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를 잃고 홀로 살아남은 아이 은하. 어디서도 자기 자리를 찾을 수 없었던 은하는 결국 보호소에 들어간다.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한 입소 첫날, 또래 친구 보라가 은하에게 말 혹은 시비를 걸어온다. 그렇게 우정이 시작된다. 두 아이는 거짓과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서로의 기댈 곳이 되어 준다. 함께 춤추며 나아가는 은하와 보라의 작은 몸짓에는 커다란 희망이 깃들어 있다.


간략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린다. 

어릴 적 동아리에서 첫 단편영화를 만든 경험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영화 작업을 이어 오고 있다.

 

어떻게 구상하게 된 이야기인가? 

전작인 단편 〈안녕, 부시맨〉으로도 아이들의 시각을 담아냈지만 창작자로서 미처 해소하지 못한 지점이 남아 있었다. 나에게 유년기란 자신의 선택권보다는 어른들의 결정으로 삶이 규정되는, 일종의 ‘무력함’이 지배하던 시기였다. 전작에서 이러한 정서가 인물의 밑바탕에 깔려 있었다면, 다음 작업에서는 이 지점을 전면에 내세워 다뤄 보고 싶다는 막연한 구상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춤학교 아이들의 공연 메이킹 작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2년여 동안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과 생동감 넘치는 움직임을 담아내는 일은 무척이나 경이롭고 행복한 경험이었다. 

역설적이게도 그 시기에 두 건의 비속 살해 뉴스를 접하게 되었다. 처음 완도에서 발생한 사건을 들었을 때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넘겼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동네에서 유사한 일이 다시 일어났다. 그 사건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눈앞에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아이들의 생명력을 보고 있자니 영문도 모른 채 부모에 의해 생을 마감해야 했던 아이들의 모습이 자꾸만 겹쳐졌다. 이 ‘생과 사’의 강렬한 간극이 마음 한구석에 무겁게 자리 잡았고, 비극적인 사건 이후 홀로 남겨진 아이의 삶에 관해 이야기해야겠다는 결심이 굳어졌다. 비속 살해라는 사건 자체의 잔혹함보다는 아이에게 남겨진 ‘못다 산 삶’에 주목하고 싶었다. 참혹한 진실을 파헤치기보다 아이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했고, 어른들이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 스스로의 의지로 삶을 선택하는 방식을 찾고자 했다. 주인공 은하의 그 험난한 길을 함께 걸어 줄 동반자로 또래 친구인 보라를 떠올렸다. 이모 자영이 어른의 시점에서 은하를 대하며 죄책감에 함몰된다면, 보라는 같은 아이의 시선으로 은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는 존재다. 그렇게 은하와 보라, 두 아이의 연대를 통해 남겨진 생의 가치를 그려 보고 싶었다.

 

이 영화는 물고기 춤 프로젝트에서 뻗어 나왔다. 해당 프로젝트에도 살아남은 아이와 춤이라는 요소가 등장하고, 제목 자체가 리틀 라이프의 중요한 설정을 가리키기도 한다. 물고기 춤리틀 라이프로 이어지기까지의 여정이 궁금하다.  

앞서 언급했듯 이 영화의 시작은 한 무용 공연의 메이킹 작업이었다. 초기 프로젝트인 〈물고기 춤〉의 초고는 춤이라는 행위 자체에 더 집중되어 있었다. 거기서는 은하가 느끼는 형언할 수 없는 감정들을 몸의 언어로 풀어내는 과정이 주를 이뤘지만, 지금의 〈리틀 라이프〉에서 춤은 은하의 여정을 지탱하는 중요한 축으로 역할이 확장되었다. 내면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방식에 머물지 않고 인물 간 관계, 그리고 외부 세계로 나아가려는 ‘시도’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프로젝트 당시 시나리오의 결말은 은하가 완전한 물고기 춤을 선보인 후 스스로 보호소를 선택하며 이모 곁을 떠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작업을 마친 뒤에 ‘과연 이것이 최선일까?’라는 의문이 남았다. 이것은 여정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어야 한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프로젝트 이후 다시 한번 각색을 거치며 은하의 발걸음을 따라 무대를 확장했다. 춤을 통해 섬세한 감정선을 발견하는 것도 의미가 있었지만 결국 은하가 여정의 끝에서 무엇을 마주하게 될지가 더 궁금했다. 전체적인 방향성이 정립되면서 〈물고기 춤〉의 요소들은 자연스럽게 압축되었고 타이틀의 의미 또한 새롭게 정의되었다. 누군가에게는 소유물 혹은 미미한 존재로만 여겨지는 ‘작은 삶’이 사실은 얼마나 커다란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전달하고 싶었다. 그것이 바로 이 영화에 ‘리틀 라이프’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다.

 

각각 은하와 보라의 감정을 무척 섬세하게 표현한 박수아, 강혜원 배우의 연기가 돋보인다. 어린이들의 연기를 디렉팅하며 가장 신경 쓴 점은 무엇인가?

현장에서 리허설을 최소화하는 방식을 택했다. 텍스트화된 대본에 지나치게 몰입하다 보면 현장의 공기와 동선 속에서 피어날 자연스러움이 훼손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역 배우들 본연의 모습이 화면에 담기길 원했다. 그 순수함이야말로 그들이 이 영화에 존재하는 이유니까. 

은하 역의 박수아 배우는 오디션 당시 무척 긴장한 모습이었는데 오히려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강해 보이려고 애쓰는 서툰 모습이 도리어 마음을 움직였다. 촬영 전, 수아 배우의 자신감을 북돋아 주기 위해 행운의 상징인 녹나무를 선물했다. 은하는 비극적인 사건을 겪었지만 결코 움츠러드는 아이가 아니다. 그 내면의 강인함을 감독으로서 신뢰한다는 의미로, 녹나무라는 ‘무기’를 손에 쥐고 당당하게 나아가라고 조언했다. 보라 역의 강혜원 배우는 나무랄 데 없는 완성형의 배우다. 당찬 면모가 이미 보라 그 자체였기에 감독으로서 특별히 개입할 부분이 없었다. 다만 혜원 배우의 당당함 이면에 깃든 미세한 외로움을 발견했고, 그 고유한 정서를 깨뜨리지 않으려 노력했다. 이미 그 역할에 필요한 성질을 완벽히 지니고 있었던 셈이다.

 

내면을 표현하고 마음을 나누는 수단으로 ‘춤’을 주요하게 다루게 된 계기나 이유가 있다면.

춤학교에서 아이들이 직접 만든 안무를 본 것이 결정적인 계기였다. 이미 어른이 되어 버린 나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감각적인 표현들을 목격하며 깊은 전율을 느꼈다. 언어는 사용하면 할수록 정제되고 경직된다. 사회적인 필터를 거치며 때로는 진실한 감정을 표현하는 데 방해가 되기도 하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의 것들을 춤으로는 표현할 수가 있다. 설명조차 불가능한 거대한 사건을 겪은 은하는 경직된 환경에 던져진다. 특히 우리 사회에는 불미스러운 사건을 직접 언급하기를 꺼리는 암묵적인 분위기가 존재한다. 이런 환경에서 은하가 말로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겠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언어라는 장벽을 넘어 감정을 표출하고 해소할 수 있는 통로로서 ‘춤’이라는 요소를 적극 활용하게 되었다.

 

어른들의 폭력과 거짓말에 상처받은 아이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문제에 맞서며 자라나는 과정을 담아냈다. 영화는 이 과정을 비추며 회복과 성장에 관한 한 방법을 제시하는 듯 보인다. 진정한 회복과 성장은 어떻게 가능할까?  

〈리틀 라이프〉는 현실의 좌절과 고통을 회복해 나가는 과정을 하나의 대안적 서사로 그린 영화다. 물론 이는 하나의 제안일 뿐이며, 여전히 현실의 가혹함은 존재한다. 비슷한 사건이 반복될 때마다 나 역시 거대한 흐름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곤 한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통해 희망의 근거를 찾아보고 싶었다. 어른의 시선을 내려놓고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바라본 희망이 무엇인지 끝까지 따라가 보았다. 은하와 보라가 자신들만의 비밀 공간을 꾸미는 행위는 외부 개입이 차단된 최소한의 ‘안전지대’를 꿈꾸는 것을 뜻한다. 서로에게 거짓 없이 진실한 존재가 있다는 것, 그 하나만으로도 위안을 얻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아무리 작고 유약한 존재라 할지라도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갈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내가 이 영화를 통해 도달하고 싶었던 회복의 시작이자 희망이다.

 

첫 장편영화를 완성했다. 앞으로 영화를 통해 무엇을 어떻게 다루고 싶은가?

첫 장편영화라는 긴 터널을 빠져나오며 내면과 외면 모두에서 많은 변화를 겪었다. 〈리틀 라이프〉를 처음 구상하던 시기보다 나이도 조금 먹었고, 그만큼 창작자로서의 태도도 한층 다듬어졌다고 느낀다. 긍정적인 의미로든 부정적인 의미로든 말이다. 요즘은 영화를 시작했던 시절의 초심을 떠올리는데, 욕망에 투철한 인물을 격정적으로 그려 내고 싶다는 갈증이 있다. 아직 구상 단계이긴 하지만 최근에는 ‘중독’이라는 소재를 들여다보고 있다. 비참한 현실의 늪에 빠져 있으면서도 결코 닿을 수 없는 이상을 갈망하는 인물의 욕망에 강하게 끌린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처럼 결여를 메우기 위해 위태롭게 흔들리는 인간상에 큰 흥미를 느끼는 것 같다. 앞으로도 현실의 무게에 눌리지 않고 인간 내면의 날것 그대로의 욕망과 그 안에서 일어나는 드라마를 치열하게 탐구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