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전주에서 마음을 뒤흔드는 한 편의 영화를 만나길, 문성경 프로그래머는 기대한다. 다음은 그가 담당한 섹션의 올해 방향에 대한 이야기다. 독립예술영화 투자제작 프로그램인 ‘전주시네마프로젝트’, 거장의 신작을 소개하는 ‘마스터즈’,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이는 ‘영화보다 낯선’, 영화에 대한 영화를 모은 ‘시네필전주’를 간추려본다.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근황이 궁금하다.

영화제의 존재 이유를 찾으며 한 해를 보낸 것 같다. 인터넷 기사로만 접해온 영화산업의 변화와 실체가 얼마나 다른지 외국 출장을 가서 확인하기도 했다. 많은 자원을 가진 세계 3대 영화제도 혼란의 상황을 비켜 갈 수 없는 것을 지켜보며 걱정도 됐었고, 상영을 확정한 영화들이 하나둘 쏙쏙 온라인 세계로 날아가는 걸 보며 힘이 빠지는 상황도 있었다. 그러나 재미있는 점은 글로벌 플랫폼의 거대한 상업영화도 영화제를 통해 선을 보이는 전략을 취하고 있고, 플랫폼으로 빠지는 영화가 많으면 많을수록 독립예술 영화가 주목받을 수 있는 곳은 영화제라는 점이다. 즉, 영화제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잇는 연결고리이자, 자본의 논리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는 없지만 최소한 휘둘리지 않고 독립적인 목소리를 소개할 수 있는 장이며, 이렇게 소개된 영화들이 다양한 경로로 배급될 수 있는 최초의 발판으로서의 역할을 여전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공포를 조성하는 많은 기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극장에서 영화 보기를 고집하고 영화제에 오는 것을 즐거워하는 관객이 있음을 확인한 것도 올해 전주의 봄을 기대하는 이유다.

 

올해전주시네마프로젝트섹션의 기조와 방향에 대해 말해달라.

전주시네마프로젝트는 전주국제영화제가 독립예술영화에 직접 투자하여 저예산영화 제작활성화를 도모하는 프로그램이다. 올해 수확은 제법 풍년이라고 할 수 있다. 총 4편(한국영화 1편, 외국영화 3편)의 신작이 소개되며 극영화, 다큐멘터리, 실험영화 등 그 장르도 다양하다. 이 영화들의 공통점은 우리 삶의 방향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는 것이다. 〈시간을 꿈꾸는 소녀〉는 남의 운명을 봐주는 소녀가 정작 자신의 길을 고민하는 갈등을 보여주고, 〈입 속의 꽃잎〉은 불치병에 걸린 남자가 낯선 이와 파리의 밤카페에서 대화를 나누며 인간 조건의 상대성에 대해 논한다. 〈애프터워터〉는 도시를 떠나 호수와 숲속으로 떠난 이들이 마주하는 시간을 초월한 유토피아를 제시하고, 〈세탐정〉은 이 시대의 고통을 짊어진 도시를 배경으로 빈 상가를 떠돌아다니는 무정부주의 자들을 그린다. 모두들 잘 살고 싶어 하지만 그렇지 못한 현실 속에서 이들은 삶의 과도기에 있는 것일까, 혹은 삶이란 벗어날 수 없는 불안정한 파도 위를 항해하는 것일까. 어떤 영화는 강렬한 질문을 던지고 어떤 영화는 자신만의 답을 제시한다.

 

마스터즈섹션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무엇인가.

마스터즈는 거장의 신작을 소개하는 섹션으로, 한 평생 영화를 품고 살아온 장인들이 바라보는 동시대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올해 특이한 점은 거장들의 단편 제작이 늘어난 점이다. 대형 프로젝트들 이 촬영을 할 수 없게 되자 이들은 스튜디오에서 홀로, 때로는 자연 속으로 떠나서, 혹은 소수의 사람들과 가능한 선에서 영화를 만들었다. 루크레시아 마르텔, 차이밍량, 라두 주데, 안드레이 우지커 감독의 단편을 미니섹션으로 마련했으니 기대해달라.

 

놓치면 아쉬울 영화가 있다면 1편만 소개해달라.

벨라루스에서 태어나 우크라이나에서 10대를 보낸 세르히 로즈니챠 감독의 신작 〈미스터 란즈베르기스〉를 추천하고 싶다. 소련 고르바초프에 맞서 리투아니아의 독립운동을 이끈 비타우타스 란즈베르기스가 당시 상황을 들려주는 다큐멘터리다. 생생한 자료 화면과 증언은 그 자체로도 중요하지만 30년이 지난 현재도 역사가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올해영화보다 낯선섹션이 시도하는낯섦이 궁금 하다.

영화보다 낯선은 ‘영화’라는 정의와 그 한계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형태의 실험적인 작품을 보여주는 섹션이다. 올해는 영화의 경계를 질문하는 시대에 ‘확장된 영화’(Expanded Cinema)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했다. 그간 이미지 언어 형식에 초점을 맞춰 작품을 소개해온 이 섹션의 전통을 변형시키는 두 가지 시도를 해봤다. 첫째, 이미지뿐만 아니라 ‘이야기’의 새로운 형태를 제시하는 영화를 포함했다. 둘째, ‘영화보다 낯선+’에서는 그간 영화감독의 새로운 시도를 전시장에서 소개하던 전통을 전복시켜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는 이들의 무빙이미지 작업을 오히려 영화관에서 소개하려 한다. 이야기의 새로운 형태를 시도해보고 싶은 분들께는 키로 루소 감독의 〈위대한 움직임〉을 추천하고, 무빙이미지의 확장을 느껴보고 싶은 분들께는 ‘영화보다 낯선+’의 단편작들을 추천한다.

 

시네필전주섹션의 기획 배경은 무엇인가?

영화감독들은 종종 영화광이기도 하다. 자신이 사랑했던, 혹은 영감받았던 영화들에 대한 조사를 하며 그 영화에 대한 영화를 만드는 사례가 있다. 또 고전 영화 중에 영화제에서만 겨우 볼 수 있던 희귀작들 이 최근 디지털 리마스터링으로 복원되는 사례가 늘어 이들을 소개할 장소가 필요했다. 이런 작품들을 모아 ‘영화에 대한 영화’ 섹션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시작된 거다. 기존에 있던 ‘시네마톨로지’ 섹션의 전통을 이어간다고 봐주면 되겠다.

 

개인적으로 지지하는 영화가 있다면 소개를 부탁한다.

올해 조금 특이하게도 두 편의 영화가 짝을 이루어 선보일 예정이다. 1987년 미완성으로 남아 있다 뒤늦게 완성된 폴란드 공상과학영화 〈은빛 지구〉(안제이 주와프스키)와 이 영화를 둘러싼 수많은 논란을 보여주는 〈은빛 지구로의 탈출〉(쿠바 미쿠르다)이라는 다큐멘터리는 함께 보면 더 좋을 작품이다. 그 외에도 〈녹색의 해〉(1963)로 알려진 포르투갈 거장 파울루 호샤의 〈사랑의 섬〉과 이 작품에 관련된 주변 인물들이 증언하는 〈파울루 호샤에 대하여〉(사무엘 바르보자)도 호샤의 영화를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작품이다.


Invitation Letter

 

프로그래머로 전주에 온 첫해, 한 기자님이 제게 물어보셨습니다. 어떤 영화가 좋은 영화냐고 요. 관객의 마음에 클릭이 되는 작품, 자신의 삶에 연결이 되는 작품이라고 대답을 했었습니다. 이 말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하자면 자신의 인생에 새로운 서사가 생기는 작품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세상에 너무도 많은 영화가 있고, 더 많은 볼 것들이 있기에 내 삶과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영화는 스쳐 지나갈 뿐 마음에 자리를 남기기 힘듭니다. 그러나 가끔 어떤 영화들은 알 수 없는 이유로 마음에 울림을 가합니다. 올해 전주에서 내 마음을 타격하는 한 편의 영화를 만나시길 감히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 작품이 왜 내 마음에 자리를 잡았는지 천천히 알아 가는 시간도 가져보시길, 그리하여 전에는 보이지 않던 우리 삶의 새로운 부분이 보이게 되길 바라봅니다.


Programmer’s Picks

 


문성경

고등학교 시절 부산국제영화제가 생겼고, 시험이 끝나는 날이나 주말이면 하루에 영화를 4편씩 보는 재미로 살았다. 누군가에게 짧은 순간이나마 해방감을 선사하고 다른 세계를 보여주는 게 영화라면 그 분야에서 일을 해보고 싶다는 소망을 가졌다. 2004년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램팀에서 경력을 시작해 부산국제영화제, KT&G상상마당시네마, 전주프로젝트마켓, 인천다큐멘터리포트, 영화진흥위원회 중남 미주재원을 거쳐 2019년부터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