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령의 기억 I’m Still Here 감독 바우테르 살리스 Walter SALLES | Brazil | 2024 | 138min | Fiction | 월드시네마 World Cinema


〈중앙역 Central Station〉(1998)과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The Motorcycle Diaries〉(2004)로 잘 알려진 바우테르 살리스 감독의 신작 〈계엄령의 기억〉은 1970년대 초 브라질, 군사정권의 억압하에서 하루아침에 삶이 완전히 뒤바뀐 한 가족의 실화를 스크린으로 가져온다. 영화는 가족의 일원인 마르셀루 후벵스 파이바의 회고록에 기반하고 있다. 전 국회의원이자 건축가인 루벤스는 6년간의 자발적 망명 생활을 마치고 얼마 전 집에 돌아왔다. 대학교수였지만 현재는 전업주부인 아내 에우니시 파이바는 리우데자네이루 해변가 주택에서 가족을 정성스레 돌본다. 다섯 자녀들은 해변에서 비치발리볼과 수영을 즐기고, 부부는 지적이고 진보적인 친구들과 책과 음악, 시가와 위스키, 그리고 새로 건축할 집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그러나 이 완벽해 보이는 세계에는 이미 균열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살리스 감독은 1964년 쿠데타로 시작된 당시 브라질의 정치적 상황을 명확한 설명이나 선동적 메시지가 아니라 영화적 체험과 감각적 환기로 전달하는 방식을 택한다. 영화 초반 스크린 위는 자유와 활기, 빛과 따스함, 자유분방한 에너지로 가득 차 있지만, 화면 바깥에서는 헬기 비행과 장갑차 호송대 소리가 끊임없이 들린다. 비록 멀게 들리지만 일상화된 이 소음은 관객으로 하여금 그들의 정치적 환경을 몸소 체감하게 하며, 국가 폭력이 파이바 가족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님을 드러낸다(이 소리는 2024년 12월 3일 예기치 못한 계엄을 경험한 한국인들에게도 트라우마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루벤스는 군인들에게 납치된 후 실종 처리되고, 에우니시 역시 12일간 구금되어 고문에 가까운 심문을 받는다. 남편의 행방이 여전히 공식적으로는 미스터리로 남은 가운데, 영화는 에우니시의 표정과 태도에 집중한다. 두려움, 분노, 모멸, 배신감, 인내, 책임감, 당당함, 사랑, 그리움 등이 스쳐가는 복잡한 얼굴의 그녀는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상파울루로 이주해 대학에서 일하면서도 루벤스를 위한 진실과 정의의 회복을 잊지 않는다.

잊지 않기 위해선 기억과 기록이 중요하다. 시간의 예술인 영화는 과거를 현재화하는 역량과 책임을 갖고 있다. 이 영화가 종종 삽입하는 흔들리는 슈퍼 8mm 카메라 푸티지, 가족 스냅 사진과 신문 보도 사진, 그들이 즐겨 듣던 브라질 전통 음악과 브릿팝은 단순히 과거를 추억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그 모든 시청각적 파편들은 군사정권이 무엇을 앗아 갔는지, 그리고 끝내 파괴하지 못한 것은 무엇인지를 환기시킨다. 동시에 독재 정권의 국가 폭력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음을 일깨운다. 빠진 이를 아빠와 함께 해변에 묻어 영원히 찾지 못할 줄 알았던 막내딸이 성냥갑에 소중히 보관된 이를 엄마를 통해서 전해 받은 것처럼 말이다. 이 장면은 기억과 물질, 상실과 회복의 상징으로 기능한다. 실제로 에우니시는 마흔여덟에 법대 학위를 받고 원주민 인권운동에 헌신하면서 개인의 고통을 사회적 차원으로 확장하고, 끈질기게 시간을 견디고, 침묵당한 진실을 좇으며 2014년에 루벤스의 사건 서류를 발견해 브라질 정부가 루벤스를 살해했다는 사실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시신은 찾을 수 없고 기소된 군인들도 처벌받지 않았다. 원제 ‘I’m Still Here’가 함의하듯, 에우니시를 비롯한 파이바 가족은 1971년의 시간을 오늘날에도 동시에 살아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