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방 Where is My Father? 감독 김태윤 KIM Taeyun | Korea | 2024 | 75min | Fiction | 한국경쟁 Korean Competition

서울로 취직해 이사 준비에 여념이 없는 윤(김태윤). 그런데 며칠째 아버지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가 갈 법한 곳, 만날 법한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윤은 자신이 몰랐던 아버지의 또 다른 면모와 마주한다. 아버지는 어디로 갔을까? 그리고 내가 알던 아버지는 어떤 사람일까?


아들 윤이 사라진 아버지의 행적을 쫓는 이야기다. 이 과정에서 그는 지금껏 자신이 알지 못한 아버지의 삶을 새로이 알게 된다. 이야기 구상은 어떻게 하게 됐나.

고향인 제주도에서 영화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다. 그런데 막상 시작하려고 하니 이 공간을 통하여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무엇을 보여 줄 수 있을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렇다면 가장 개인적인 것에서부터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 내가 이 ‘섬’이라는 공간에서 느꼈던 그간의 감정과 생각은 어떤 것이 있었을까? 하고 돌이켜보았는데 ‘아버지의 부재’와 ‘고독함’이라는 키워드가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올랐다. 어릴 적 아버지 직장이 서울이었기에 많으면 1~2주에 한 번, 적으면 한 달에 한 번 정도 아버지를 뵐 수 있었다. 이러한 기억과 감정들을 토대로 중심 사건을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로 설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가 오랜 시간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면, 당연히 찾으러 다니지 않을까 생각해서 아버지를 찾아다니는 스토리로 구상하게 됐다.

아버지의 행방을 쫓는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이 등장하지만 윤 혼자 영화 전체를 이끈다고 봐도 무방하다. 감독 본인이 윤을 연기했는데. 배우를 기용하지 않고 스스로 연기를 한 이유는? 윤의 어떤 감정을 극대화해서 표현하려고 했나.

윤 역할에 다른 배우를 캐스팅하는 것도 고려했었다. 연출에만 집중했다면 지금보다 더 완성도 높은 장면이 나왔을 수도 있고, 다른 배우가 연기했다면 또 다른 방식으로 흥미로운 장면들이 탄생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 연기를 하기로 한 이유는 단순하다. 연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2014년에 배우로 데뷔했지만 아직 대표작이라고 부를 만한 작품이 없다. 그래서 한 번쯤은 긴 호흡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역할을 맡아 보고 싶었다. 또한 시나리오를 직접 썼기 때문에 누구보다 이 역할을 잘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흔히 부자나 모녀 관계를 ‘애증’의 관계라고 표현하는데, 윤을 연기하면서 이 감정에 집중하려고 했다.

연출과 연기뿐 아니라 프로듀서, 촬영, 편집, 색보정 등 다방면에서 활약했다. 로케이션이 많아 프로듀서로서 할 역할도 많았을 듯하고, 전체적으로 윤의 동선을 따라가는 영화이다 보니 특히 촬영과 연출, 연기를 겸하는 데 어려움이 상당했을 것 같다.

연출과 연기를 겸하며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내 연기와 다른 배우들의 호흡이 잘 맞아떨어지는지, 연결이 매끄러운지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이었다. 배우들에게 시나리오에 얽매이지 말고, 주어진 상황 안에서 즉흥적으로 연기를 해보자는 말을 자주 하며 촬영을 진행했다. 촬영감독과 사전에 콘티를 논의하며 많은 준비를 했지만, 현장에서 계획이 바뀌는 경우도 많았다. 대부분 정해 둔 콘티대로 촬영하기보다는 로케이션과 주변 환경을 고려해 숏의 구성을 유동적으로 조정하며 촬영했다. 특히 아버지가 단독으로 나오는 장면은 어선의 탑승 인원 제한으로 인해 내가 직접 카메라를 들고 촬영을 진행했는데, 이 장면 또한 시나리오를 그대로 따르기보다 배우에게 상황만 부여한 뒤 인물을 관찰하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제주는 지형적 특성상 하루에도 날씨가 여러 차례 변한다. 프로듀서로서 이 변수를 관리하는 것이 큰 부담이었기에, 상황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인원으로 촬영을 진행했다. 날씨 이슈로 인해 플랜 B, C를 고려하더라도 예산과 일정에 차질이 불가피했지만, 오히려 그 흐름을 받아들이며 작업을 이어 갔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주어진 환경 속에서 최선의 장면을 만들어 보자는 마음이었다. 돌이켜보면 예상치 못한 상황을 억지로 통제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어 나간 것 같다.

아버지의 행적을 뒤따르는 과정에서 제주의 여러 장소가 등장한다. 관광지로서의 제주 풍경에 익숙하던 이들에게는 꽤 낯선 풍경들이 등장하는데.

여행자의 시선이 아닌,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시선으로 제주를 담아내고자 노력하였다. 그래서 로케이션 선택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이루어진 듯하다. 영화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장소는 제주 남쪽, 서귀포에 위치해 있다. 어릴 적 자주 오갔던 공간들이어서 그런지 내게는 관광지보다 이러한 일상의 풍경들이 훨씬 더 익숙하다.

프로덕션 과정에 대해 보다 상세히 설명해 준다면?

영화 제작은 대학원 재학 중에 진행되었고, 기획과 시나리오 작성에는 약 1년 반이 걸렸다. 이후 배우와 스태프 구성, 로케이션 섭외를 동시에 진행해야 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프리 프로덕션 기간을 제주에서 보냈다. 예산이 제한적이었고, 동기들도 각자 작업 중이라 제주까지 내려와 도와줄 동료들이 없었다. 그래서 현지 스태프를 구성하기로 했고, 제주 내 방송·영화 관련 학과 학생들에게 협업을 제안해 스태프를 짰다. 캐스팅을 위해 제주 내 극단에 찾아가고 주변인들에게 소개도 받았다. 프로덕션 단계에서는 촬영이 한 번 중단되었다. 준비가 부족했던 내 책임이 가장 컸다. 그렇게 촬영을 완료하지 못한 채 시간만 흘러갔고, 이렇게 끝낼 수는 없다고 생각해 1년 동안 철저히 준비한 후 다시 프로덕션을 진행했다. 2차 프로덕션 때 촬영을 다시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은 동료들의 큰 도움 덕분이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촬영을 마친 후에는 2~3주간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편집 작업에 들어갔다. 현장에서 오케이 컷, 킵 컷이라고 판단했더라도 촬영이 끝난 후 다시 보았을 때 느낌이 달라질 것이라 생각해, 모든 촬영본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훑어보며 편집을 시작했다. 최종본은 75분으로 나왔지만, 처음에는 러닝타임이 100분 정도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야기를 압축하고 빠르게 전개하기 위해 몇몇 장면은 생략했다. 또한 이 영화는 인물과 공간이 함께 어우러지는 영화이기 때문에 색감과 명암 대비가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도록 작업했다. 사운드 디자인 역시 카메라 위치와 인물과의 거리감을 고려해, 시각적으로 전달되는 것과 청각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이질감이 없도록 신경을 썼다. 예를 들어 인물이 카메라에 가까운 거리에 있지 않다면, 대사가 너무 생생하게 들리지 않도록 조정하여 보는 사람에게 자연스러운 몰입감을 주고자 했다.

감독 본인이 제주 출신이고,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친구들과의 대화 신을 비롯해 영화 전반에서 진한 제주 방언을 들을 수 있다. 제주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를, 날것에 가깝게 그리고자 한 까닭은?

제주 출신으로서, 나에게 제주도는 여행지가 아니라 그저 일상의 공간이다. 그래서 특별히 아름다운 제주의 모습을 강조하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담고 싶었다. 언어도 마찬가지다. 경상도나 전라도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그 지역 사투리를 쓰듯, 제주에서도 방언은 자연스럽게 쓰이는 언어다. 인물들의 감정과 관계를 설득력 있게 표현하려면, 실제 사람들이 쓰는 언어로 이야기하는 것이 더 진정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제주스러움을 강조하려 한 것이 아니라 이야기가 놓인 환경을 있는 그대로 담은 것이다.

윤이 방문하는 여러 장소 중 강정마을 투쟁 현장이 특히 눈에 띈다. 강정의 풍경에 유독 주목한 이유가 있을까?

내가 기억하는 강정마을은 평화롭고 자연이 공존하는 장소였다. 어릴 적 강정천에서 친구들과 물놀이를 하며 놀았던 기억이 선명한데, 지금은 마을 모습이 많이 달라졌다. 그런 변화를 보며 강정마을이 겪고 있는 상황과 그들이 지키려고 하는 것에 대한 의미가 나에게는 더욱 깊게 와닿았다. 그래서 그 당시의 기억을 바탕으로, 마을 사람들이 여전히 그곳을 지키려는 모습과 의미를 영화에 담고자 했다. 보통 투쟁 현장이라고 하면 강렬하고 긴장감 넘치는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강정마을에서는 오히려 평화적인 방식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런 평화적인 방식의 투쟁이 영화 속에서도 자연스럽게 전달되기를 바랐다.

영화 혹은 드라마로 다루고 싶은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면?

노인 빈곤층이 증가하는 한국에서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한 한 노인의 이야기를 구상하고 있다. 늦은 나이에도 여전히 꿈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인간의 의지와 희망을 그려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