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사랑해. All Is Well, I Love You. 감독 김준석 KIM Junseok | Korea | 2025 | 95min | Fiction | 한국경쟁 Korean Competition

연극 배우이지만 생계를 위해 대리 주차 일을 하는 준석(김준석). 육아를 위해 잠시 무대를 떠난 아내 소라(손소라). 같은 시기, 각자 연극 출연을 제안받은 두 사람 중 누가 육아를 맡고 누가 무대에 오를 것인가 하는 건 이들 부부에게 매우 큰 문제다. 두 사람은 이를 위해 ‘자체 오디션’을 진행한다.


단편 〈그래도, 화이팅!〉(2021), 〈그래도, 행복해.〉(2023)에 이은 ‘그래도 삼부작’이다. 이번엔 장편인데, 어떻게 구상하게 됐나.

코로나 시국에 생계를 위해 배달 일을 하면서 드라마와 영화 비대면 오디션 영상들을 찍었다. 그때마다 내 어린 시절 이야기를 1분으로 압축해 수다맨처럼 연기를 했는데, 그 모습을 촬영해 주던 아내가 재미있다며 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 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아내 말대로 내가 주인공인 장편영화 시나리오를 써서 영진위 장편영화 제작지원사업에 제출하려고 했는데, 자격 요건을 보니 단편영화 1편 이상을 연출한 이력이 있어야 하더라. 부랴부랴 극단의 형에게 카메라를 빌려 만삭의 아내와 하루 동안 우리 삶을 담은 영화를 찍었고, 그것이 바로 〈그래도, 화이팅!〉이다. 이 영화에는 주로 나만 나와서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두 번째 단편 〈그래도, 행복해.〉를 만든 이유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두 영화 모두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다. 또 주변에서 혹시 시리즈냐고 묻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 중에 재밌는 소재가 또 떠올랐는데, 때마침 두 단편을 배급한 필름다빈의 백다빈 대표가 장편 소재에 관심을 보이며 공동제작 제안을 해주셨다. 그렇게 장편영화 〈그래도, 사랑해.〉가 만들어졌다. 처음부터 계획한 것은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그래도 삼부작’이 된 셈이다.

준석은 육아를 위해 연극 무대를 떠난 아내 소라가 다시 연기를 하길 바란다. 아내에게 존댓말을 쓰고, 아내의 상황을 깊이 이해하는 듯한 준석은 한국영화나 드라마에서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비교적) 선한 남편상이다. 하지만 같은 기간, 자신 역시 캐스팅 제안을 받자 육아 문제로 신경전을 벌이면서 간혹 밉상 면모를 드러내기도 하는데. 코믹한 캐릭터와 유머러스한 상황 설정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우선 우리 부부는 연애 시절부터 존댓말을 썼다. 서로 존칭을 쓰다 보니 크게 싸울 일이 없더라. 코믹한 캐릭터는 내 원래 성격이 그런 편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반 아이들 앞에서 조용조용 웃긴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했다. 중학교 때는 어머니께 커서 개그맨이 되고 싶다고 말씀드린 적도 있으니까. 물론 커 가면서 그 꿈은 희미해졌지만.(웃음)

부부의 대화를 중심으로 다수의 인물이 등장해 함께 대화를 나누거나 준석이 전화통화를 통해 타인과 대화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말의 향연’이라고 할 만큼 자연스러운 대사가 일품인데, 시나리오 작업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시나리오 단계부터 철저히 짜인 상황인지, 즉흥 연기가 포함된 것인지도 궁금하다.

나 역시 영화를 보면서 ‘이야… 이런 즉흥연기가 있었네…’ 하고 생각한 장면이 있었는데 대본을 보니 즉흥 대사가 아니었다. 97퍼센트는 대본이고 3퍼센트 정도가 즉흥 연기라 할 수 있다. 나는 이 영화가 ‘피식’ 하면서 웃음 짓게 만드는 영화이길 바랐다. 좋아서 하는 일인데, 우리의 삶이 답답하고 우울하게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그런 마음으로 나와 주변 인물들을 두고 시나리오를 써 내려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상황이 설정됐다. 더불어 동료 배우 분들의 호흡을 잘 알고 있었기에 실제처럼 상상하며 대사를 쓸 수 있었고, 자연스러운 연기로 이어지지 않았나 생각된다.

카드 회사 심야 상담사 경험 덕분인지 극 중 전화 통화 장면이 매우 인상적으로 느껴졌다. 그중에서도 상대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 상황에서 준석의 대화만으로 전체 대화를 유추하게 하는 장면은 연극의 독백이 생각나기도 했는데. 전화 신을 유독 많이 넣은 이유가 있을까?

어떤 의도를 가지고 전화 신을 많이 넣은 건 아니다. 실제와 허구가 섞인 이 영화의 모든 사건의 발단이 통화로 시작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일과 육아를 병행하다 보면 사람을 만날 시간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평소에도 주변 사람들과 소통을 전화로 많이 하는 편이라서다. 통화 독백 장면이 들어간 이유는 모든 통화에 상대방 목소리가 들어가면 관객 피로도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기도 했고, 혼자 하는 통화로도 충분히 상대방 목소리가 들리게끔 연기를 할 수 있다는 나름의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웃음)

연출과 각본, 연기, 편집을 모두 도맡아했다. 각각 주안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사람들이 모여 있을 때 에피소드를 재밌게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 이야기들을 정리해서 글로 옮겨 적으니, 각본이 짜여졌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영화 같지 않나? 삶이 이러이러하게 흘러가도 재미있겠지? 상상하면서 편집점을 생각하니 어렵지 않게 나누어졌던 것 같다. 연출은… 글쎄, 따로 공부한 것은 아니지만 내 눈에 보였으면 하는 장면을 촬영감독에게 말씀드리고 함께 만들어 갔다. 컷 나누는 것도 참 어려웠다. 그래서 롱테이크를 선택한 것도 있고, 나눠 가려고 했는데 긴 호흡이 잘 담긴 장면도 있다. 연기적인 측면은 크게 고민하지 않고 가장 나답게 해보자는 생각으로 솔직하게 임했다. 모든 파트가 쉽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밀어붙였던 듯하다.

실제 프로덕션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스태프를 모신(!) 경험이 없다 보니 프리 단계에서 주변 분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배급사 대표님을 통해 촬영감독님을, 가까운 선배를 통해 음향감독님을 소개받았고, 연출부 식구들은 원래 알고 지내던 동료들이 흔쾌히 작업에 참여해 주었다. 발 벗고 도와준 동료들에게 다시 한번 더 진심으로 감사하고 사랑한다고 전하고 싶다. 그렇게 프리 단계와 프로덕션 단계 모두 내가 상상한 대로 진행이 됐다. 상상을 좀 많이 했다.(웃음) 포스트 작업은 발렛 부스에서 휴대전화 검색으로 어디 후반작업 지원사업이 없나, 알아보다가 전주 영화 후반 제작지원 사업을 발견했고, 운이 좋게도 우리 영화를 선택해 주어서 큰 도움을 받았다. 진심으로 깊이 감사드린다.

영화의 주요 배경이 되는 준석과 소라의 집을 비롯한 공간 연출은 어떻게 했나.

나는 부산이 고향이고 서울에서 자취를 아주 오래 했다. 우리 부부는 단독주택에 대한 로망이 있었는데, 감사하게도 동료 소개로 오래된 단독주택을 전세로 들어오게 되었다. 전세이긴 하지만 셀프 리모델링도 하게 됐고, 집에 오는 손님들도 “집이 참 예쁘다”는 말을 많이 해주었다. 어떻게든 이사를 가기 전에 이 예쁜 집에서 영화를 찍어 보고 싶었는데… 돌이켜보니 무려 세 편의 영화를 찍었다. 〈그래도, 사랑해.〉에서 공간 연출에 가장 신경 쓴 장면은 마당에서 단체 손님과 촬영하는 것이었는데, 연극이 하고 싶은 부부가 비록 집 안에서지만 연극 무대라고 상상하며 관객 앞에서 현실에선 펼칠 수 없는 이상적인 삶을 잠시나마 느낄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미장센이라는 것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게 부끄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떠나고 나면 추억으로 남겨질 공간을 영화라는 매개체에 담아 둔 것이 참 감사할 따름이다.

여러 분야에서 배우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그럼에도 감독으로서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하는 이유가 있다면?

극단 생활을 10여 년간 했다. 아내도 마찬가지다. ‘연극만’ 하겠다는 배우도 드물게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배우가 연극을 비롯해 영화, 드라마에 출연하기를 원한다. 내가 나의 매력을 알고, 동료들의 매력 또한 알고 있는데 매체에서 그 매력을 보여 주기가 쉽지 않은 현실이다. 목마른 사슴이 우물을 파듯이, 아니 우물을 찾듯이 내가 우물을 파고, 찾고 싶었다. 첫 단편영화를 만들기 전만 해도 내가 동료들과 장편영화를 만들어서 영화제에 초청된다는 것은 마치 로또에 당첨된 것처럼 허황하고 꿈 같은 일이었다. 간절했다. 지금도 여전히 간절하다. 빛나는, 보석 같은 배우들과 함께 영화를 만들게 되어서 진심으로 영광이고 또 행복했다. 함께 잘되고 싶은 마음이 앞으로도 글을 쓰고 만드는 작업을 꾸준히 하고 싶은 이유이다.

감독으로서 이후 영화로 다루고 싶은 다른 주제가 있나? ‘그래도 삼부작’처럼 자전적인 요소가 포함되지 않은 영화도 해볼 생각인가? 배우로서의 목표도 궁금하다.

자전적 요소가 포함된 영화를 세 편이나 만들다 보니 나 스스로 ‘음… 그만하고 싶은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바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려고 하니 그렇게 어려울 수가 없더라. 내 이야기로 시작해서 많은 분들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보려고 한다. 몇 작품을 열심히 창작 작업 중인데, 쉽진 않지만 꾸준히 쓰고 있다.

‘좋은 연기는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가슴속에 항상 품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다. 이번 영화에서 우리가 한 연기가 좋은 연기일까…? 좋은 연기에 가까울까…? 역시 모르겠다. 나를 배우의 길로 이끌어 준 은사님께 ‘좋은 연기’에 대한 아리송한 답을 들은 적이 있다. ‘여행과 인문학’이라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배우가 되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나름의 목표인 것 같다. 모쪼록 이번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여행과 인문학’을 행하고 싶다. 그리고 관객 여러분 모두 힘들 때도 있겠지만, 그래도 사랑하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