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가자의 영화감독들 Various Directors | Palestine, France, Qatar, Jordan, United Arab Emirates | 2024 | 114min | Multigenre Short‐film Collection | 프론트라인 Frontline


시각매체 이론가 폴 비릴리오는 다수의 저서에서 시각기계와 전쟁은 긴밀하게 연루되어 왔다고 주장한 바 있다. 현대 전쟁은 가능한 많은 정보를 신속하게 확보해 전황을 파악하고 즉각적으로 타격하기 위해 비행기와 카메라를 결합하는 식으로 원격 위상학적 시각기계를 발전시켜 왔다. 그는 더 잘, 더 빨리 보고자 하는 가속화 욕망, 즉 결국은 소멸과 파괴의 미학으로 귀결되는 “지각의 병참학”으로서의 영화를 비판한다.

오늘날의 전쟁은 어떤가? 군사용으로 개발된 무인항공기 드론은 이제 아마추어도 쉽게 사용하는 시각기계가 되었고, 전쟁의 공격 시점을 친근하게 만든다. 드론은 다양한 각도와 거리로 정밀하게 움직이며, 첨단 AI를 통해 무인 원격 작동이 가능해졌다. 이러한 기술은 살인의 죄책감을 체계적으로 무디게 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러나 ‘정밀 타격’을 통해 ‘부수적 피해’를 줄인다는 주장과 달리, 드론에 의한 민간인 학살 피해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물론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에서도 계속 보고되고 있다.

한편 이 같은 논의는 통찰력을 지니고 있음에도, 영화를 항상 외부의 원거리 시점에서 작동하는 공격적 시각기계로만 한정짓는 문제를 안고 있다. 디지털 네트워크 시대에는 민간인 피해자들 또한 자신이 겪는 전쟁을 내부로부터, 일상의 한복판에서 기록하고 실시간으로 스트리밍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긴박하고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카메라는, 전쟁 속에 내던져진 신체 그 자체가 된다. 폐허의 지층에서 촬영하는 카메라는 일관되지 않고 파편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전쟁 다큐멘터리에서 숏폼과 그것의 지속적 재구성은 이제 흔한 형식이 되었다. 일상과 죽음이 공존하는 풍경 속에서 촬영된 영상은 드론과 전투기의 소음, 무너진 잔해 더미, 눈앞을 가리는 폭발 먼지, 그리고 생사의 갈림길에 선 이동 상황 때문에 종종 그 정보를 파악하기조차 쉽지 않다. 여성과 아이의 시점으로 시리아 내전을 기록하고 서간체 형식으로 구성한 다큐멘터리 〈사마에게 For Sama〉(2019)나 팔레스타인 서안 지구에서 익명의 미디어 활동가들이 이스라엘 군인들의 일상적 침략을 수년간 기록해 온 짧은 영상을 편집해 제작한 다큐멘터리 〈빵과 대지를 위해 Of Land and Bread〉(2019)는 이러한 숏폼과 장편영화를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활용한 결과물들이다.

팔레스타인 감독 라시드 마샤라위가 제작한 〈그라운드 제로로부터〉는 이러한 맥락 속에서 또 다른 기획 방식을 보여 준다. 〈그라운드 제로로부터〉는 가자지구 임시 거처에 살고 있는 예술가들이 직접 연출한 3~6분 분량의 스물두 개 숏폼으로 구성되어 있다. 1인칭 다큐, 에세이, 편지, 드라마, 뮤직비디오, 페이퍼 스톱모션, 퍼펫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형식을 가진 영화들은 촬영 단계부터 각기 다른 창작자들의 기획과 개성이 크게 두드러진다. 그렇기에 전체적으로 긴박함보다는 사후적이고 명상적인 방식으로 사용된다.

폭격과 죽음의 현장에서 촬영된 푸티지들의 사용조차 그렇다. 〈플래시백 Flashback〉(이슬람 알 제리)과 〈메아리 Echo〉(무스타파 콜랍)가 대표적 예다. 전자는 폭격으로 무너진 집에서 죽음을 경험한 소녀의 트라우마를 표현하기 위해, 당시 촬영된 푸티지를 악몽처럼 삽입한다. 피난민촌 하늘에서 쉼 없이 윙윙거리는 드론 소리는 그녀를 공포의 현장으로 되돌려 놓기에 피할 곳은 외부의 소음을 차단하는 헤드폰 속밖에 없다. 후자는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며 녹음된 전화 대화 소리를 반복해 듣는 한 남자를 보여 준다. 황급히 대피할 곳을 찾는 여자는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그리움과 상실감은 녹음된 대화의 재생 행위로 표현된다.

교육 또한 여러 숏폼의 주요한 테마다. 〈선생님 The Teacher〉(타메르 니짐)은 학교도 학생도 사라진 텐트촌을 배회하는 전직 교사의 일상을 따라간다. 〈학교 가는 길 A School Day〉(아메드 알 다나프)에서는 한 소년이 매일 폐허가 된 학교 터를 찾고, 이스라엘 군인에게 살해된 선생님의 묘비 앞에서 그를 기린다. 이 담담하고 단순한 의식은 이스라엘이 앗아간 소년의 일상과 사랑하는 이들의 빈자리를 애통하게 표현한다. 〈아이들의 애니메이션 Soft Skin〉(카미스 마샤라비)은 피난민촌 아이들이 종이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을 통해 자신의 트라우마를 서사화하도록 이끈다. 영화의 마지막에, 카메라는 한 남매의 팔에 새겨진 커다란 문신을 보여 준다. 이는 엄마가 새긴 아이들의 이름으로, 혹여 이들이 죽었을 때 그들을 식별하기 위한 대처다. 하지만 그 글자들은 지금은 엄마를 기억하는 매개가 되었다. 죽음이 아이들의 피부에 새겨진 상황에서도 이곳의 사람들은 삶의 파편을 이어 붙이며 교육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곳 사람들은 웃음도 놓지 않는다. 〈지옥 속의 천국 Hell’s Heaven〉(카림 사툼)은 시신용 비닐백을 훔쳐 잠자리를 마련하는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그는 죽은 후보다 살아 있는 지금 시신용 비닐백이 더 절실하다고 말한다. 삶과 죽음이 얽혀 있는 공간에서 유머와 슬픔 역시 동시에 호출될 수밖에 없다. 〈다 괜찮아 Everything Is Fine〉(니달 다모)는 전쟁 속에서도 스탠드업 코미디가 가능한지를 질문한다. 코미디언의 무대는 흙먼지 날리는 거리이고 잔해는 배경이 된다. 아이러니는 이들의 힘이다.

몇몇 영화는 아예 창작의 조건 자체를 메타적으로 성찰한다. 〈영화, 미안 Sorry Cinema〉의 감독 아메드 하수나는 제작 현장에서 쓰던 클래퍼보드를 불쏘시개로 태우면서도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욕망을 꺾지 않는다. 하지만 떨어지는 낙하산 식량 꾸러미를 향해 달려가는 장면에서 결국 그는 영화보다 생존이 먼저임을 인정하게 된다. “영화여 용서해줘. 카메라를 치우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달려가야겠어.” 〈와니싸 택시 Taxi Wanissa〉의 감독 에티마드 와샤는 가자지구의 마부와 당나귀의 삶을 영화로 만들 생각이었지만, 마부의 형제와 그의 아이들이 죽으면서 촬영을 중단할 수밖에 없게 된다. 생존과 죽음은 문자 그대로 영화 창작의 조건이다. 이 영화들은 전쟁 속 예술의 불가능성과 동시에 예술의 불가피함을 사유한다. 그들은 파괴 대신 창조, 미래 없음 대신 상상력과 교육의 공간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