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 앨리스: 리버스 Edhi Alice: REVERSE 감독 김일란 KIM Ilrhan | Korea | 2024 | 130min | Documentary | 코리안시네마 Korean Cinema

영화 〈마마상〉(2005), 〈3×FTM〉(2008), 〈두 개의 문〉(2012), 〈공동정범〉(2018)과 웹드라마 〈으랏파파〉(2021) 등을 연출한 김일란 감독이 신작을 공개한다. 다큐멘터리 〈에디 앨리스: 리버스〉(이하 〈에디 앨리스〉)에 관한 가장 큰 스포일러는 제목이다. 간단한 조사나 문장 부호조차 없이, 마치 한 사람인 양 나란히 배치해 놓은 두 개의 이름. 언뜻 보면 이 영화의 주인공들에게는 공통점이라고 부를 만한 데가 거의 없다. 활동가 에디와 조명감독 앨리스는 생김도 취향도, 삶의 경험과 속도도 판이하다. MTF 트랜스젠더라는 것 외엔 에디와 앨리스를 연결할 선이 마땅치 않은 듯한데, 김일란 감독은 두 사람을 보란 듯이 이으며 독특한 영화적 실험을 감행한다. 에디의 촬영장에 앨리스가 배턴 터치하듯 등장해 말을 건네고, 앨리스가 정돈한 공간에 다시 에디가 들어와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 놓는다. 내러티브를 교차하는 사이, 이미지 또한 자르고 붙이기를 거듭하며 다큐멘터리의 익숙한 문법을 거침없이 흔든다. 인물들은 정체성을 ‘연기’하는 배우 같기도, 내면의 강력한 주문을 따르는 수행자 같기도 하다. 그렇게 두 사람의 몸에 쌓인 시간을 겹쳐 보고 떼어 보면서 영화는 점차 고정된 서사도, 정지된 진실도 없는 공간을 생산해 낸다. 카메라 안팎의 경계를 허물며 다층적인 퍼포먼스를 펼쳐 보이는 〈에디 앨리스〉를 보고 있노라면, 영화 포스터에 적힌 짤막한 문구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트렌스젠더는 영화다.”


2024년 11월 암스테르담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IDFA)에서 작품을 최초 공개한 후, 국내에서는 전주를 통해 처음 관객과 만난다. IDFA에서 전회 매진을 기록했다고 들었는데 현지 반응은 어땠나. 해외에서 선공개하기로 결정한 이유도 궁금하다. 관객들의 반응 이전에, 제작진이 함께했다는 사실이 뜻깊었다. 영화를 함께 만들었던 키스태프와 주인공 들까지 다 같이 관객을 만나러 가는 과정 자체가 의미 있었다. IDFA에서 첫 상영을 마친 후 ‘에디 앨리스 팝업 파티’를 열었다. 워낙 큰 영화제다 보니 관객과 대화를 길게 나눌 기회가 없었는데, 그날 파티에 와준 수많은 사람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다들 진심으로 즐기며 첫 상영을 함께 축하했다. 〈에디 앨리스〉를 기획하는 단계에서부터 기존과는 다른 관객과의 만남을 기대했다. 연분홍치마가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때 전제하는, 동일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해석 공동체와는 또 다른 맥락을 지닌 관객들과 만나고자 했던 것이다. 우리의 새로운 시도가 어떻게 의미화되는지 지켜보고 싶었다. IDFA에서 첫 상영을 진행한 것은 여러모로 의미 있는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에디와 앨리스 모두 감독이 속한 다큐멘터리 제작 집단이자 인권운동단체인 연분홍치마와 인연이 있다. 에디는 유튜브 채널 ‘연분홍TV’의 〈퀴서비스〉 진행자였고, 앨리스는 웹 시트콤 〈으랏파파〉 등에 조명감독으로 참여했다. 말하자면 동료이자 친구로서 이미 관계를 맺고 있는 인물들인데 어느 시점에, 어떤 계기로 이들과의 영화 작업을 결정했나. 에디와 함께 〈퀴서비스〉를 제작하던 중에 에디가 먼저 자신을 주인공으로 삼아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2020년 무렵이었고, 영화에도 이야기가 나오듯 당시 여러 트랜스젠더가 세상을 떠났다. 에디는 한참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하루는 대화 중에 에디가 “열심히 살았는데 나의 삶이 헛되지 않기를 바라요. 잊혀지고 싶지 않아요”라고 하더라. 그 말이 인상 깊었다. 이후로 MTF 트랜스젠더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고민하기 시작했고, 우연히 트랜스젠더 조명감독인 앨리스를 만나게 되었다. 에디와 앨리스, 이 두 사람과 함께라면 트랜스젠더에 관한 새로운 서사와 미학을 함께 탐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디의 경우, 상대적으로 노출도가 있는 인물이다. 활동가이자 작가, 그리고 퍼포머로서 다양한 무대를 경험하며 카메라 앞에 서 왔다. 반면 앨리스는 대중이 전혀 모르는 인물이다. 무대와 카메라 앞이 아닌 그 뒤에 서는 것이 익숙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들을 각각 어떤 각도에서 조명하고 싶었나. 둘을 하나의 영화에서 동시에 다루는 것도 처음부터 계획된 설정이었는지? 에디와 앨리스는 영화를 기획할 때부터 함께 출연하기로 결정되어 있었다. 앨리스는 에디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외화면이자, 에디의 시간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가 하면 에디는 앨리스의 결핍을 부각하는 인물이자, 앨리스의 욕망을 드러내 주는 인물이다. 두 사람을 동시에 비춤으로써 트랜스젠더의 시간을 감각할 수 있는 토대와 그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프레임을 만들고자 했다.

영화에서 에디가 성기 수술 의사를 밝히며 “수술해야 다큐가 끝나니까요”라며 농담하듯 말하는 장면이 있다. 섭외 당시 출연자와 촬영 기간, 방식, 내용 등을 어떻게 조율했나. 애초에 에디가 다큐멘터리 작업을 제안했을 때 자신의 수술 과정을 영화로 담아 달라고 이야기했다. 에디는 트랜지션에 관한 정보를 접할 수 없었던 십 대 시절을 보냈다. 트랜지션 과정에 대해 과거 본인이 궁금했던 것, 새로 알게 된 것을 다음 세대의 트랜스젠더들을 위해 남겨 주고 싶다고 하더라. 나는 그런 에디의 선택들을 잘 따라가며 수술과 그 이후의 과정을 다큐멘터리에 기록했다.

영화 안에서 여러 공연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는 것처럼 보인다. 에디와 앨리스는 이러한 다층적 프레임을 지탱하는 힘이자 프레임 그 자체다. 그들은 디바처럼 마이크 앞에 앉고 거울을 보며 춤을 춘다. “원래 영상은 다 구라”라며 픽션의 가능성을 제시하다가 투명한 벽을 뚫고 나와서 “관객 여러분, 저거 실제로 하는 거예요!”라며 논픽션을 주장한다. 이 공연을 총괄한 감독의 마음이 궁금했다. 퀴어의 삶은 퍼포먼스라고 본다. 무대가 있고 그곳에 오르기 때문에 퍼포먼스인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맺는 관계 자체가 퍼포먼스인 것이다. 가장 나다운 순간부터 타인이 원하는 나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매 순간, 찰나마다 퍼포먼스를 수행한다고 생각한다. 그 삶을 영화의 형식 안에 담고 싶었다. 하나로 통합되지 않는 트랜스젠더의 시간성을 영화에 담는 것이 목표였다.

병원 진료, 수술, 목욕 등 개인의 지극히 사적인 순간을 담았다. 몸과 마음의 욕구뿐만 아니라 취약성 또한 드러내는 장면이다. 제작 과정에서 가장 신중하게 접근했던 부분은 무엇인가. 제작진과 주인공의 협의와 논의가 중요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몸을 드러내는 과정은 정말 쉽지 않고, 에디든 앨리스든 타인에게 몸을 보여 주는 일에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제작 과정에서 많은 논의를 함께했다. 몸을 드러내는 것부터 여러 내밀한 장면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대화를 나눴고, 촬영 방식과 구체적인 장면들을 함께 결정했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환경이다. 촬영 현장에서 주인공을 비롯한 스태프 모두 이 촬영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 안전한 환경에서 촬영을 진행하는 것이 제일 중요했다.

세 명의 FTM 트랜스젠더를 다뤘던 전작 〈3×FTM〉 이후 15년이 흘렀다. 트랜스젠더 당사자를 만나고 그들의 삶과 사회를 바라본 사람으로서 어떤 변화를 체감하나. 과거와 현재의 토양은 어떤 면에서 다르다고 느껴지는가? 15년 전에 〈3×FTM〉을 제작할 때는 FTM이라는 말을 이해하는 사람조차 얼마 되지 않았다. 지금은 트랜스젠더의 이야기가 미디어를 통해 예전보다는 많이 노출되고 있다. 하지만 트랜스젠더를 향한 혐오는 더 거세진 것이 사실이다. 물론 혐오에 대응하는 트랜스젠더의 삶에 대한 의지 역시 더욱 단단해졌다. 트랜스젠더의 삶을 마음대로 재단하려는 시선에 대항하는, 새롭고 다양한 트랜스 서사가 필요한 시대라고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