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탄핵 표결 당시 뜨거운 구호와 함께 거리를 물들였던 갖가지 응원봉의 색, 그리고 〈뮤직 뱅크〉 공개 방송을 앞두고 KBS 홀 앞에 줄을 선 채 조용히 흘러가는 검은 인영(人影)들. 〈디어 팬〉 도입부에서 교차하는 이 두 장면이 모두 여의도라는 공간에서 펼쳐졌다는 걸 문득 깨닫고 기묘한 위화감을 느낀다. 12·3 내란이라는 민주주의의 위기 속에서 응원봉은 공연장이 아닌 거리에서 흔들거렸고, 처음에 어떤 이색으로 보였던 이 풍경은 2년여가 지난 지금 내란 세력에 맞선 시민의 저항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공인되었다. 그렇지만 그런 반짝임이 지나가고 난 뒤의 여의도에서 응원봉은 거리에 여전히 머물러 있는 대신 다시 검은 패딩 속으로, 공연장 안으로 들어간 것처럼 느껴진다.

 

〈디어 팬〉의 감독 강나라는 이 양방향의 위화감을 가슴 속에 품은 채로 그날 광장에 나왔던 아이돌 팬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듯 보인다. 계엄이라는 충격을 경험한 후 집회에 각자 응원봉을 들고 나온 팬들의 이야기는 그 광경이 결코 어우러짐의 아름다움으로만 단일하게 해석될 수 없다는 점을 드러낸다. ‘정치적인’ 목소리를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그룹 활동에 도움이 안 된다며 금기시하고 광장에 나선 이들을 사이버불링하는 아이돌 팬덤 내부의 부정적 반응, 마마무 퀴어·앨라이 팬들의 모임인 무지개무무가 지속적으로 활동하는 퀴어 팬덤이 자신들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할 때의 씁쓸함, 탄핵이 마무리된 후 광장에서 분출됐던 사회 변혁의 열망과 다양한 존재들에 대한 가시화가 사그라든 데 대한 문제 제기가 가감 없이 카메라에 담긴다. 그것은 ‘빛의 혁명’이라는 자랑스러운 단어와는 쉽사리 어울리지 않는, 하지만 그렇기에 더 중요한 이야기들이다.

 

다큐멘터리는 광장에서 펼쳐졌던 광경이나 감독 자신의 질문 및 내레이션에 시간을 할애하는 대신 저마다 지지하는 아이돌의 응원봉과 앨범, 굿즈를 펼쳐 놓은 팬들의 모습과 이야기를 길게 포착한다. 때문에 〈디어 팬〉은 12·3 내란 당시 아이돌 팬덤의 전반적인 형상을 아우르는 설명이라기보단, 팬들 각자의 경험을 스케치처럼 남긴 짧은 기록에 가깝다. 조금 거칠고 정돈되지 않았을지라도, 이들의 차분한 이야기는 아이돌과 정치, 그리고 저항의 관계에 대해 정리된 역사 못지않게 중요한 화두를 던진다. 더불어 책상에 가지런히 늘어선 앨범과 귀엽게 장식된 포토 카드, 아이돌의 공식 색을 넣은 피켓과 카메라 앞에 내보이는 응원봉들에서 나는 이 작품이 출연한 팬들에게 눈에 띄지 않게, 하지만 확실하게 보내는 존중을 느낀다. 아이돌 팬이자 정치적 주체로서 이들이 지닌 프라이드는, 수많은 응원봉의 물결이 주는 스펙터클보다 이 소박한 다큐멘터리에서 더욱 확실하게 그 빛을 발하고 있다.

 

소중한 팬들에게. 헌사의 뜻을 담은 제목은 다큐멘터리를 보고 난 후에 더 깊은 울림을 준다. 비록 어떤 아이돌의 팬은 아니지만 내란 때 광장을 비추며 나아갔던 수많은 응원봉들에 큰 힘을 받은 사람으로서, 〈디어 팬〉이 남긴 담담한 기록은 내가 그때 응원봉을 들었던 이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연대감을 대신 전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 연대의 기억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이어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