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구석 자리로 주세요 I'd like that corner seat over there 감독 박세영 PARK Syeyoung | Korea | 2025 | 86min | Experimental | 코리안시네마 Korean Cinema


이 구석은 극장의 구석이 아니다. 오히려 극장보다 더 익숙한 풍경의, 평범한 식당의 구석이다. 장편 데뷔작 〈다섯 번째 흉추〉(2023)에서 곰팡이의 이동을 따라가며 침대 매트리스를 아예 사건의 장소로 성립시켰듯 박세영의 관심은 역시 하나의 자리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하나의 자리는 정말 단일한 자리일까?’라는 물음이다. 이는 (같은 앨범 안에 수록된 곡이더라도) 제각기 상이한 진행과 방식으로 만들어진 사운드트랙의 틈을 느슨하게 이어 보는 일과도 연관된다. 그리하여 뮤직비디오는 영화가 될 수 있는지와 같은 상투적인 화두는 꺼내지 않는 편이 타당하고, 차라리 〈저 구석 자리로 주세요〉는 매체의 ‘변환’을 거치지 않고도 인물들의 등퇴장과 행위의 반복만으로 픽션이 발생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더없이 근사한 결과물이 된다.

뮤지션 김오키가 올해 3월 발매한 17집 앨범 〈힙합 수련회 2025〉의 스무 곡을 위해 박세영 감독은 스무 개의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다. 이미 김오키의 노래 ‘코타르 증후군’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했고, 단편 〈갓스피드 Godspeed〉(2020)에서는 서로 음악감독/배우와 감독으로 만났던 이들은 또 한 번 합심했다. 전술했듯 이번에 박세영의 제약은 협소한 구석 자리이다. 어째서인지 고민 있는 인물들은 다 거기에 앉는다. 뒤편에는 유리로 된 벽이, 앞쪽에는 회전형 원탁이 놓인 이곳의 특성상 맞은편에 앉은 이들의 얼굴이 어슴푸레 비치거나 테이블이 슬슬 돌아가는 순간들을 따라, 대사나 자막 없이도 제가끔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방해받고 싶지 않은 사람들의 위치인 구석 자리는 자주 시야와 동선의 사각지대가 되기 마련이지만, 〈저 구석 자리로 주세요〉에서는 방대한 내러티브의 배경으로 변모한다. 이를테면 우리는 검은 옷을 입은 두 남성이 쫓는 것인지 쫓기는 것인지 식사 중에도 입구 쪽을 향해 번갈아 고개를 돌리는 장면에서, 그들의 반복적인 움직임과 노래의 템포가 마치 루바토 처럼 맞는 듯 어긋나다 점차 아첼레란도 로 빨라지는 광경을 목격하게/듣게 된다(‘미련’). 이 연작에서 시간은 대체 어떻게 흐르는 걸까? 그런가 하면 상심에 빠진 표정으로 과격하게 주사를 부리던 인물과 그를 달래는 친구(‘보고싶다라는 건’)는 같은 날인지 다른 날인지, 다른 화면에서는 즐거이 춤을 추고 있다(‘럭키’). 무엇이 같거나 달라지는 걸까? 혹은 이 연작에서 같은 얼굴을 같은 인물이라 부를 수는 있는 걸까?

더구나 상상력을 덧대는 또 다른 설정은 인물들이 ‘진짜로’ 행동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이 식당의 손님들은 대개 손짓과 시늉으로 먹고 마신다. 면발이 없지만 후루룩 대고 알코올이 없지만 만취한다. 카메라 없이 셔터를 누르고 열기 없이 땀을 흘린다. 상황을 설명하는 언어 없이 오로지 장소와 행위, 그리고 음악이라는 요소만으로 이야기가 가능하다. 음악의 주인이자 공동 기획을 맡은 김오키가 주방장으로 분해 만들어 내는 몸짓을 확인해 보는 일도 새삼 즐겁다. 이 사람 저 사람 드나드는 공간, 나도 한 자리 차지하게 만들고 싶은 이상한 세계. 박세영은 또 한 번, 제한된 설정을 갑갑한 구속이 아니라 새로운 발화를 위한 모종의 구실로써 이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