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터멜론 우먼
USA┃1996┃85min┃스페셜 포커스: 인디펜던트 우먼
결혼식 비디오 촬영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감독 지망생의 이야기. 셰럴은 고전 할리우드 영화 속 흑인 단역 배우 ‘워 터멜론 우먼’의 흔적을 찾는 다큐를 찍지만 난항을 겪는 와중에 아름다워만 보이던 연애도 어려움을 맞이한다. 흑인 레즈비언의 역사를 픽션을 통해 창조해 내는 성취를 보이는 작품이다.
전주국제영화제는 지난 20여 년간 영화를 소개하는 장으로서, 영화를 생산하는 제작자로서 새로운 시각을 담은 독립영화를 지지해 왔다. 그 중심에는 투자 제작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인 ‘전주시네마프로젝트’가 있다. 문성경 프로그래머는 그것이 “영화제가 시대정신과 만나려는 적극적인 시도”라 말한다. 전주시네마프로젝트 섹션을 필두로, 여성 감독 7인의 작품을 특별 조명하는 ‘스페셜 포커스: 인디펜던트 우먼’, 거장의 신작을 소개하는 ‘마스터즈’, 동시대 시네아스트들의 작품을 모은 ‘영화보다 낯선’ 섹션의 프로그래밍을 담당한 그에게 올해도 어김없이 전주국제영화제가 지키고자 하는 태도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전주시네마프로젝트는 전주국제영화제의 시그니처 프로그램이다.
전주시네마프로젝트는 2000년 영화제 출범과 함께 시작된 단편영화 제작 프로젝트 ‘디지털 삼인삼색’의 방향을 계승한 장편영화 투자 제작 지원 프로그램이다. 클레르 드니, 봉준호, 아피찻퐁 위라세타꾼 등 유럽과 아시아 거장 감독들이 대거 참여해 영화미학의 지평을 넓힌 디지털 삼인삼색은 전주국제영화제가 다양한 영화를 소개하는 장일뿐만 아니라 창조적인 영화를 생산하는 제작자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_2014년 장편 영화 제작으로 전환되며 새로운 전기를 맞은 전주시네마프로젝트는 지난 8년간 31편의 국내외 독립예술영화를 제작 지원해 왔다. 영화제가 시대정신과 만나려는 적극적인 시도이자, 영화산업과 미학의 역학 안에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려는 전주국제영화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올해 전주시네마프로젝트 섹션의 총평을 한다면?
올해 프로그램의 방향을 키워드로 표현한다면 다양한 목소리, 다채로운 색깔이 될 것 같다. 팬데믹 상황으로 많은 영화들이 온라인 플랫폼으로 옮겨가고 있다. 글로벌 플랫폼으로 가는 소수의 대형 영화가_주목받고 이야기되기가 쉬운 상황이 됐다. 그래서 더 다양한 목소리가 드러날 수 있도록 전혀 다른 색깔의 영화들을 준비했다.
어떤 작품들이 선정되었는지 간단히 소개해달라.
첫 번째 영화는 임흥순 감독의 〈포옹〉이다. 한 편의 영화가 완성되고 상영되기까지 필요한 수많은 영화인들은 이 시기를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하는 질문에서 시작한 프로젝트다. 〈위로공단〉,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로 알려진 임흥순 감독이 전 세계의 다양한 영화인들이 직접 촬영한 이미지와 개인적인 사연, 그들의 꿈을 재구성해 한 편의 영화를 완성했다. 팬데믹 상황을 지나는 영화인들의 현실과 무의식을 볼 수 있는 작품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 영화가 공개될 즈음에는 직접 만나 포옹하며 인사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두 번째 영화는 테드 펜트 감독의 〈아웃사이드 노이즈〉다. 테드 펜트는 젊은 작가이지만 장인 정신을 지녔다. 16mm 카메라와 필름을 사용해 손으로 대부분의 작업을 완성한다. 소수의 스태프가 참여해 한 편의 영화를 만드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자신들만의 작은 세계를 창조하는 독특한 지위를 구축하고 있다. 대안적이고, 독립적인 작업을 지속한다는 지점에서 전주국제영화제의 정체성과 맞닿은 감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마지막 영화는 민환기 감독의 〈노회찬, 6411〉이다. 진보 정치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고 일생을 바친 고(故) 노회찬 의원이 일관되게 추구한 신념과 철학을 주제로 삼은 다큐멘터리다. 다양한 다큐 및 실험영화를 통해 국내 독립영화 역사에서 창의적 세계관과 현장의 힘을 관찰하는 카메라로 그 존재감을 빛내온 민환기 감독의 독특한 시선이 빛나는 작품이다. 이 불확실성의 시대에 이 영화가 작은 희망이자 표지가 되길 기대해 본다.
‘스페셜 포커스: 인디펜던트 우먼’의 기획 배경은 무엇인가?
스페셜 포커스는 매년 특별한 기획을 통해 중요한 이슈를 제시하는 특별전이다. ‘인디펜던트 우먼’에서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목소리를 다시 발굴하고 새로운 영화 역사를 만들려는 대안적 시도로 독립영화를 만든 여성 감독들의 작품을 주목하며 세계 각국에서 활약한 여성 감독 7인의 작품 15편을 소개한다. 작품을 제작한 당시에는 그 가치가 제대로 평가되지 않아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새로운 형식을 제시하고 당대의 소수자들의 삶을 드러내며 영화 역사의 중요 순간에 초석을 다진 작품들을 소개하려 했다. 또한 그 작품을 만든 감독들은 여성으로서 자신의 존재가 이 세상에 존재함을 긍정하고 독립적인 존재로 자신의 본질에 닿기를 두려워하지 않은 여성들이었다. 독립영화를 만들며 스스로 더 단단한 독립적인 주체로의 삶을 나아간 일곱 명의 감독을 통해 그들의 작품이 지속적으로 언급되고 끊임없이 현재적 의미로 해석되어 다른 독립적인 주체들의 탄생에 영감을 주길 바란다.
어떤 작품을 상영하는지 간단히 소개해준다면?
세계대전 후 첫 이탈리아 여성 다큐멘터리스트 체칠리아 만지니의 초기 단편 여섯 편, 한국 여성실험영화 그룹 카이두 클럽을 이끈 한옥희의 초기 실험영화 네 편, 뉴이란시네마의 선구자이자 시인인 포루그 파로흐자드의 유일한 다큐 〈검은 집〉, 뉴아메리칸시네마의 대표작 〈완다〉를 만든 바바라 로든, 프랑스 뉴웨이브의 얼굴이자, 스타 배우가 상업영화가 아닌 작가로서 감독이 된 초기 사례 안나 카리나의 첫 장편 연출작 〈비브르 앙상블〉, 뉴퀴어시네마와 함께 등장해 최초의 여성 흑인 레즈비언 극영화 〈워터멜론 우먼〉을 만든 셰럴 두녜이, 뉴아르헨티나시네마의 대표 주자 알베르티나 카리의 자전적 이야기 〈금발머리 부부〉 등이다.
여성영화 전문 OTT 플랫폼 ‘퍼플레이’와 협업했다고 들었다.
‘퍼플레이’(https://purplay.co.kr)가 처음 론칭한다는 기사를 봤을 때 셀 수도 없이 많은 플랫폼이 나타나는 시기에 ‘여성영화 전문 OTT 플랫폼’이라는 명확한 컨셉으로 현재 관객들이 공감할 목소리가 가득한 공간이 생겼다고 생각했다. 여성 감독들의 독립영화, 단편영화를 위주로 큐레이팅을 한다는 지점이 이번 스페셜 포커스의 주제와 연결된다고 봤고 협업을 한다면 서로에게 힘이 되어줄 거라 생각했다. 서로의 머리와 희망을 모아 ‘스페셜 포커스: 인디펜던트 우먼’과 관련한 토크 프로그램과 이벤트, 릴레이 온라인 특별전 등 다양한 부대행사를 선보일 예정이다.
‘마스터즈’는 어떤 성격의 섹션인가?
마스터즈는 거장의 신작을 소개하는 섹션이다. 영화와 자신의 인생이 구분되지 않고 하나처럼 살아온 영화의 마스터들이 지금 현재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모아놓았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의 작품을 보는 것은 각자의 분야에서 탁월한 영화적 성취를 이루고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한 작가의 정수를 보는 것과도 같다.
2021년의 마스터즈 섹션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팬데믹 시대에도) 이들은 끊임없이 (어떻게든!) 영화를 만든다.
덧붙여 개인적으로 애정이 가는 영화를 소개해달라.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휴먼 보이스〉. 장 콕토가 90여 년 전 에디트 피아프를 주인공으로 염두에 두고 쓴 희곡이다. 피아프는 거절을 했지만, 알모도바르는 오랫동안 이 작품을 마음에 두고 있었고, 마침내 영화화했다. 알모도바르의 화려한 색감 속 틸다 스윈튼의 시대를 초월한 얼굴과 연기만으로도 놓쳐서는 안 될 작품이다. 그리고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숨겨진〉 국가의 압력에도 끊임없이 영화를 만드는 파나히 감독의 단편이다. ‘기적은 존재하는가, 재능은 타고나는가, 전통은 무엇을 지켜가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영화보다 낯선’ 섹션 구성 시 가장 염두에 둔 지점은?
영화보다 낯선은 영화라는 매체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동시대 시네아스트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섹션이다. 일반 극장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실험영화, 관습적인 영화 언어와 형식에 도전하는 영화, 비선형적이고 탈장르적인 영화를 소개하고 관객에게 신선한 상상력과 충격을 주고자 한다. 올해는 여행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관객들에게 전 세계의 다양한 국가의 영화를 소개하려 했다. 태국의 아피찻퐁 위라세타꾼부터 멕시코의 니콜라스 페레다 감독까지 더욱 다양한 나라의, 한계를 두지 않는 다양한 형식과 상상력의 영화를 소개한다. 타국에 입국해서 처음 거리로 발을 내딛을 때, 빛도 새롭고 건축도 사람들의 스타일도 달라서 호기심이 생기듯 낯선 영화를 낯설게 느끼시길 바란다.
코로나 상황의 영향이 개별 작품에서 느껴졌는지 궁금하다.
아피찻퐁 위라세타꾼의 작품은 팬데믹으로 태국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에 만든 작품이고, 제임스 베닝 또한 팬데믹 상황이라는 제약을 오히려 더 많은 작품 제작을 하는 기회로 바꾸었다.
마지막으로,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기대하는 점은 무엇인가?
우리는 영화로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를 실현해 보는 회차가 될 것 같다.
Invitation Letter
올해 ‘스페셜 포커스: 인디펜던트 우먼’ 섹션에서 소개하는 포루그 파로흐자드 감독은 뉴이란시네마의 선구자이기도 하지만 20세기 페르시아 시의 정점으로 꼽히는 시인이기도 합니다. 그녀의 시를 빌어 어려운 시기를 지나는 여러분께 초대의 글을 보내 보려 합니다.
나 저 깊은 밤의 끝에 대해 말하려 하네
나 저 깊은 어둠의 끝에 대해
깊은 밤에 대해
말하려 하네
사랑하는 이여
내 집에 오려거든
부디 등불 하나 가져다주오
그리고 창문 하나를
행복 가득한 골목의 사람들을
내가 엿볼 수 있게
포루그 파로흐자드, 「선물」,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신양섭 옮김, 문학의숲
파로흐자드의 이 시는 어려운 시기 후에 함께 모이는 사람들을 상기시킵니다. 그녀의 시에서 어둠은 극장으로, 등불은 프로젝트의 빛으로, 창은 스크린으로 변화해 우리에게 함께 영화를 보자고 손을 내밉니다. 여러분 전주에서 뵙겠습니다.
Programmer’s Picks

금발머리 부부
Argentina┃2003┃88min┃스페셜 포커스: 인디펜던트 우먼
네 살 때 부모가 독재정권에 납치된 이야기를 쫓는 감독의 자전적인 다큐멘터리. 기록이 없는 과거 탓에 배우를 섭외하고 애니메이션으로 공백을 메꾸려 하지만 오히려 현실과 픽션의 충돌이 일어난다. 영화는 불가능이라는 벽 앞에서도 현재성을 잃지 않고 혈연이 아닌 공동체를 통해 미래로 나아감을 보여준다.

여름의 기억
Argentina┃2021┃87min┃영화보다 낯선
중고로 산 카메라에 전 주인의 영상이 남아 있다면, 이미지를 돌려줄 것인가? 지울 것인가? 이 영화는 개와 산책하는 홈비디오 장면에서 시작해 관객을 예상치 못한 곳으로 데려간다. 스토리텔링의 새로운 영역은 여전히 남아 있음을 제시하며 어딘가 숨어 있는 VHS 혹은 메모리 속 이미지들이 다시 태어날 순간을 기다린다.

10월의 울림
Thailand┃2020┃5min┃영화보다 낯선
아피찻퐁 위라세타꾼의 신작. 팬데믹 상황으로 태국에 머물게 된 아피찻퐁이 집 앞에 스크린을 걸었다. 고요히 비가 내리던 집 앞 정원에 걸린 스크린 위로 작은 웜홀이 생기고 우리는 공간을 이동한다. 영화는(언제 어디서든 무슨 상황이라도) 우리를 새로운 세계로 안내한다.
문성경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고등학교 시절 부산국제영화제가 생겼고, 시험이 끝나는 날이나 주말이면 하루에 영화를 4편씩 보는 재미로 살았다. 누군가에게 짧은 순간이나마 해방감을 선사하고 다른 세계를 보여주는 게 영화라면 그 분야에서 일을 해보고 싶다는 소망을 가졌다. 2004년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램팀에서 경력을 시작해 부산국제영화제, KT&G상상마당시네마, 전주프로젝트 마켓, 인천다큐멘터리포트, 영화진흥위원회 중남미주재원을 거쳐 2019년부터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