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가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아녜스 바르다 회고전이 열렸을 때 나는 아직 활동가가 아니었다. 활동가가 무엇인지도 잘 몰랐다. 아니 그 무엇도 무엇인지 잘 몰랐다. 그럴 수 있지. 대학을 빈 공간 삼아 떠도는 아직 어린 사람. 문제는 국가 폭력으로 인한 사회적 비극이 너무 빈번했고, 그와 어떻게 관계 맺어야 할지 모른다는 사실이 나를 정말 실질적으로 위협했다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어떻게 하면 제발 멈출 수 있는 건지? 질문들이 내 뒷덜미를 자꾸만 붙들었다. 무지함이 무결함을 담보하는 것도 아니고, 죄책감이 무능함을 상쇄시킬 수도 없는 거야. 나는 스스로에게 어지간히도 가혹하게 굴었다. 못 살겠다 싶을 만큼.
그해 내가 가장 몰두한 일은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책을 읽는 일도(읽었지만 실천적 해답을 찾지 못했다), 집회에 가는 일도 아니고(갔지만 늘 울적해져서 돌아왔다) 시네마테크에 드나드는 일이었다. 극장에 앉아 있으면 좀 살 것 같았다. 시네마테크에서 틀어 주는 영화들은 대체로 자신이 속한 국가와 사회의 기만을 폭로하거나, 최소한 들키기라도 하고 있었다. 극장은 내가 세상의 폭력으로부터 숨을 수 있는 장소인 동시에 세상의 폭력과 우리의 죄 같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곳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아녜스 바르다에게 완전히 푹 빠졌다. 누벨바그의 여성 구성원이자 페미니스트 영화감독. 누구의 뮤즈도 아닌 여자. 아녜스 바르다의 필모그래피에는 명백하게 체제 비판적인 작품들이 잔뜩 있다. 〈방랑자〉라거나, 〈행복〉이라거나. 그것들도 등골이 서늘하게 끝내줬지만 나를 더 잡아끈 것은 논픽션 작품, 그러니까 대상을 바라보는 카메라가 영화 전체를 장악하고 있는 작품들이었다.(〈벽, 벽들〉, 〈아녜스 V에 의한 제인 B〉)
그런 작품들에서 바르다의 카메라는 유독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한 시선을 하고 있다. 무지가 아니라 무구. 그 시선에는 그냥 대상을 있는 그대로 존재하게 하는 힘이, 관객이 그런 환상을 믿게 하고야 마는 힘이 있었다. 〈다게레오타입〉은 바르다가 살던 파리 다게르 거리의 상점가 사람들의 일상과 초상을 담은 영화다. 친절한 약사의 미소, 정육점 주인의 피부, 잡화점 노부인의 다물어진 입 같은 것을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모든 삶을 보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사실보다 진실에 가까운 것을 마주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바르다는 이 영화를 육아로 인해 집 근처 반경을 벗어날 수 없을 때 찍었다고 한다. 이 감독은 그냥 삶을, 집을, 거리를, 절대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도록 두는 법을 모른다.
아녜스 바르다는 2019년 만 90세로 세상을 떠났다. 생애 거의 끝까지 내가 〈다게레오타입〉에서 봤던 그런 시선으로 영화를 계속 찍었다. 한편 못 살겠다던 나는 아직 살아 있는데, 세상이 왜 이 모양인지에 대한 답은 여전히 모르는 채로 태연하고 무구하게 14년째 같은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바로 이런 것을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 기본소득은 사회 공동체가 모든 구성원에게 생존에 충분한 금액을 지급해야 한다는 아이디어로, 왜 이 아이디어가 실현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지지자들도 각자 생각이 다르다. 나의 경우 언제부터인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이 세계는 누구 한 사람이 아닌 우리 모두의 것이고, 그러니 우리 모두는 우리 각자에게 있는 그대로 존재할 기반을 마련해 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이해가 되는지? 이 세상에 카메라가 존재해야 하며, 어디의 누군가가 우연히 〈다게레오타입〉을 보는 사건이 일어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과 내게는 별다를 것도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