의 뱃속에서 사라진 형제들에 대한 고민, 부자가 되고 싶은 어머니에 대한 고민 등이 뒤섞여 지금과 같은 형식이 나온 것 같다.

 

세 개의 챕터를 연결하는 방식이 독특하다. 1부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 대사, 사건이 2부에도 등장한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마치 세 개의 평행 세계를 본 느낌이 든다.

모든 챕터의 주인공을 같은 인물로 설정하면 촬영이나 연출이 쉬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방식이 최선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각 챕터에 등장하는 인물이 각자가 속해 있는 세계에 존재하기를 바랐다. 그들은 닮아 보여도 같은 존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만약, 그 등장인물들이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이라면 어떨까? 가족은 같은 유전 정보를 가지고 있지만 서로 다른 존재이다. 이런 식의 고민을 오랜 시간 동안 하고 나니 비로소 등장인물들 사이의 차이가 보이더라.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각 인물을 별개의 존재로 바라볼 수 있었다. 최종적으로 전체 영화 구성은, 앞선 챕터에 등장하는 인물의 소망이 이어지는 챕터에 등장하는 인물에 의해 이뤄지는 방식을 따랐다.

 

세 챕터 모두 픽션적인 요소와 논픽션적인 요소를 뒤섞는 방식으로 연출되었다.

사실 많은 것들이 픽션이고, 많은 것들이 논픽션이다. 더 이상 픽션과 논픽션을 나누는 것은 무의미하며, 또 둘은 나눠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 영화를 픽션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야기를 만들고 그것에 접근하는 방식은 논픽션에 가깝다. 3부에서 나와 내 어머니의 존재가 논픽션의 요소가 된 것처럼, 1부와 2부에도 논픽션의 요소가 여럿 쓰였다. 1부에 등장하는 의상학과 학생 민주 역을 맡은 강민주 배우는 실제 의상학과 학생이다. 그리고 강민주 배우와 함께 출연하는 일부 배우들은 실제 강민주 배우의 친구이다. 2부에 등장하는 오디션을 앞둔 배우 승주 역을 맡은 이금주 배우는 실제로 배우이다. 그리고 이금주 배우와 함께 출연하는 일부 배우들은 실제 이금주 배우의 가족이다.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의식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당신으로부터〉는 그런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는 것 같다.

연기와 영화는 비슷한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둘 다 이야기를 만드는 작업이고, 그 작업의 핵심이 되는 이야기는 곧 시간이다. 연기와 영화는 끊임없이 흘러가는 시간 또는 이야기 속에서 이뤄지는 모험과 같다. 내 모험은 호기심에서 시작됐다.

 

1부의 주인공인 민주는 누군가가 궁금하고 또 그 사람이 되고 싶어서 연기를 해보고 싶다고 말한다. 배우가 되고 싶다는 민주의 소망에는 연기 또는 영화에 대한 감독의 생각이 반영된 것인가?

연기와 영화는 비슷한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둘 다 이야기를 만드는 작업이고, 그 작업의 핵심이 되는 이야기는 곧 시간이다. 연기와 영화는 끊임없이 흘러가는 시간 또는 이야기 속에서 이뤄지는 모험과 같다. 내 모험은 호기심에서 시작됐다. 영화를 통해 누군가를 이해할 수 있고, 표현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작업을 시작했다. 기왕이면 조금 더 정확하게 표현하고 싶은 마음에 실제 인물을 등장시켰다. 물론 내가 어떻게 연출해도 영화 속 인물과 실제 인물은 같아질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내 영화는 초상화와 같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자기 자신을 연기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어머니의 자화상이 될 수 있다. 오랜 시간 동안 나는 진짜와 가짜를 감별하려고 했는데, 이번 작품을 만들면서 그런 부분에 대해서 깊이 고민했다. 그리고 이런 고민을 끝마치고 내게 남은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니, 그건 그저 내가 영화를 찍었다는 사실뿐이더라. 결국 영화와 연기는 누군가를 이해하는 과정이고 누군가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각 챕터마다 유령을 형상화하고 있다. 그런데 챕터가 바뀌면서 유령의 모습도 바뀐다.

〈바람아 안개를 걷어가다오〉(2020)를 만들면서 의도하지 않았지만 죽음의 이미지를 느낄 수 있었다. 이번 작품은 죽은 것들을 되살려야겠다는 다짐을 갖고 만들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이게 만들고 싶었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니까. 또, 보이는 것을 보이지 않게 만들려고 했다. 관객들이 죽음에 대한 서로 다른 상을 그리기를 바라면서 이 작품을 만들었다.

 

죽음, 장례식, 유령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출발점과 도착점에는 모두 죽은 자에 대한 애도의 의미가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도는 산 자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죽음은 문자 그대로 누군가의 삶이 끝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나. 만약 내가 아버지를 위하는 마음이 앞섰다면, 이 영화를 찍지 않는 게 맞는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살아 있는 사람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애도란 남은 자들이 더 잘 살 수 있도록 마음을 다스리는 과정일 것이다. 이 영화의 출발점은 나의 욕심에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이 영화의 도착점은 살아 있는 자들이 더 나은 상태로 변하길 바라는 마음에 있는 것 같다.

신동민 Dongmin SHIN

동아방송예술대학교 영화예술과와 용인대학교 영화영상학과를 졸업했다. 극영화 〈바람아 안개를 걷어가다오〉(2020)와 실험영화 〈당신에 대하여〉(2020)를 연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