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부부인 도율과 지혜는 전세 사기 대란 속에서 ‘폭탄 돌리기’ 사건에 휘말린다. 영화는 약자끼리 고통받도록 설계된 구조 안에서 두 인물이 어떤 선택을 해나가며 어떤 변화를 겪는지에 집중한다.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카메라의 고정된 시선을 통해 그들이 지나는 시간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노라면 화면 너머로 고통이 서서히 배어나는 듯하다. 어떤 선택을 하든 상황이 극적으로 해결될 리 없는 가운데 우리는 어떻게 자신을 유지하고 또 변화시켜 나갈 수 있을까? 영화는 그런 질문을 품은 채 ‘잠 못 이루는 밤’을 통과하는 이들을 비춘다.


간략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린다. 

서울예술대학교 영화과에서 연출을 전공했고, 단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에서 장편영화 제작 전공을 졸업했다. 평소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많이 관찰하는 편이고, 그런 경험에서 출발해 이야기를 만든다. 〈잠 못 이루는 밤〉은 그렇게 완성한 첫 장편 연출작이다.

 

어떻게 구상하게 된 이야기인가? 

결혼을 준비하면서 처음으로 전세를 알아보게 됐고, 그 과정에서 전세라는 제도가 생각보다 훨씬 불안정하다는 걸 직접 느꼈다. 단순히 집을 구하는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계약이 한 사람의 삶 전체를 흔들 수 있다는 게 실감됐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전세 사기 사례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찾아보면서 계속 마음에 걸리는 장면이 있었다. 피해를 본 사람들이 함께 빠져나올 방법을 찾기보다 서로를 의심하고 책임을 미루며 갈등하는 모습이었다. 정작 사기를 친 사람은 뒤로 빠져 있고 피해자끼리 서로를 밀어내는 상황이 반복됐다.

그걸 보면서, 이건 단순한 범죄라기보다 어떤 구조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에서 생겨난 책임이 아래로 아래로 전가되고, 결국 가장 약한 사람들 사이에서 갈등으로 터져 나오는 방식. 그리고 이런 방식은 전세 사기에만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여러 장면에서 반복된다고 느꼈다.

〈잠 못 이루는 밤〉은 그 구조 안에서 한 개인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지를 따라가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폭탄 돌리기’라는 방식 역시 특정 사건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속한 사회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하나의 은유로 보고 접근했다.

 

미니멀한 표현 양식이 눈에 띈다. 이런 스타일과 관련해 어떤 의도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이 영화는 전세 사기의 구조나 결과를 설명하기보다, 그 상황 한가운데 놓인 인물들이 어떤 시간을 지나고 있는지를 따라가는 데 더 가깝다. 사건의 인과보다는, 지금 이 순간을 견디는 사람들의 감정과 선택에 집중했다. 이런 방향에서 출발하다 보니, 표현 역시 덜어 내는 쪽으로 자연스럽게 정리됐다.

카메라는 모두 고정으로 두고 무빙을 배제했으며, 숏의 길이도 비교적 길게 가져갔다. 인물과 관객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감정을 직접적으로 밀어 넣기보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서서히 체감되도록 하고자 했다.

또한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본 것은 도율과 지혜의 관계였다. 불필요한 요소를 덜어 내고 두 인물에게 시선이 집중되도록 구성했다. 이들에게는 서로가 거의 세계의 전부에 가깝고, 그 관계 안에서 일어나는 미묘한 변화들을 따라가고 싶었다.

프레임 안에 프레임을 만드는 방식 역시 같은 맥락에서 사용했다. 문이나 창문 같은 구조물을 통해 화면을 한 번 더 나누고, 인물들이 어떤 틀 안에 놓여 있다는 인상을 주고자 했다. 이들이 처한 상황과 공간이 하나의 압박처럼 느껴지길 바랐다.

결국 이 모든 선택은 사건을 설명하기보다 그 안에서 버티고 있는 인물들의 시간과 감정에 가까이 가기 위한 방식이었다.

 

연출, 각본, 연기, 촬영, 편집, 미술, 동시 녹음에 모두 참여했다. 제작 과정 전반이 어떠했는지, 어려움이 있진 않았는지 들려 달라. 

제작 과정 전반에서 특별히 큰 어려움은 없었다. 오히려 현장이 빠르고 유연하게 돌아갈 수 있었고, 작업에 더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이 현장은 감독, 배우, 스태프가 명확히 구분된다기보다 각자가 역할을 나누면서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팀에 가까웠다. 모두가 스태프이면서 동시에 함께 만드는 사람이라는 감각이 있었고 그 분위기가 작업 전반을 지탱해 줬다고 생각한다.

기억에 남는 순간들은 오히려 그런 제한된 조건에서 생겼다. 세 인물이 동시에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역할을 나눠 진행하기 어려웠고, 스케줄상 인원이 빠지는 날도 있었다. 그럴 때는 카메라 구도를 먼저 잡아 두고 본인이 직접 붐을 들고 촬영을 진행하기도 했다. 촬영 이후에는 플레이백으로 연기를 확인하며 수정해 나갔다.

다소 번거로운 방식이었지만 그만큼 현장이 더 집중된 상태로 움직였고 그런 순간들이 오히려 인상 깊게 남았다. 돌이켜보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상황들까지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작업했고, 그런 시간이 쌓여 이 영화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인물들이 가족을 위해, 혹은 가족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해나간다. 가족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나는 가족을 내가 어디에 서 있는 사람인지 확인하게 해주는 기준점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그 선택이 어떤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하는 지점이 가족과의 관계 안에 있다고 느낀다. 그래서 가족은 단순히 지켜야 할 대상이라기보다 내가 어떤 방향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점검하게 해주는 존재에 가깝다.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는지와 같은 기준이 그 관계 안에서 더 분명해진다고 생각한다.

 

2023년 작 〈피크닉〉을 통해서는 행복이란 무엇인지 묻고 싶었다고 했다. 이 작품을 통해서는 무엇을 묻고 말하고 싶었나? 

이 작품을 통해 묻고 싶었던 것은, 바뀌지 않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스스로를 유지하고 변화시켜 나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그렇기에 이 이야기를 어떤 해결이나 탈출의 서사보다는, 일종의 ‘내면의 성장’에 관한 이야기로 바라봐 주길 바랐다.

현실에는 분명 피할 수 없는 구조와 문제들이 존재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부담을 타인에게 넘기며 버텨야 하는 선택의 순간이 유혹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방식의 회피보다는,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견디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했다.

같은 자리, 같은 조건 안에서도 사람은 무너지기도 하고 반대로 더 단단해지기도 한다. 성장은 반드시 상황의 변화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바뀌지 않는 현실을 통과하며 태도와 선택이 달라지는 데서 비롯한다고 느꼈다.

결국 희망이라는 것도 멀리 있는 결과라기보다 같은 자리에서 다시 버텨 보려는 마음, 그리고 그 과정에서 조금씩 변해 가는 자신을 인식하는 순간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잠 못 이루는 밤〉은 감독님의 영화 이력에서 어떤 의미를 띠는 작품인가? 

영화를 하는 동료들이 공통으로 안고 있는 질문이겠지만, 나 역시 늘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에게 영화는 계속할 수 있는 일인지,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은 일인지에 관해서. 창작의 과정이 때로는 괴롭게 느껴지기도 했고, 그 질문들 앞에서 쉽게 답을 내리지 못하는 시간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 작업을 통해 나에게 영화가 무엇인지 조금은 분명해졌다고 느꼈다.

현장에서의 시간들을 지나면서 그 과정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즐거움을 느끼는 나를 보게 됐다. 그것이 영화를 계속할 수 있겠다는 하나의 확신으로 이어졌다.

앞으로 어떤 형식이나 규모로 영화를 만들게 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나에게 영화는 계속해도 되는 일, 그리고 계속하고 싶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게 됐다. 그래서 〈잠 못 이루는 밤〉은 나에게 단순한 한 편의 작품이 아니라 하나의 이정표처럼 남은 영화다.

 

다음 작품이 궁금하다. 앞으로 영화를 통해 무엇을 어떻게 다루고 싶은가?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만나게 될지,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지, 그리고 감독으로서뿐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어떤 시간들을 지나게 될지 나 자신도 궁금하다. 특정한 방향을 정해 두기보다는, 그때그때 만나게 되는 이야기들과 감정들에 조금 더 솔직하게 반응하면서 작업을 이어 가고 싶다. 지금은 그 과정 자체를 계속 겪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더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