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야구 경기 Eephus 감독 카슨 룬드 Carson LUND | United States, France | 2024 | 99min | Fiction | 시네마천국 Cinema Fest


카슨 룬드의 〈마지막 야구 경기〉의 원제는 ‘이퓨스(Eephus)’다. 야구에서 지극히 느린 속도로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는 구종, 이퓨스볼(일명 아리랑볼)을 뜻한다. 순식간에 포수 미트에 도착하는 빠른 속도의 패스트볼이나 놀라운 궤적의 변화로 헛스윙을 유발하는 변화구와는 차원이 다른 공이다. 이퓨스볼은 한없이 오래 공중에 떠오른 채로 큰 포물선을 그리며 느리게 도착한다. 그 공은 마치 시간을 잊어버린 것처럼 느껴진다. 〈마지막 야구 경기〉는 세계가 요구하는 속도에 대항하며 크고 긴 포물선을 그리는 사람들의 영화다.

1990년대 매사추세츠를 배경으로 하는 〈마지막 야구 경기〉는 동네의 유일한 야구경기장 철거를 앞두고 펼쳐지는 아마추어 야구단의 마지막 경기를 다룬다. 야구장은 오랜 시간 동안 그곳에 모이는 남성들의 사회적 장소였다. 야구 경기의 느린 리듬 속에서 스물네 명의 선수들은 야구장 한자리를 차지하고, 약간씩의 거리를 두고 떨어져 앉은 이들과 관계를 맺는다. 그들은 인사를 나누고 농담을 주고받은 뒤 맥주를 채우고 스트레칭을 하며 마지막 경기를 준비한다. 야구장의 철거는 단순히 쇠락하는 공간 하나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무의미한 유희를 공유할 수 있는 놀이의 무대가 사라지는 것이고, 특정한 규칙을 가르치고 전수받는 계승의 장소가 사라지는 것이며, 끝내 남성 공동체를 지탱하는 기억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들은 주말에 야구장이 아닌 다른 곳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그들은 외로움에 사로잡힐 것이다. 카슨 룬드는 1990년대 작은 마을의 마지막 야구 경기를 묘사하며 멜랑콜리에 휩싸인 미국적 남성성과 공동체주의의 한 단면을 탐색한다.

영화가 묘사하는 마지막 야구 경기는 빨리 끝나지 않는다. 해가 저물고 밤이 되면서 연장전에 돌입한다. 경기장을 비추는 빛이 사라지자 남성들은 자동차를 세우고 헤드라이트 불빛을 켠다. 누군가는 번거롭게 경기를 진행하려는 의지를 의아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마지막 경기를 허무하게 끝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경기장에 모인 모든 남자들은 공유한다. 그들은 야구 경기의 규칙을 공유하는 동시에 남성적 사회성의 규칙을 공유하는 자들이다. 그들이 잃는 것은 야구 경기가 아니라 그 규칙 아래에서 존재하던 자아의 한 측면이다. 남자들은 야구장의 규칙을 수행하는 자기 모습과 작별해야 한다.

카슨 룬드는 야구 경기의 세밀하고 작은 부분에 초점을 맞춘다. 그의 카메라는 무의미하고 쓸모없는 일이라고 치부할지 모르는 야구 경기의 세부를 현미경처럼 들여다본다. 야구 경기의 몸짓은 물론 큰 의미와 효율이 없다. 하지만 바로 같은 이유로 야구 경기의 몸짓만큼 의미 있고 매혹적인 세부는 없다고 영화는 말한다. 그것을 가로막고 중단하는 것은 현실의 시간일 뿐이다. 영화는 비현실적인 어둠 속에서 현실의 시간에 대항하는 야구의 몸짓을 포착한다. 어느덧 영화가 묘사하는 철거 직전의 야구장은 현실에서 주어진 중력에 저항하는 허구의 장소처럼 변모한다. 아름다운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