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가족〉은 김지현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한국 영화에서 보기 어려웠던 여성 퀴어 가족이 주인공이다. 이들이 작고 낡은 차를 타고 집을 떠났다가 돌아오기까지 이틀간의 여정을 따라가는 로드 무비이자 성장 영화다. 영화 내내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여러 가지를 감춰 오던 희수는 수치심과 두려움을 끌어안은 채로 진실을 드러낸다. 그 순간 결핍인 줄 알았던 것이 자신을 온전하게 하는 힘으로 전환된다. 퀴어 자긍심도 퀴어 용기도 관계 속에서 비롯됨을 느끼며, 떠오른 수많은 질문 중 일부를 물었다. 


이번 영화를 만들기 전 어떤 작업을 해왔는지, 또 어떤 계기로 영화를 시작하게 됐는지 간략히 소개해 달라.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영화과를 나와서 영화를 하게 되었다. 사실 영화과를 조금 충동적으로 갔다. 부모님이 내가 영화과에 지원한 것도 모르셨을 정도였다. 별생각 없이 입학했는데 열정 있고 실력 있는 친구들이 너무 많았다. 당시 활동하시던 감독님들 중 여성은 극소수였다. 그분들은 정말 당당하고 멋졌는데 나는 멋진 사람이 전혀 아니었다. 도무지 내가 감독이 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나의 목표는 ‘영화 근처에서 일하는 사람’이 되었다. 

홍보 영상 업체에서도 일했고 영화제에서도 잠깐 일했고 영화와 상관없는 회사도 다녀 봤다. 그런데 결국 창작하는 일이 성격에 잘 맞는다는 걸 깨달았다. 잘하든 못하든 잘 맞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다시 대학원에 들어갔다. 

〈이상 가족〉 전에 작업한 단편영화들은 대학원에서 찍은 것이다. 〈세계화 시대의 진화〉(2017), 〈다정을 위한 시간〉(2019)인데, 모두 내가 이해하고 싶은 여성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영화 제작이 침체되면서 드라마 대본을 습작해 보기도 했었다.

 

청소년 딸이 둘이나 있는 레즈비언 부부가 이혼을 고민한다. ‘지금, 여기’의 퀴어 영화로 동성혼이 법제화되지 않은 현실을 반영하고는 있지만, 동시에 연애와 결혼, 출산을 뛰어넘고 곧장 이혼에서 출발하는 이야기라 판타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어떻게 구상하게 된 영화인가? 

한 방송인이 정자 공여를 통해 아이를 가졌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 이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가 외국인이라 가능했던 게 아닐까 싶었는데, 찾아보니 2007년에 어느 한국인 방송인도 정자 공여로 아이를 가진 사례가 있었다. 만일 그와 비슷한 시기에 레즈비언 커플이 정자 공여를 통해 4인 가족을 꾸려 살아왔다면 어떤 모습일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미 정자 공여로 아이를 낳아 사는 사람도 있고 법적 인정은 없지만 결혼한 동성 커플도 있다 보니, 내게는 이 가족의 삶이 판타지로 느껴지지 않았던 것 같다. 

또 퀴어 서사를 가족 이야기로 확장해 보고픈 마음도 있었다. 해외에는 코믹하고 감동적인 퀴어 가족 이야기가 많은데, 한국은 동성혼이 법제화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런 이야기를 보기 어렵다는 점이 아쉬웠다. 오히려 이런 배경에서 가족이 된 사람들을 다루었을 때 한국의 특수한 상황을 잘 담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각자의 성격이 잘 드러나는 주연 배우들의 연기와 합이 굉장히 좋았다. 중년의 퀴어 엄마이자 작가를 연기하는 이영진 배우를 볼 수 있어 가슴이 두근거렸고, 따뜻한 눈빛으로 단단한 내면을 담아내는 강진아 배우의 연기가 영화의 중심을 잡아 줬다. 섬세하고 공감 가는 연기를 보여 준 전채은 배우와 당당하고 매력적인 김레이 배우가 두 딸을 연기하며 어딘가에 정말 있을 법한 가족을 상상하게 했다. 캐스팅 과정은 어땠나? 그리고 배우들과 캐릭터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이었나? 

다선 역에는 이영진 배우 외에 다른 사람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다선은 구멍 난 티셔츠를 입고 있어도 멋있는 사람이었으면 했다. 그런 역할에 이영진 배우 말고 다른 사람을 떠올릴 수 없었다. 그에게는 비일상적이고 신비로운 느낌, 또 위엄이 있다. 거기에 코믹하고 현실적인 연기를 더해 현실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소싯적 반항아 느낌을 잘 내주셨다. 특히 배우 본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강하면서 선한 느낌이 다선과 정말 잘 맞았다. 그런 부분들이 너무 좋았다. 

반면 희수 역은 많이 고민했다. 원래 시나리오에서는 희수가 좀 더 현실적이고 엄격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강진아 배우를 만나고 새로운 희수를 봤다. 강진아 배우는 남의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해주는 사랑스러움을 지녔는데, 그런 분이 희수 역을 맡아 주시니 희수의 현실적인 면모가 마냥 매정해 보이지 않았다. 한때 다선과 함께 이상을 꿈꿨던, 그러나 현실주의자가 되어 버린 희수의 어쩔 수 없는 이중성을 절묘하게 표현해 주셔서 정말 좋았다.

솔 역의 전채은 배우는 드라마 〈작은 아씨들〉에서 인상적으로 보았다. 저분이 솔이를 맡아 주시면 참 좋겠다 생각하며 드라마를 봤는데, 〈이상 가족〉에 참여한다고 하셔서 깜짝 놀랐다. 전채은 배우의 눈에는 여리면서도 강렬한 느낌이 있다. 남에게 무관심해 보여도 사실 다 지켜보며 상처받는 솔이를 잘 표현해 주셔서 무척 좋았다. 또 잔잔해 보이는 이미지와 달리 날렵하고 몸을 잘 쓰셔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원 역도 오랫동안 적임자를 찾지 못했다. 원이가 생각 없어 보이지만 사실 정 많고 사려 깊다는 걸 납득하게 하는 배우여야 했다. 그러다 김레이 배우를 만났다. 시원스러우면서 예리한 느낌이, 아무 말이나 막 하는 것 같은데 사실은 다 맞는 말인 원이와 잘 어울렸고 대사도 찰지게 소화해 주셔서 너무 좋았다. 현장에서도 김레이 배우가 원이 대사를 할 때 속이 다 시원하고 뭔가 환기되는 느낌이 들었다.

배우들에게는 처음에 시나리오를 드리고 리딩을 한 번 한 게 전부였다. 모두 캐릭터를 저보다 잘 이해하고 들어와 주셨다. 현장에서 디렉팅을 할 필요도 없었고 첫 테이크가 거의 다 OK였다. 이토록 멋진 배우들을 만나다니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영화는 자신으로 살기 위한 고투와 관계의 덜컹거림을 ‘가족이니까’라는 당위 안으로 쉽게 포섭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자리를 대신하는 가치가 무엇이어야 하는지 고민하게 한다. 중의적인 제목을 곱씹으며, ‘ideal’과 ‘weird’의 경계를 뛰어넘는 가족의 실천이란 무엇일지 생각해 보게 된다. 감독님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가족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이 영화를 통해 가장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가?

아무리 가족이어도 사실 남이기 때문에 그 사람 인생을 도와주거나 개입하는 데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 인생은 각자의 몫인 것 같고, 다만 ‘저 사람이 살면서 마지막으로 기댈 곳이 필요하다면 그건 내 어깨일 것이다’라는, 조금은 모호한 느낌을 공유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듯하다. 물론 ‘마지막으로 기댈 곳이 필요한’ 일이 없는 게 제일 좋긴 하겠지만.

영화를 통해 우리를 가족으로 만들어 주는 게 무엇일까 이야기해 보고 싶었다. 우리가 오로지 제도나 혈연에 기대야만 가족을 꾸릴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차피 모든 것은 변하고 가족의 형태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 부분을 모두가 떠난 종갓집을 홀로 지키는 다선의 엄마 향춘을 통해 표현하고 싶기도 했다.

 

이상적인 가족’이라는 표현은 극 중 다선의 에세이 마지막 문장에도 등장한다. 다선이 그 문장을 쓸 때 어떤 구체적인 삶을 상상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나?

그때 다선은 20대였다. 자기가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나이에 사람들은 단지 내가 갖지 못했을 뿐 어딘가 완전한 관계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특히 다선은 보수적인 종갓집에서 여자아이라는 이유로, 레즈비언이라는 이유로, 또 방에 틀어박혀 글을 쓰는 별난 아이라는 이유로 문제적인 아이 취급을 받았을 터라 이상적인 가족에 대한 기대치가 높았을 것이다. 가족이라면 당연히 ‘있는 그대로의 나’를 긍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을 테고, 그건 구체적인 상상보다는 막연한 설렘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다선이 가족에 대해 품은 판타지라고 생각한다. 누구도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는 것 같다. 다만 못 받아들이고 이해 못 해도 그냥 어느 순간 어깨를 내줄 수도 있다.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런 고마운 순간들을 부정하는 건, 인생에서 간혹 빛이 나는 흔치 않은 장면을 내버리는 일일지도 모른다. 다선이 40대가 되면서 그런 것들을 조금씩 알아 가는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영화가 끝난 후, 등장인물들이 각자 자기다울 수 있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건 어떤 모습일까 생각해 보게 됐다. 단순히 이혼이냐 아니냐, 같이 사느냐 따로 사느냐에 대한 결정을 넘어서 말이다. 이 영화를 만들고 이 이야기를 통과함으로써 감독 본인은 자기 자신이 될 수 있었나?

잘 모르겠다. 다만 이 이야기를 쓸 때 다선, 희수, 솔에게는 나의 일부를 조금씩 주었는데, 원이와는 별로 공통점을 찾지 못했다. 그런데 영화를 찍으면서 원이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원이처럼 살고 싶어서 원이 같은 인물을 쓴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변화한 게 있다면 그 지점인 것 같다. 

 

솔은 가족을 포함해 내게 중요한 타인을 최대한 만들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한다. 반면 엄마들은 법적으로 얽히는 게 없으면 우리끼리라도 얽자며 관계를 더 복잡하게 만든다. 제도적·사회문화적으로 지지받지 못하는 가족을 꾸려 가는 상황에서 다선과 희수가 모든 역할을 완벽히 수행하기란 더 버거웠겠지만, 그 노력을 알아보듯 원은 말한다. “그만하면 괜찮은 어른들이야. 난 우리 엄마 아니고 밖에서 만난 남이라고 해도 좋아했을걸.” 청소년에게, 그것도 자기 자식에게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 아닌가 싶었다. 좋은 어른이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나? 생을 긍정하기 어려운 조건 속에서 먼저 살아가는 사람이 다음 세대에게 보여 줄 수 있는 태도가 있다면 무엇일까?

애써 좋은 말이나 조언을 해줄 필요도 없고, 좋은 일이나 봉사 활동을 한다고 좋은 어른이 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저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는 게 전부인 것 같다. 물론 이게 어렵지만, 최소한 다음 세대의 사람들 앞에서라도 바른 행동을 하려고 노력했으면 좋겠다. 노력하던 사람이 실패하고 잘못을 인정하고 또 노력한다면 그래도 용서가 된다. 매일 일상 속 태도의 문제인데, 사실 너무 어려워서 나는 언제 어른이 되려나 싶다.

 

다음 작품이 궁금하다. 앞으로 영화를 통해 무엇을 어떻게 다루고 싶은가?

아주 사적인 일이나 감정도 사실은 사회와 시스템의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편이라서, 그런 이야기를 쓰는 데 흥미를 느낀다. 또한 나 자신이 ‘영화를 만드는 사람’보다는 ‘창작하는 사람’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체력과 능력이 허락하는 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매체와 형식을 가리지 않고 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