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타 사야카의 소설 『편의점 인간』에서 반평생 동안 편의점 직원으로 일해 온 화자 후루쿠마는 자신을 새로 태어나게 한 편의점에 대해 “언제나 계속 돌아가는, 확고하게 정상적인 세계. 나는 빛으로 가득 찬 이 상자 속 세계를 믿고 있다”라고 독백한다. 점원으로서의 규율을 광신에 가깝게 체화한 후루쿠마를 보고 편의점이 그를 완벽하게 수동적인 ‘톱니바퀴’로 만들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반대편에서 보자면 편의점은 도리어 후루쿠마에게 생을 불어넣어 그를 움직이는 곳이다. 물론 그가 편의점의 소리를 들으면서 부여받은 생이 정말로 생생하게 살아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겠지만 말이다.

 

그러한 편의점을 배경으로 하는 〈애니마트〉는 광고 감독으로 활동 중이며 2023년 단편 〈공허Void〉로 호러 장르 연출에도 손을 뻗은 이와사키 유스케의 첫 장편 영화다. 일본어 원제인 ‘칠드(チルド)’가 저온 냉장을 의미하듯 작품은 파스 타스타PAS TASTA의 불길하게 디자인된 음악을 필요할 때만 사용하고, 조용하게 고정된 카메라와 건조함을 과장하는 연기를 통해 냉장 진열대의 반대편처럼 싸늘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애니마트의 한 점포에서 무감하게 근무하는 청년인 사카이 주변의 다른 직원들은 행사 상품처럼 눈 깜짝할 새 교체된다. 유통 기한이 지난 음식을 몰래 먹어 해고되거나, 망해 버린 앞 가게 사장이 투신하는 것에 깔려 버리거나, 창고에서 목을 매달거나.

 

이와사키가 짧은 일화들을 흩뿌리면서 소묘하는 편의점 안팎의 세계는 죽음이 ‘진상’ 손님처럼 뜬금없이 삽입되는 만큼 그 충격파가 지극히 일상적으로 처리되는 곳이다. 편의점의 길고 좁다란 뒷방 사무실에서 시종일관 폐쇄 회로 텔레비전을 들여다보는 점주는 죽은 직원들의 근무일을 어떻게 채울지만을 궁리하며 점포는 외국인 직원들을 고용해 운영을 계속한다. 사카이가 데이트 앱으로 만난 여성이 말하듯, 아무나 오갈 수 있는 편의점은 누구도 관심 두지 않기에 견고하거나 진짜처럼 느껴지지 않고 따라서 생사를 구분할 수 없는 곳이다. 마네킹 같은 인간들이 드나들고, 죽은 직원이 자기 모습을 한 가판대에서 목소리를 내며, 사카이를 포함한 모두가 이 귀신들이나 저온 냉장된 닭가슴살과도 다르지 않다.

 

그렇기에 〈애니마트〉는 이미 ‘빛으로 가득 찬 이 상자’와 다를 바 없어진 세계에서의 평범한 일상을 다룰 때 가장 빛을 발한다. 작중에서 가장 섬뜩하게 (그런 만큼 우습게) 느껴질 순간은 점주가 편의점 안에서 자기 손으로 점원들을 ‘교체’하면서 (카메라까지 유일무이하게 핸드헬드로 흔들리는 와중) 피와 폭력이 난무하는 결말이 아니라, 사카이가 어느 새벽의 환한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동료 직원 오가와와 함께 생기 넘치는 표정과 목소리로 대화하는 동안 요리사가 프라이팬으로 손님을 구타하는 광경을 같이 담은 장면이다. 바로 다음 장면에서 두 직원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 가게를 나선다. 어느새 날이 밝았고 저 멀리서 매미 소리가 들린다. 모두가 ‘편의점 인간’인 세계는 바로 이렇게 돌아간다.

 

이와사키는 자신이 어릴 적 주류 가게를 운영했던 아버지가 편의점 점주가 되자 인간성을 잃고 ‘무기적인’ 존재가 되어 버린 과정을 〈애니마트〉에 반영했다고 말한다. 실로 작품의 또 다른 공포는 점포 반대편에 진작 망가진 가부장과 핵가족이 있다는 사실이 서서히 밝혀지면서 생겨난다. 〈샤이닝〉의 잭과 대니 부자가 오버룩 호텔에 묶인 것처럼 애니마트의 (부)점장과 점주 또한 그저 편의점이 거기 있으니까 그곳에서 근무할 뿐인 폐쇄 회로에 갇혀 있으므로. 영화가 진공 팩에 담긴 닭가슴살과 계산대 반대편의 사카이가 서로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평평한 숏/역숏으로 여닫듯, 너무 밝은 이 진열대 속에서는 모두가 평생 매장을 서성이는 직원이자 손님이고 살아 있는 동시에 죽어 있는 고객이자 상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