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타 근영Nata the Great Peng Geunyoung
감독 이종수LEE Jongsu | Korea | 2026 | 122 min | Documentary Fiction | 코리안시네마Korean Cinema
〈나타 근영〉은 말이나 서사적 설명 대신 상황의 흐름과 맥락을 통해 하나의 ‘공기’를 만들어 낸다. 카메라는 나타의 삶을 따라가지만 어느 순간 그 삶에 개입하고, 결국 함께 만들어 가는 관계로 나아간다. 느리게 축적된 시간 속에서 어떤 순간들은 비약처럼 떠오른다. 영화는 그를 규정하기보다 하나의 상태로 남겨 둔다. 이해되지 않는 순간들, 쉽게 붙잡히지 않는 말들 속에서 인물은 또렷해지기보다 부유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를 더 오래 바라보게 된다. 이종수 감독과의 대화를 통해 이 영화가 만들어 낸 감각과 태도를 들어 보았다.
엔딩 크레디트를 통해 2015년 제주에서 나타를 처음 만났다고 밝혔다. 영화는 첫 만남 이후 장수와 해남으로 이어지는 그의 삶의 궤적을 따라간다. 나타를 처음 마주했을 때 어떤 점에 이끌렸나? 또 그를 영화로 담아야겠다고 결심한 계기와 과정이 궁금하다.
2015년, 제주에서 처음 나타를 보았다. 그는 낯을 가리고 말수가 적었으며, 다수보다는 소수와 깊이 대화하는 사람이었다. 당시 제주에서는 작은 레이브 파티가 많이 열렸다. 테크노 음악을 좋아해 자주 찾았는데, 그곳에서 본 나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춤을 추었고, 춤 역시 뛰어났다. 이후 먼저 대화를 청해 그를 조금 더 알게 되었다.
그는 생태적 삶을 지향하며 자연 농법과 요가를 공부하고 있었다. 나는 곧 서울로 돌아왔고 한동안은 연락이 끊겼다. 몇 년 뒤인 2021년, 영화 공부를 이어 가던 중 방향에 대한 의문이 커졌다.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 무렵 나타가 전북 장수에서 집을 짓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계획하던 것을 모두 내려놓고 장수로 향했다. 형식은 정하지 않았다. 그저 ‘멋진 것’을 찍고 싶었다.
〈나타 근영〉에서는 인물의 말이나 서사적 설명보다 상황의 흐름과 맥락이 더 중요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일상 대화들은 자연 풍경 속에서 흘러가듯 배치된다. 이렇게 ‘말’의 비중을 조율한 이유는 무엇인지, 관객이 이 영화를 어떤 방식으로 경험하기를 바라는지 궁금하다.
개인적으로는 서사라는 장치에 크게 의존하지 않는 편이다. 특히 이번 작업에서는 특정한 기준에 따라 상황의 흐름과 맥락을 배열하는 일이 하나의 공기를 만든다고 보았다. 그 공기는 관객 각자에게 서로 다른 경험으로 작동한다고 생각한다.
말의 비중 역시 같은 기준으로 조절했다. 이 영화는 일반적인 다큐멘터리처럼 나타의 생각이나 독특한 생활 방식을 빼곡히 담고 있지 않다. 그의 기행(?)들을 보고 싶다면 그의 인스타그램(@yoongeunyoung.nata)에 접속해 보길 추천한다.
그런 연출 때문인지 어떤 상황에서는 말이 더 또렷하게 전달되기도 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다정함에 대한 시가 나오는 장면 등이 그렇다. 이처럼 드물게 또렷해지는 말들이 어떤 방식으로 관객에게 남는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또 해당 장면에 관한 이야기를 더 들어 보고 싶다.
귀에 들어온 말이 모두 각인되지는 않는다. 말은 듣는 이의 조건에 따라 쉽게 휘발되는 매체라고 생각한다. 휘발된 말은 공기 중을 떠돌다 특정한 조건에서, 처음과 다른 곳에서 다시 또렷해지기도 한다. 영화 안에서 앞선 말이 이후의 상황에 놓이거나, 먼저 제시된 장면 뒤에 말이 이어질 때 어떤 조건이 만들어지는지 생각했다. 인물 역시 마찬가지다. 화면 속을 부유하다가 어떤 말이나 이미지의 형태로 기억을 남기고 사라진다.
다정함에 대한 시 「너가 다 정함」은 내가 쓴 것이다. 촬영 당시의 생각을 나타를 통해 발화했고, 그는 나의 작업을 통해 자신의 아이디어를 입체화했다.
너가 다 정함
다정함은 무능해
다정함은 아무것도 해결해 주지 않아
다정함은 실망이란 동반자를 데려와
다정함은 불길해
다정하지 않은 시간에도 다정한 시간에도 다정해야 하잖아
다정함은 계속 다정해야만 하잖아
다정함은 우리를 다정하게 만들어 주지 않아
계속 실망하게 만들어
다정하지 말자
절반쯤 지나 독특하게 연출된 어느 신이 영화의 결을 크게 환기한다. 네 명의 인물이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다가 풀을 먹고, 이후 인터뷰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답변이나 동시에 말하는 방식이 등장하며 관객의 인지 방식을 흔든다. 이 장면은 영화의 정중앙에 배치되어 있으며 이어 자작시 「너가 다 정함」이 나온다. 이런 구성 속에서 관객이 일종의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에 놓이기도 하는데, 연출 의도가 궁금하다.
해당 장면은 나타가 직접 구상한 창작극이다. 그를 계속 촬영하다 보니 이대로는 단순한 기록에 머물 것 같아 그의 삶에 개입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시나리오를 건넸지만 반응이 없었다. 대신 ‘히피 일번지’에서 작은 공연을 해보자는 제안을 하자 받아들였다. 평소 머릿속에 맴돌던 생각들을 들려주던 그는, 우리가 함께 있던 어느 순간 두 사람이 누군가에게 같은 이야기를 각자의 방식으로 설명했던 장면을 떠올리며 그런 상황을 촬영하자고 제안했다. 그 역시 나의 작업에 개입해 준 셈이다. 서로의 영역을 넘나들며 나는 시를 쓰고 조카 현빈의 설명문을 각색했고, 그는 여러 이미지를 제안하며 촬영이 이루어졌다. 다만 그는 완성된 화면을 확인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인터넷이나 전자 기기 없이 그와 친구들이 만들어 내는 수많은 놀이 중 하나였을 뿐이다.
의도적으로 관객이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에 놓이도록 노력하진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보인다면 어쩔 수 없겠다. 나 역시 나타와 그의 주변 사람들을 수년간 촬영하고 친하게 지내 봤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에 놓인 적이 아주 많다. 그럼에도 그들에 관해 알고 싶으니 계속 들여다본 것 같다.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가 더 알고자 애쓰는 상태를 만들어 주기도 하지 않나.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나타가 ‘어떤 집을 짓는가’에 대한 궁금증은 점차 ‘왜 집을 짓고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확장된다. 나타에게 집을 짓는 행위는 단순한 거처 마련을 넘어 삶의 방식 자체처럼 보이기도 한다. 감독이 바라본 ‘집 짓기’의 의미는 무엇이며, 그것이 나타의 삶의 태도와 어떻게 연결된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집 짓기’라는 행위는 현재 나(감독)보다는 나타에게 중요한 행위이다. 나타가 지은 집은 공산품 없이 최대한 ‘새로 생산되지 않은’ 재료들로 이루어졌다. 집의 구조를 만드는 데도 못이나 나사 같은 공산품 없이 짜맞추는 방식을 사용했고 구조에 쓰이는 구조용 목재들도 철거되는 다른 집에서 나온 것들을 활용했다. 내가 알고 있는 나타는 환경주의자이면서 조각가이며, 자연 농법을 연구하는 농부 지망생이자 댄서이다. 그중 조각가를 제외하면 타인의 시선에서는 정식적인 직업으로 보이기 힘들 수도 있겠지만, 나타의 삶에서 ‘보란 듯이’ 해야 하는 일은 중요하지 않은 듯했다. 무엇이든 ‘제대로’ 하는 것을 원하는 듯하다.
나타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시도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 시도들은 완결되지 않은 채 다른 국면으로 이동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의 삶에서는 어떤 충만함이나 완결감이 느껴진다. 감독의 시각에서 이 인물의 삶은 ‘미완의 과정’으로 보이는지, 아니면 또 다른 방식의 ‘완결된 상태’로 보이는지 궁금하다. 또한 이런 시선이 감독의 삶에 대한 태도와도 연결되어 있는지 듣고 싶다.
나타는 본인의 삶을 살아가며 많은 것들을 느끼는 과정 속에서 해야 할 ‘제대로’ 된 일이 계속해서 늘어나는 것 같다. 작품에 담기지 않은, 나타가 행해 온 많은 일 중에 끝을 맺지 못한 일은 거의 보지 못했다. 집 짓기 또한 그의 삶에 병치되어 있는 여러 작업 중 하나이다. 집을 완성한 것처럼 어떤 일이든 끝에 가선 완결된 상태를 만들 거라 믿는다. 나 또한 현재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지만, 동시에 음악 앨범이나 성격이 다른 비디오 작품집도 준비하고 있다. ‘보란 듯이’ 해야 하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부분에서 나타에게 끌린 것 같다.
나타가 혼자 추는 춤과 공동체 안에서 함께 추는 춤이 모두 등장한다. 특히 마지막에 혼자 추는 춤은 인물의 내면을 강하게 환기하는 듯 느껴졌다. ‘춤’이라는 행위가 나타라는 인물을 이해하는 데 어떤 의미를 띠는지, 그리고 이 장면들을 통해 어떤 감각이나 상태를 전달하고자 했는지 궁금하다.
나타는 이 작업을 진행하던 중 자신의 인터뷰를 담아 보자고 제안했고 실제로 촬영도 진행했다. 집에 돌아와 결과물을 확인하면서 과연 그 인터뷰가 나타를 충분히 드러내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가 말들을 통해 설명하는 방식보다, 사용하는 물건이나 지나온 행적들이 오히려 그를 더 또렷하게 드러낸다고 느꼈다.
춤 역시 비슷하게 다가왔다. 사람들과 함께 춤추는 모습은 마치 그들과 호흡을 나누는 것처럼 보였고, 반대로 작업실에서 혼자 추는 춤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나타의 내면, 어딘가에 쌓여 있던 고단함이 몸을 통해 드러나는 순간처럼 느껴졌다. 이상하게도 수년간 그가 잘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았음에도, 혼자서 추는 그의 춤은 유독 슬프게 다가왔다.
다음 작품이 궁금하다.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다루고 싶은가?
현재 준비 중인 작업은 극영화 한 편과 음악 앨범이다. 무엇을, 어떻게 다루고 싶은지는 시기에 따라 늘 달라진다. 작업을 돌아보면 언제나 어두운 방 안에서 손끝의 감각에 의지해 형상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 가까웠던 것 같다. 그렇게 느껴진 바가 사실과는 조금 다르게 감각되는 방식을 계속해서 나누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