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영화 〈콜럼버스〉(2017)에 이어 두 번째로 전주를 찾은 코고나다 감독은 안드로이드 ‘양’을 통해 시간과 기억, 사랑과 상실에 관해 이야기한다. 최근 드라마 「파친코」에서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정체성을 탐구한 그는 〈애프터 양〉에서 고민의 영역을 인간 밖으로까지 확장한다.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의 문을 열, 개막작 〈애프터 양〉의 감독 코고나다를 만나 영화에 관한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원작이 된 알렉산더 와인스틴의 단편소설 「양과의 안녕 Saying Goodbye to Yang」은 어떤 경로로 접했는가. 원작과 각색 각본의 차이점은?

제작자 중 한 사람인 테리사 박이 알렉산더 와인스틴의 단편집 『미래 신세계의 아이들 Children of the New World』(2016)을 주며 각색해 보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지 물었다. 「양과의 안녕」은 이 단편집의 첫 번째 작품이자 뇌리에서 떠나보낼 수 없는 작품이었다. 단순한 이야기이면서도 기억, 상실, 가족, 정체성, 슬픔 등 내가 흥미를 느끼는 많은 요소를 담고 있었다.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일상적인 삶의 맥락에서 전개된다. 나는 시간과 기억, 그리고 상실의 층을 더욱 깊이 들여다보고 싶었고, 이야기를 확장시켰다.

 

양은 중국인처럼 보이고 그 기대에 맞게 행동하지만 이 모든 특성은 디자인되고 프로그램되었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 아시아인이라는 것의 정체성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나는 양이 아시아성(Asianness)의 구성체라는 데 상당히 심취했다. 나를 비롯해 수많은 아시아인 디아스포라들이 자신의 조국, 자신의 역사, 자신의 문화와 단절된 상태에서 아시아인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알기 위해 고심한다. 그래서 우리의 아시아성은 종종 갖가지 인식과 조정에 말미암은 구성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양, 그리고 자신의 아시아성을 이해하고자 하는 양의 열망은 그의 외양이나 실상을 떠나 내게 절실히 와닿을 수밖에 없었다.

 

원작에서부터 양은 남성으로 설정되었다. 이것은 ‘보편성’으로서의 남성일까? 아니면 양이나 가족들에게 구체적인 의미가 있을까? 이는 양과 아다와의 관계에 영향을 끼쳤을까?

양은 남성성의 구성체인 동시에, 이상적인 손위 남자 형제의 구성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작중 세계는 손위 여자 형제를 구입할 수도 있는 세계다. 베타 저장소 장면을 보면 여성 버전의 양이 현관문을 열어주기도 한다. 어느 쪽일지는 가족과 자녀의 편안하고 쾌적한 삶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소비자로서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안드로이드 소재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 어떤 영화들을 참고했는가. 동시대의 기술 환경이 원작의 아이디어를 발전시킬 때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항상 〈블레이드 러너〉(1982)의 레이철이 영화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매력적이고 감동적인 안드로이드 캐릭터라고 생각해 왔다. 레이철은 지극한 감정과 본성을 지닌 존재로, 대부분의 영화에 등장하는 AI와 다른 종류의 긴장을 야기한다. 그녀는 물리적 위협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감정적 위협으로 다가온다. 영혼이 있는 듯 보이는 존재에게 애착을 형성한다는 위협이다. 그리고 우리는 좋든 싫든 이미 감정이 기술과 깊숙이 뒤얽힌 시대에 진입해 있는 것 같다.

 

당신의 전작과 이 작품 모두 헤일리 루 리처드슨이 연기한 유럽계 여성과 아시아계 남성(또는 그렇게 생긴 존재)과의 플라토닉한 관계를 다루고 있고, 가족에 대한 애도의 과정을 거쳐 진행된다. 이 연속성엔 의미가 있을까.

상실과 사랑은 서로 관련돼 있다. 우리가 애도를 하는 건 상실과 사랑을 둘 다 느낄 때다. 나는 서서히 자각되는 슬픔이라는 아이디어가 흥미롭다. 슬픔의 가능성이란 어떤 때는 거저 주어지지 않고 붙잡아야 하는 것이다. 일시적인 소울메이트라는 개념도 주요 관심사 중 하나다. 잠깐이더라도 필요한 순간에 우리는 다른 이와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이 관계들은 로맨스의 성질을 띠겠으나, 전통적 의미의 로맨스와는 다른 의미일지 모른다.

 

콜린 패럴, 조디 터너스미스, 저스틴 H. 민, 말레아 엠마 찬드라위자자의 캐스팅은 어떻게 진행되었는가?

콜린 패럴이 이 영화에 관심을 보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꿈만 같았다. 그는 큰 영화에서든 작은 영화에서든 언제나 굉장한 몰입도와 존재감을 보여줬다. 말레아 엠마 찬드라위자자는 LA 갤럭시 축구 경기에서 미국 국가를 열창한 영상이 화제가 되며 알게 됐다. 에이전트가 말레아를 데려왔을 때는 한눈에 범상치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저스틴 H. 민에 대해 말하자면, 나는 그가 양으로 나오는 걸 본 순간 그의 목소리, 그리고 진실과 미스터리가 공존하는 듯한 그의 놀라운 분위기에 곧장 매료됐다.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고 끌어당기는 힘이 있는 데다 무척 겸손한 배우였고, 양의 적임자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끝으로, 나는 조디 터너스미스가 마지막 순간에 출연진에 합류하게 된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모두에게 말하고 다녔다. 이미 촬영에 돌입한 상태에서 원래 키라 역에 캐스팅됐던 배우가 출연하지 못하게 되는 바람에 캐스팅을 다시 진행해야 했다. 그래서 조디가 뉴욕으로 와 콜린과 함께 대본을 읽어보게 됐는데, 키라가 조디를 위해 준비된 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이틀 후 그녀가 촬영에 들어가 모든 장면을 끌어올리기 시작하자, 그제야 작중 가족이 제 모습을 찾고 깊이를 드러낼 수 있었다.

 

영화는 테크노 사피엔스라는, 인간과 유사하게 생겼고 유사하게 행동하는 낯선 존재의 정신을 탐구하는 과정이다. 하지만 주인공 제이크는 양의 기억 일부에 직접 접속함으로써 오히려 주변 인간들에 대해서 보다 더 많은 것을 알게 된다. 인간을 모방하는 기계로서 테크노 사피엔스는 인간보다 이해하기 쉬운 존재일지도 모른다. 제이크는 양을 이해한 것만큼 아내와 딸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면에서 보면 우리 모두 양인 것 같다. 누구의 마음을 열어 보든 우리는 그의 사랑과 상실, 관심사와 일상성의 세계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모두 시간의 현현, 시간의 심오한 의식이다. 다른 이를 이해한다는 건 과연 어떤 의미일까? 우리는 누구나 미스터리이기도 한 터다. 그렇지만, 나는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이해하려는 시도 자체가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우리는 흔히 자기 자신에게만 몰두하는데, 우리의 인간성과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존재 의미는 다른 이들에 대한 이해를 진정으로 추구할 때라야 뜻깊은 전기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코고나다

첫 장편영화 연출작 〈콜럼버스〉는 제33회 선댄스영화제와 제18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 콜린 패럴이 주연한 두 번째 장편영화 〈애프터 양〉에서는 〈콜럼버스〉 때처럼 연출과 각본을 함께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