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사이드 노이즈 Outside Noise
Germany, Korea, Austria┃2021┃61min ┃전주시네마프로젝트
다니엘라는 앞으로 무엇을 할지, 그리고 어디에서 살지에 대해 고민이 많다. 미아는 즉흥적으로 시작했던 석사 학위가 끝나가는 단계에 있다. 비엔나로 이주를 생각하고 있는 또 다른 친구인 나타샤까지. 이들은 떠돌며 이야기를 나눈다. 세상이라는 외부의 소음에서 벗어 나려는 시도를 그린 〈아웃사이드 노이즈〉의 자연스럽고 사실성 높은 대사는 비전문 배우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이루어졌다. 아날로그 질감의 16mm 이미지와 방황하는 인물을 내세워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해온 테드 펜트 감독의 네 번째 장편이다.
테드 펜트 감독의 〈아웃사이드 노이즈〉는 디지털 시대에 노마드처럼 도시를 떠돌며 사는 젊은이들이 우연히 만나는 인연을 그린 작품이다. 테드 펜트는 젊은 작가이지만 장인 정신을 지닌 감독으로 16mm 카메라와 필름을 사용해 손으로 대부분의 작업을 완성했다. 이 감독의 영화는 소수의 스태프로 만들어질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자신들만의 작은 세계를 창조하는 독특한 지위를 구축하고 있다. 대안적이고, 독립적인 작업을 지속한다는 지점에서 전주국제영화제의 정체성과 맞닿은 감독이라고 할 수 있다.
전주와의 첫 만남을 기억하는가?
어린이날이어서 교통 체증이 심했다. 덜컹대는 버스를 타고 긴 시간을 달린 끝에 전주에 도착했을 때는 정말 커피와 케이크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넬레 볼라츠 감독과 ‘하루일기’라는 아주 멋진 카페에 갔다. ‘하루일기’며 ‘경우’, ‘백희 아트 스페이스’, ‘목련을 부탁해’ 모두 얼마나 그리운 카페들인지 모른다! 다들 팬데믹 시기를 잘 버텨내기를 바란다.
영화에 여러 도시가 나온다. 특별히 그 도시들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먼저, 뉴욕. 다니엘라가 뉴욕에 왔었다. 그 김에 한 장면 촬영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뉴욕 최고의 장소이자 최악의 장소로 손꼽히는 타임스 스퀘어보다 이 촬영에 최적인 곳은 없었다. 베를린 쇠네베르크는 미아와 함께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처음 생각했을 때 미아가 살던 곳이었다. 나중에 나도 그곳에 살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비엔나의 파보리텐인데, 다니엘라가 살고 있었고, 또 비엔나에서 오스트리아인들도 어디인지 단번에 알아챌 수 없는 그런 곳 이어서 마음에 들었다.
배우들과 함께 대사나 시나리오를 유기적으로 작업한다고 들었다.
다니엘라와 미아가 지닌 개성에서 내가 흥미롭게 여기고 이번 작품의 중심축으로 삼고 싶었던 특정 부분들을 바탕으로 느슨하게 캐릭터를 만들려고 했다. 처음에 썩 훌륭하다고 할 수 없는 대본이 일단 있긴 있었는데 두 사람이 당연한 듯 거부했기 때문에, 이후로 다시 펼쳐보지도 않았다. 그래서 촬영을 앞두고 몇 달 동안 각 장면을 놓고 토론하면서 다시 써나갔다. 두 사람, 그리고 영화에 나오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내가 처음에 갖고 있던 것보다 훨씬 좋은 아이디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정말 최고의 동료들이었다. 그 결과 각 장면에서 이야기될 토픽들이 순조롭게 정해졌고, 각자의 대화 내용은 촬영 현장에서 모든 사람이 말로 ‘쓴’ 것이나 다름없다.
〈아웃사이드 노이즈〉는 여성들의 정서가 매우 섬세하게 표현된 작품이다. 전반적인 톤을 유지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했나?
너무 단순화시켜 말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영화의 전체적인 톤이란 카메라에 포착돼서 영상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되는 캐릭터들의 개성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배우들이 서로 편안하게 어우러졌고, 영화는 그들이 연기하는 캐릭터와 그들 사이의 분위기를 포착해서 전달하게 된 것이다.
영화에 직접 출연했다. 배우로 활동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가?
두 번째 파티 장면에서 패닝 숏이 시작되는 찰나에 프레임 왼쪽 아래 구석에 내 어깨가 나온다. 그걸 발견하고 나인 줄 알아봤다면 눈썰미가 정말 보통이 아닌 듯하다. 내 친구 샘 엥겔은 이 숏에서 훨씬 더 눈에 띄게 등장한다. 내가 카메라 앞으로 나선 건 지금까지 내 작품을 만들면서 이번이 처음이다. 이유도 그저 그때 그 역을 맡을 다른 미국인이 없어서였다. 앞으로 그다지 또 출연할 일은 없지 않을까 싶다.
프로젝셔니스트로도 활동한다. 작품을 제작, 연출하는 일과 영사기사는 어떤 연관성이 있는가?
당시에 35mm 필름 영사를 배운 건 그 일이 영화를 제작하는 것과 긴밀하게 연관된 것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2년이 채 되지 않아 세상에서 영사기가 사라지기 시작했고, 영사기사는 몇 군데 남지 않은 영화의 보루에서만 괜찮은 임금을 받는 극도의 틈새 직종이 돼 있었다. 요즈음에 내 생활을 유지시켜주는 것은 영사기사 일이고, 영화 제작 일은, 글쎄, 아직은 거기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테드 펜트 Ted FENDT
미국 필라델피아 출생. 다섯 편의 장편영화를 연출했고 주로 비전문 배우들과 아날로그 영화를 만든다. 그의 작품은 베를린국제영화제, 빈국제영화제, 뉴욕현대미술관의 뉴디렉터즈/뉴필름 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등에서 상영됐다. 마르델플라타국제영화제, 앤솔러지필름아카이브, 조지이스트 먼하우스에서 그의 특별전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