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처분계획—미아리 텍사스 편〉에는 장윤미의 다른 영화들에 비해 여러 형식적 요소가 혼재한다. 다른 영화들에서도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이나 인터뷰어로 존재감을 드러내곤 했던 화자로서의 장윤미, 타인의 사연을 대독하는 목소리로서의 장윤미, 서로 독립적이면서 독립적이지 않은 사운드와 사진 혹은 사운드와 영상, 그리고 침묵하는 연출자로서의 장윤미. 미아리 텍사스의 현실에 대한 이토록 다각적 접근은 이 사건을 영화화하는 데 있어 장윤미의 고민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말해 준다. 장윤미 감독에게 이 고민에 관해 직접 들어 보았다.


감독님의 영화에는 〈깃발, 창공, 파티〉를 제외하곤 모두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이나 인터뷰어의 형태로 본인의 목소리가 들어가 있다. 〈깃발, 창공, 파티〉와 다른 영화들 사이엔 감독님과 피사체 간의 상호 작용이 드러나느냐 아니냐의 차이가 있을 것 같다. 〈깃발, 창공, 파티〉에서는 침묵을 지켰던 목소리가 〈관리처분계획—미아리 텍사스 편〉에서는 다시 나타난 이유나 계기가 궁금하다.

이번 작업에서는 한 가지 방식으로 정갈한 인상의 다큐를 만드는 게 아니라 울퉁불퉁하고 불균질한 느낌을 만들어 내고 싶었다. 기존 미디어에서 재현된 성매매 집결지 ‘미아리 텍사스’와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착취나 폭력이라는 수식어로 이 공간과 사람들을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일단 이곳을 좀 더 가까이 느끼도록 하는 데 내 목소리가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고 그 방식은 그나마 해본 것들인 보이스오버 내레이션, 그리고 인터뷰어로 등장하는 형태가 되었다. 또한 〈깃발, 창공, 파티〉에서와는 달리 인간의 얼굴과 모습을 적극적으로 드러낼 수 없다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형식이 가능하기도 했다.

 

‘1부 골목’에서 감독님은 누군가를 이모라고 호명하는 편지를 대독하는데, 이 편지는 실재하는 텍스트인지 아니면 여러 레퍼런스가 섞인 텍스트가 만들어 낸 픽션인지 궁금하다. 또한 영화 속에는 그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 이모라는 호칭을 씀으로써 관객을 미아리 텍사스의 사연 속으로 끌어들이는 효과가 일어나는데, 이 또한 의도하셨는지 묻고 싶다.

현장에서 잘 알고 지내던 이모님이 있었기에 자연스레 그 방식이 떠올랐던 것 같다. 영화 속에는 그 대상이 존재하지 않지만, 글을 쓰는 동안 염두에 둔 이모는 현실에 존재한다. 골목의 사람들을 불편하게 할까 봐 미아리 텍사스에 드나드는 동안 마음이 늘 편치 않았는데 먼저 안으로 들어오라 해주신, 지금도 여전히 만나는 이모님이 계신다.

그 이모님과의 대화, 그곳에서 일하는 다양한 구성원들에게 들었던 이야기들, 그리고 내가 간직한 이야기 조금을 뒤섞어서 나온 글이다. 편지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고 이모님이 앞에 있다고 상상하며 연극의 독백 형식을 염두에 둔 채 썼다. 성매매 집결지나 성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혐오 때문에 사람들에게 쉽사리 촬영이나 녹음 얘기를 꺼내기 어려웠다. 애쓰며 부탁하지도 않았다. 사람들과 어울려 이야기를 나눈 다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기억나는 이야기들을 간단히 메모했다. 이상하지만 보편적이기도 한 미아리의 이야기들이 참 좋았다.

 

영상보다 사진의 비율이 더 높다고 느껴질 정도로 사진을 많이 사용했는데, 멈춰 있는 사진에 반해 사운드는 멈추지 않고 계속된다. 사진과 보이스오버 내레이션, 혹은 사진과 사운드 간의 매치는 얼마만큼의 필연성이 있는지 궁금하다. 다시 말해, 어떤 기준을 가지고 사진과 사운드를 묶고 나열했는지 말씀해 주신다면.

대체로 이미지와 사운드 간의 필연성은 없다. 그렇다고 완전히 우연적인 것은 아니다. 같은 장소에서 발생한 이미지이고 글이니까. 이번 작업에서는 이미지와 사운드라는 두 타임라인을 느슨하게 이어 붙이다가 한 번씩 정확하게 지시해 주는 방식으로 만나도록 했다. 가령 꼬리 치며 다가오는 하얀 개 사진에 “하얀 개가 복을 가져다준다고”라는 내레이션을 붙이는 식이었다. 두 가지가 붙었다가 멀어졌다가 또 붙었다가 하는 운동성을 상상하며 편집했다. 오프닝 장면인, 정확히 어딘지 모를 입구로 들어가는 눈 내린 골목 사진들을 이어 붙이고 나자 뒷부분은 자연스럽게 풀렸다.

 

‘2부 투쟁’을 촬영할 때 위험한 상황이 꽤 있었을 것 같다. 위험한 자리에서 촬영한 듯한 장면이 많은데 이때 상황이 어떠했는지 듣고 싶다.

우선 ‘2부 투쟁’의 주체에 대해 설명하고 싶다. 이들은 미아리 텍사스를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자신들을 대상으로 이주 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한다. 비록 법적 권한이 없더라도 말이다. 법적 권한이 없기에 강제 이주를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우리 몫을 내놓으라고 더 당당하게 요구하는 것에 매력을 느꼈다. 요구는 재개발 조합뿐 아니라 재개발의 최종 승인자인 지자체로도 향한다. 이 다큐멘터리에 담긴 것은 성매매 집결지라는 특수한 지역의 재개발 문제이기도 하면서 모든 재개발 현장에서 나타나는 문제이기도 하다.

미아리 텍사스의 골목이 워낙 좁아 용역과 대치하게 되면 위험할 수밖에 없었다. 촬영본에 얼굴이 최대한 나오지 않게 찍으려다 보니 사람들 뒤에 바짝 붙어 찍어야 했기에 몸의 균형을 잘 잡으려고 애썼던 기억이 난다. 키가 작다 보니 카메라를 아무리 높이 들어도 골목 풍경이 잘 담기지 않아 ‘삐끼 통’에서 파란 플라스틱 의자를 꺼내 올라갔던 기억도 난다. 하지만 과열된 분위기 안에 있으면 오히려 위험을 잘 못 느끼는 것 같다. 이 작업을 하는 동안 카메라가 번거로워서 휴대폰으로 찍는 날이 많아졌다. 휴대폰으로 찍는 것도 차츰 거의 하지 않고 집회에서 구호만 외치는 날도 있었다. 점점 연대자의 위치에 서게 된 것 같다.

 

1, 2, 3부의 형식이 모두 다른데, 각 형식을 택한 이유와 지금과 같은 순서로 배열하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애초에 각각 독립된 단편으로 옴니버스 영화처럼 만들자는 아이디어도 있었다. 그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도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다. 1부에서는 미아리 텍사스 골목을 오가며 느낀 친밀감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휴대폰 사진과 이모에게 말을 건네는 글을 이어 붙인 것이다. 미아리 텍사스 재개발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품고 있던 질문이 있었다. ‘그곳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을 여성들은 누구일까.’ 쭈뼛거리고 방황하면서도 꾸준히 골목을 오가다 결국 만나고 싶던 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떠나라는 요구를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싸우기로 결심한 사람들. 이들과의 만남 덕분에 2부를 만들 수 있었다. 3부는 1부와 2부를 완성하고 시간이 좀 지난 뒤에 제작하게 되었다. 성매매 집결지도 다양한 구성원들이 모인 하나의 생태계다. 그 구성원 중에 ‘현관 이모’가 있다. 언론에는 주로 법에 명시된 성매매 피해자로서의 여성들만 가시화되지만 말이다. 많은 대화를 할 수 있었던 한 이모와 긴 인터뷰를 나눌 기회가 생겼고, 그 구술을 그대로 사용하며 3부가 만들어졌다. 이 구술에 대한 ‘편집권’을 지닌 연출자로서 그의 말을 잘 다루기가 쉽지는 않았다. 현재의 결과물이 나의 최선이다.

 

중간에 “없어지기 전에 여기 소리 녹음하려고요”라고 말하는 감독님의 목소리가 삽입되어 있다. 유일하게 사건과 분리된 감독님 본인으로서의 목소리인데, 사운드에 관련된 내용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미아리 텍사스를 다루는 이 영화에서 이미지만큼이나 사운드에 비중을 두신 이유가 있을까.

현실적인 이유로는, 촬영 허락은 받기 힘들어도(나로서도 촬영 허락을 받기 위해 애쓰지 않았고) 어느 정도 라포르가 형성된 뒤에 목소리 사용은 허락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사운드라는 장치는 이미지를 곧이곧대로 보이지 않게 하고 풍부하게도 해주는 기능을 한다고 생각한다. 이 점을 잘 활용하고자 했다. 언급하신 1부에서 나의 목소리는 두 가지 위치로 나타난다. 화면 바깥에 있는 화자의 내레이션이면서 화면 속 현장을 배회하는 인물의 목소리. 3부에서는 나의 질문과 반응을 일부러 더 남겼고, 인터뷰어로서도 드러나게 된다.

 

같은 대상을 찍더라도 관찰하는 방식으로도, 참여하는 방식으로도 담을 수 있다. 이번 경우엔 철저하게 후자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감독님이 느끼시기에 바라본다는 것과 함께한다는 것은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가.

간단하게는 ‘관찰하는 방식’으로 만들 때보다 ‘참여하는 방식’으로 만들 때 카메라를 훨씬 적게 들게 되는 것 같다. 〈관리처분계획—미아리 텍사스 편〉은 현장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작업이다. 2022년부터 미아리 텍사스에 드나들었고 투쟁에는 2년 정도 함께했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함께했다’라는 표현을 쓰게 된다. 찍는 방식의 차이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매번 촬영 대상과 함께한다는 생각으로 다큐멘터리를 만든다. 물론 현장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번 작업은 유독 카메라 밖에서 함께하는 시간이 길었고, 다양하고 복잡한 관계들을 맺은 것 같다. 더 많이 연루된 것일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