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령The Longest Night: Namtaeryeong
감독 김현지KIM Hyunji | Korea | 2026 | 113 min | Documentary | 폐막작Closing Film
윤석열 정부 비상계엄의 여파로 나라가 완전히 뒤집어진 와중. 경기도에서 서울 남부로 가는 고개인 남태령에서 광장이 열린다. 차디찬 도로 위에 트랙터와 응원봉, SNS 생중계와 ‘보급품’, 숙련된 운동가와 ‘말벌 동지’가 우발적으로 뒤섞여 끈끈한 투쟁의 말과 몸짓을 펼친다. 이 광장은 거대한 분기점처럼 보인다. 이전과는 다른 방식의 투쟁과 연대를 가능하게 만든 분기점. 〈어른 김장하〉의 김현지 감독은 이 분기점의 형성에 참여한 사람들과 그 연결망을 숨 가쁘게 따라가 본다.
각 인터뷰이는 어떻게 결정되었고, 인터뷰 순서는 어떤 목표에 따라 배치되었는가?
남태령을 트위터와 유튜브로 지켜보며 수없이 많은 트윗에 실시간 ‘맘찍(좋아요)’과 ‘알티(리트윗)’, 북마크를 했다. 스크린 캡처만 수백 장. 이분들이 역사의 참여자이자 증인이라는 생각으로 수동 ‘복붙’의 아카이빙 시트를 만들었다. 모든 분을 만나고 싶었지만 활동 빈도와 영향력, 이슈에 대한 당사자성, 남태령 이후 관련된 활동 지속 여부를 고려해 인터뷰이를 선정했다.
인터뷰이 중 내향인 기수가 가장 먼저 등장한다. 절대 광장에 나설 것 같지 않다고 여겨졌던 수많은 내향인들, 평범하고 조용한 보통의 사람들이 이번 광장에서 보여 주신 헌신에 감사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직장인이라 주말에, 아니면 연차를 쓰면서까지 집회에 꼬박꼬박 참석하고 그 와중에 1인 가구라 빨래와 청소도 빼놓지 못하는 성실함, 비싼 월세 내고도 내 집에 평안히 머물지 못하는 공화국 시민의 책임감에 감동했다.
각 인터뷰이가 남태령의 순간 외에도 여성, 농민, 노동, 청년, 지역, 장애인, 성소수자 의제 등과 관련해 다양한 각자의 목소리를 지녔기에, 이를 하나의 타임라인에 어떻게 녹여 낼 것인가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 현장에 쏟아진 아름다운 시민 발언 중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수많은 집회 촬영본 중 특정 현장만을 선택할 수 있는가 고민하는 사이 편집 버전이 자꾸 쌓여 갔다. 모든 것을 이야기하려다 보면 아무것도 말하지 못한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 최대한 노력했다. 현장을 고발하는 대신 이 새로운 인류를 세상에 소개하고 우리 사회가 함께 만들어야 할 약속과 규칙을 고민하고자 했다.
본격적인 촬영은 언제부터였나? 이 작품에는 다른 창구에서 가져온 푸티지들도 있지만, 그만큼 직접 촬영된 시위 현장들도 있는 것 같아 여쭤보고 싶다.
본격 첫 촬영은 2월 18, 19일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선고 공판을 앞두고 통영에서 진행된 투쟁 문화제 취재였다. 트위터의 ‘말벌 동지’들과 뉴스 속 조선하청노조원들이 세대, 지역, 성별을 뛰어넘어 진짜 동지가 되어 가고 있음을 보았다. 밤새 끝없이 이야기 나누고 물어야 할 것과 묻지 말아야 할 것을 새로 배우며 서로를 돌보고 있었다. 노조도 청년도 세상도 바뀌고 있음을 목격했다.
인터뷰는 3월 전주환 님의 논갈이 현장부터 시작했다. “농사는 묵은 밭을 갈아엎는 것으로 시작한다”라는 농민의 말씀처럼 시원시원하고 즐거운 대화였다. ‘페미니즘’을 입 밖에 내어 말해 본 적도 없던 분이 “두 번 말하니 좀 낫다”라며 웃을 때 이 다큐를 시작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시위·집회 촬영은 많이 힘들었다. 우선 동시 녹음 팀이 없는 저예산 다큐 제작자에게, 끝없이 흘러나오는 시위 현장의 음악과 구호 들은 통제할 수 없는 두려운 존재다. 절박하고 늘 과로에 시달리는 운영 위원들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눈치껏 행사 순서를 파악하고 촬영 계획을 짜야 한다. 기업 보안 요원이나 경찰과의 충돌은 오히려 싸우고 버티면 되니 쉬웠다. 신원 노출을 원치 않는 시위 참여자, 무례한 촬영 팀에 지치고 화난 분들을 피하면서도 그들의 진심을 전할 수 있는 장면을 찾고 찍고 골라야 했다. 눈칫밥이 서러우면서도 기성 언론의 취재 관행을 반성하는 기회가 되었다.
주로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의 한화 본사 앞 고공 농성장, 대구성서공단지역지회의 대구 출입국 사무소 및 순복음교회 앞 집회, 서울, 진주, 창원의 탄핵 집회 현장, 그리고 2차 남태령 1박 2일 등을 취재했다. 조현우, 류일화 조감독의 도움이 컸다. 이참에 엔딩 크레디트에 오르지 못한 숨은 공로자를 한 명 꼽자면 MBC 경남 이해나 PD이다. 편집실이 붙어 있는 탓에 1년이 넘게 “탄핵 탄핵 윤석열 탄핵”과 “차 빼라, 차 빼라”의 광장 서라운드 체험을 하면서도 묵묵히 견뎌 주었다.
트위터(현 X)의 퀴어 유저들이 대부분 얼굴을 드러내고 인터뷰를 하고 있어서 좀 놀랐다. 인터뷰이들과 어떻게 접촉하셨고, 그들이 인터뷰에 어떻게 응했는지 말씀해 달라.
트위터 DM으로 기획서를 보내며 섭외했다. 여기 유명 트위터리안과 팬 미팅을 하고 싶은 내 사심은 없는지 계속 자문했다. 내겐 일부 사심이 있었지만 출연자들은 모두 ‘남태령을 알리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각자 가능한 영역 내에서 흔쾌히 도와주셨다. 현장과 트위터라는 이중 광장이 어떻게 폭발적 시너지를 내게 되었는지, 광장 이전과 이후 본인의 삶에는 어떤 변화가 있는지 물었다.
이미 각오했지만 생각보다 더 많은 분이 얼굴을 드러내는 것을 힘들어하셨다. 사이버불링의 끔찍함을 잘 아는 청년, 여성, 소수자일수록 두려움이 강했다. 누구보다 용감하게 목소리 내온 분들이 상찬의 무대에 직접 오르지 못한다는 것이 속상했지만 AI로 다람쥐 얼굴을 덧입히거나 마스크 등 소품을 활용하기로 했다. 얼굴을 노출하지 않으면서 피해자나 범죄자처럼 보이지 않도록 신경 썼다. 에스텔 님에게는 〈형사 가제트〉의 빌런(의자에 파묻혀 고양이를 쓰다듬는 뒷모습)을 레퍼런스로 보여 드리기도 했다.
논바이너리 깃발을 들고 남태령에 있었던 용주 님이 “딸들, 수고했어”라는 말에 “저희는 사실 딸이 아니에요”라 답할 수 있었던 것도, 이를 들은 농민이 “그렇구나, 알아 두겠다” 답할 수 있었던 것도 그날 남태령을 가득 채웠던,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대의 공기 때문이었다. 이 한 번의 아름다운 연결감이 용주 님에게 희망을 보여 주었기 때문에 카메라 앞에 얼굴을 드러내고 자연스럽게 웃을 수 있지 않았을까? ‘이렇게 해맑게 웃는 청년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다, 건강하게 계속 웃으며 달려가도록 지켜 주고 싶다’는 마음이 영화를 본 모두에게 전해졌길 바란다.
제목과 메인 사건은 남태령 투쟁이지만, 영화는 계속해서 그 바깥, 12·3 내란도 넘어선 고질적인 바깥의 문제들을 보여 주려 애쓴다. 거꾸로 말하자면 남태령 투쟁이 노동·농민 운동은 물론 페미니즘, 퀴어, 이주 노동자, 장애인 같은 수많은 사회 문제들에 긴밀히 (선제적으로도 사후적으로도) 얽힌 사건임을 가시화하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의식인 것이다. 이에 대해 덧붙일 말씀이 있다면.
공화국의 시민으로서 내가 가장 분노했던 순간은 2024년 12월 8일 한덕수 국무총리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대국민 담화였다. 누구에게도 선출되지 않은 두 엘리트 남성이 아무도 허락하지 않은 ‘질서 있는 퇴진’과 ‘권력 이양’을 말하는 것을 보며 우리가 얼마나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내란은 어느 한 사람이 우발적으로 벌인 일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누적되었던 수많은 차별과 혐오가 그날을 계기로 터져 나온 것이었다.
우리는 왜 싸우는가. 우리는 누구와 싸우는가. 엘리트들의 뻔뻔한 ‘시민 권력 탈취 시도’가 가능했던 것은 우리가 우리를 학대하며 각자도생의 공포에 짓눌려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왜 권력자에게 관대하면서 평범한 사람에게는 이다지 가혹한가. 영웅에게 쉽게 매료되면서 보통 사람의 헌신은 왜 조롱하는가. 최소한의 재분배도 허락하지 않기 위해 시민 사이의 차별과 혐오를 권장하는 이 흐름을 깨고 싶었다. 그때 남태령을 만났고 거기서 흐름이 바뀌고 기세가 변하는 것을 목격했다. 이 희망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여기서부터 우리가 ‘다시 시민 되기’를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터뷰이들 역시 모두 ‘민주주의의 회복’을 원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민주주의’를 원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유별나게 통쾌하고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TK 지역 여성 ‘말벌 동지’들의 시퀀스였다. 내란 정국을 함께 통과한 광의의 동지들 사이에서 ‘이 기회에 TK는 완전히 망해 봐야 해’ 같은 말이 나올 때마다 화가 났던 기억이 있는데, 이 시퀀스는 그에 대한 카운터펀치처럼 느껴졌다. 이 시퀀스의 필요성을 설명해 주실 수 있을는지.
2차 남태령 당일, 후배 PD들을 현장으로 보내고 나는 지리산 산불 취재 지원을 나갔다. 이리저리 날아 번지는 불 앞에서 인간은 무력했다. 집이 불탄 경상도 사람들도, 키보드 뒤에서 모욕하는 다른 지역 사람들도. 온몸에 불 내음을 묻히고 두려움에 떠는 할머니들과 밥차를 끌고 달려온 보수 단체 회원들의 헌신을 보며 진영 논리만으론 지역의 현실을 해결할 수 없음을 절감했다. 내란 과정의 다양한 순간들이 영화가 되고 글이 되겠지만 지역 방송 연출자로서 남태령을 지역과 연결하는 것은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또한 PK의 딸로서, 지역과 여성이라는 이중 차별 속에서 힘들어하는 TK의 딸들의 당당한 목소리를 담고자 했다. 2000년에 Pusan이 Busan으로, Taegu가 Daegu로 바뀌었음에도 여전히 TK, PK가 생명력을 가진 단어라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스무 살의 내가 이전 세대 언니들의 노력으로 많은 것을 누렸듯 지금의 청년 TK의 딸들에게 조금이라도 어깨를 빌려주고 싶었다.
지역민이 수도권 집중을 비판하면 갑자기 자신과 서울을 동일체로 여기며 ‘어쩔 수 없다’고 얼굴 붉히거나 ‘내가 가해자라니, 어째서?’ 하고 당황하는 비지역민들께,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의도하지 않아도 억압하고 착취하는 자가 될 수 있음을 말씀드리고 싶다. 지역은 시간도, 사람도 없다. 그리고 지역은 결코 혼자 소멸하지 않는다. 이 어려운 주제에 관해 역시 ‘그렇구나, 알아 두겠다’로 시작하는 긴 대화를 기대한다.
다른 투쟁 현장과 남태령 투쟁 현장을 촬영하고 반추하는 것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었는가? 연대자가 아닌 다큐멘터리스트로서 느끼신 차이를 설명해 주시면 좋겠다.
남태령 이후에 남태령을 일상으로 옮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만나며 하나의 조직으로서 기능하기보다 서로 다른 조각들이 뭉쳐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전혀 안 어울리는 조합인데 신기하게 서로 잘 기대어 있는 모습. 부스러기인 줄 알았던 사람들이 세상의 조각으로 당당히 빛나고 있다는 느낌. 언제든 흩어질 것을 염려할 수도 있지만 어디든 다시 모일 수 있음을 믿어 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나도 귀여운 세상의 한 조각’이라고 생각하면 신기하게 책임감이 불끈하면서 동시에 부담감도 낮아진다.
영화를 유쾌하게 만들고자 노력했다. 새로운 시민의 탄생을 그들의 언어로 전하고 싶었기에 중년의 연출자지만 형식 면에서도 최대한 흉내 내고자 했다. 그래서 ‘재밌다’라는 평가가 가장 감사했다. 그렇다고 해서 남태령 현장이 절박하고 처절하지 않았다는 뜻은 전혀 아니다. 새벽녘 지하철 역사에 쓰러지듯 기대앉은 사람들과 그들에게 뭐라도 먹이기 위해 애태운 사람들 모두 누구보다 절박하고 처절했다. 다만 혼자가 아니며 뒤이어 분명히 누군가가 와주리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 와중에도 웃을 수 있고 견딜 수 있었던 것 같다.
영화 안에서 말로 설명이 되곤 하지만, 감독님의 말씀을 직접 들어 보고 싶다. 이 작품은 종종 스크린을 스마트폰 디스플레이처럼 꾸미며 SNS를 통한 연대의 가능성을 이미지로써 소화하려 애쓴다. 그렇다면, 동시대 온라인 환경이 기존 사회 운동에 어떤 내재적 변화를 불러왔다 보시는가? 이는 남태령 투쟁을 비롯한 지난 내란 정국의 광장을 조명하며 트위터에 이리 주목하신 계기와 이유와도 밀접히 맞닿았으리라 생각된다.
SNS로 혁명을 할 수 있는가는 질문은 꽤 오래되었고 많은 희망과 회의가 교차했다. 디지털 네이티브는 이제 SNS나 유튜브를 도구로 사용한다기보다 생활 그 자체로 받아들인다. 인생의 많은 활동이 온라인에서 이루어진다. 기성세대가 알지 못하는 플랫폼이 점점 많아진다. 다양한 의제를 누구나 빠르게 쏘아 올릴 수 있으며 조직과 권위에 기대기보다 불특정 다수가 의제별로 빠르게 ‘헤쳐 모인’다. 탄핵 광장의 비상 행동 집회에서 평등 수칙이 실시간 수정되며 정립되는 장면은 새로운 운동 문화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오프라인 시민 조직의 중요성 또한 이해해야 하며 현장의 활동가들에 대한 존중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비상 행동이 내란 직후 약 1천7백 개 단체를 연합해 낼 수 있었던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현장을 지켜 온 수많은 단체들의 저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SNS에서 ‘쏘아 올린 공’을 받아 안아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결국 만남이 필요하다. ‘좋아요’와 ‘리트윗’이 돈이 되게 만들어 버린 플랫폼 기업의 SNS는 문제 제기에는 유용하나 결코 토론하기 좋은 도구는 아니기 때문이다. SNS를 통한 연대가 기존 운동의 경직성을 보완하면서도 안정적 운영을 돕는 힘이 되려면 결국 사용자들의 책임감이 필요하다.
영화가 담지 못한 지점에 대해서도 여쭤보고 싶다. 내란 정국 이후 사회 운동의 과제는 무엇일까? 이 작품에 담긴 다양한 의지와 희망을 앞으로 지속하기 위해서는 말이다. 말미에 “남태령이 너무 미화되진 않았으면 좋겠어요”라는 말이 나왔기에 더더욱 궁금하다.
길어지는 러닝 타임의 부담에도 후반 이슬기 기자 인터뷰를 통해 꼭 말하고 싶었다. 남태령은 완전무결한 신화의 순간이 아니라 우리가 익혀야 할 태도라고.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흠결을 지닌 보통 사람이기에 서로의 구질구질함을 받아들이며 견딜 각오를 해야 한다고. 싸우더라도 회복 가능한 수준의 방식으로 싸워 화해할 가능성을 남겨 두자고.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제거’하려는 마음은 ‘척결’을 유독 좋아하던 어떤 이를 떠오르게 하니까. 농부는 내년 봄을 위해 씨종자는 꼭 지키니까.
대중은 늘 영웅을 바라고 영웅은 어렵게 태어나 쉽게 죽는다. 신화에 기대기엔 민주주의는 너무 소중하다는 걸 우리 모두 뼈저리게 느꼈다. ‘영웅을 기다리는 민주주의’ 대신 ‘동지를 만들어 가는 민주주의’를 기대한다. 나 스스로도 ‘내 마음 속의 관용이 미래의 못난 나를 살릴 것’이라는, 전혀 멋지진 않지만 쓸모 있는 각오를 다져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