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헤븐 Videoheaven 감독 앨릭스 로스 페리 Alex Ross PERRY | United States | 2025 | 173min | Documentary | 시네필전주 Cinephile JEONJU


비디오 문화에 대한 문화인류학 기록인 〈비디오헤븐〉은 3시간에 달하는 러닝타임을 에필로그를 포함해 총 6개의 파트로 나누고, 160여 편의 영화와 드라마 장면들로 편찬한 대작이다. 1970년대에 등장해 1980~90년대에 전성기를 맞이했지만 21세기 멸종한 ‘비디오’는 한때 지구인들을 사로잡았던 엔터테인먼트였다. 챕터 제목으로 보면 ‘비디오 대여점은 무엇이었나’로 시작해 ‘비디오 대여점의 내세’로 끝나는 〈비디오헤븐〉은 산업적 격변, 사회적 의미, 문화적 가능성 등 다양한 측면으로 과거를 돌아본다. 등장 초기엔 도시의 서브컬처처럼 취급되며 약간은 위험하고 조금은 신비로웠던 비디오 대여점은 빠른 속도로 확산되며 일상에 스며들었고, 단지 비디오 타이틀을 빌려주고 돈을 받는 상점의 기능을 넘어 고유한 아우라를 지닌 공간이 되었다. 그곳에선 예상치 못했던 인간관계가 형성되었고, 그 공간 자체가 영화 속에 등장하기 시작했으며, 단순한 배경이 아닌 미장센의 중심으로 변해 갔다. 특히 대여점 점원은 공적 역할과 사적 관계가 결합된, 파트타임 노동자이자 영화평론가 혹은 마니아 기질이 결합된 독특한 타입의 캐릭터가 되었다. 대니얼 허버트의 책 『비디오랜드: 미국 비디오 대여점의 영화 문화』에서 영감을 받은 다큐 〈비디오헤븐〉은, 여기서 딱딱한 교과서가 아닌 풍성한 시청각 교재를 통해 접근하며, 숨 가쁘게 연결되는 수많은 클립들은 약 30년 동안 군림하며 번식했다가 순식간에 공룡처럼 사라진 ‘비디오 스토어’라는 역사적 유물을 추억한다.

이 다큐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대여점이라는 공간에 대한 영화적 재현들이다. 그곳은 〈비디오드롬 Videodrome〉(1983)이나 〈보디 더블 Body Double〉(1984)의 음습한 욕망의 온상이며, 〈워킹 앤드 토킹 Walking and Talking〉(1996)이나 〈로맨틱 홀리데이 The Holiday〉(2006)의 플러팅과 로맨스가 넘치는 장소이고, 〈피셔킹 The Fisher King〉(1991)이나 〈점원들 Clerks〉(1994)의 아지트이며, 〈나는 전설이다 I Am Legend〉(2007)처럼 절대 고독과 추억의 공간이고, 수많은 영화에서 무심코 지나가는 배경이다. 앨릭스 로스 페리 감독은 마치 모자이크를 하듯 수많은 작품들에 등장하는 ‘비디오 스토어’ 장면들을 짜맞추는데, 무심하게 분산되어 있던 이미지들이 분류되고 의미를 부여 받는 과정은 서 말의 구슬을 꿰는 연출자의 솜씨가 빛나는 대목들이다. 3시간이라는 만만치 않은 러닝타임이 지루하지 않은 건 그런 이유이며, 〈비디오헤븐〉은 20세기 말부터 21세기 초까지 존재했던 거대한 플랫폼에 대한 애정 서린 기록이다.

OTT의 시대에 〈비디오헤븐〉을 보는 건 꽤 흥미로운 경험이다. 소파에 누워 몇 번의 클릭으로 영화를 소비할 수 있는 지금, 대여점은 비효율적이다. 점원의 추천을 받고, 대여 중인 영화는 다음 차례를 기다려야 하고, 다른 고객과 소통하거나 논쟁하기도 하며, 연체료로 실랑이를 벌이는 그곳은 단지 영화를 빌리는 곳이 아니라, 영화를 빌미로 서로의 온기를 느끼는 장소이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비디오헤븐〉은 외로운 도시인들의 ‘시네마 천국’이었던 대여점을 통해 현재 우리의 영화 문화를 다시 바라보는 시도이며, 이젠 영화 속 장면으로만 존재하는 공간에 대한 그리움의 표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