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의 나라에서 In the Land of Machines 감독 김옥영 KIM Okyoung | Korea | 2025 | 92min | Documentary | 폐막작 Closing Film


“모두가 행복해 보이는 나라.” 수많은 이주 노동자들이 코리안 드림을 품고 한국을 찾아온다. 소위 ‘K‐컬처’라는 화사한 가면이 만들어 낸 판타지다. 그들이 한국에 도착해서 처음 마주하는 인천공항의 번듯함 역시 그 꿈에 부응한다. 하지만 일단 발을 들이게 되면, 그때부터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이곳은 인간조차 ‘스펙(specification, 사양)’으로 분류되는 기계의 나라다.

한국 사회는 ‘성과 산출’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를 향해 최적화된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기름칠 잘된 기계처럼 착착착착 굴러간다. 그러나 그 효율적인 시스템은 곳곳에서 예측 불가능한 (아니, 사실은 예측 가능한) 오작동을 일으킨다. 폭력과 착취, 그리고 부당한 죽음이라는 오작동들이다. 때로는 그런 시스템 결함이야말로 이 거대한 기계를 가동시키는 필수적인 조건처럼 보이기조차 한다. 이런 가혹한 현실, 즉 착취를 기본값으로 삼는 자본주의의 본질을, 이제는 내부자가 된 외부자들의 시선으로 그려 내는 작품이 김옥영의 〈기계의 나라에서〉다.

〈기계의 나라에서〉는 네팔 노동자들의 시선(詩選) 『여기는 기계의 도시란다』(뻐라짓 뽀무 외 지음, 모헌 까르끼·이기주 옮김, 삶창, 2020)에서 출발한다. 그들을 부품처럼 다루는 사회에서, 심지어 한국인들 스스로조차 서로를 부품으로 취급하는 도시에서, 그들은 노동자이자 인간으로서의 “자존”(수닐 딥떠 라이)을 지키기 위해 시의 마음을 품는다. 그리고 한국‐기계가 작동하는 기이한 시스템에 대한 날카로운 주석자들이 되어 시스템 설명서에 시의 언어로 꼼꼼하게 주석을 달았다. 주석자란 주어진 텍스트를 가장 깊이 이해하며, 가장 멀리까지 통찰할 수 있는 자들이다. 그 텍스트를 직접 사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김옥영 감독의 말처럼 시는 그저 아름다운 풍광 앞에서 샘솟는 감상이 아니다. 시는 사회가 강요하는 순종으로부터 벗어나 기꺼이 다른 삶을 꿈꾸고자 할 때 진리를 진술하게 되는 일종의 사건이다. 네팔 노동자들의 뜨거운 마음의 풍경이 물질성을 획득한 시집의 한 페이지 한 페이지, 그 시집의 안과 밖을 영상으로 옮긴 〈기계의 나라에서〉가 흘러가는 스크린은, 이 사건이 세계와 만나는 접면이다. 끊임없이 지속되는 착취의 기록과 멈추지 않는 죽음에 대한 보고에도 불구하고, 네팔 노동자들이 고장 난 부품처럼 버려진 피해자나 침묵하는 희생자에 머물지 않고 시스템의 작동 원리를 고발할 수 있는 것은, 그들 자신의 언어가 가진 힘 덕분이다.

네팔 노동자들을 비롯한 이주 노동자들은 한국‐기계를 움직이는 중심 동력이며, 한국 경제를 떠받치는 무시할 수 없는 조건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들의 문화, 목소리, 정신은 이미 한국 문화 속에 스며들었고, 동시에 이 비정한 기계를 성찰하고 변화시키는 또 하나의 가능성이기도 하다. K‐컬처라는, 마찬가지로 착취의 시스템 위에서 등장한 기만의 얼굴에 기대어 스스로의 ‘브랜드’ 가치를 높여 왔다고 자랑하는 한국 사회는, 이제 다른 ‘컬처’가 만들어지고 있음을 똑바로 보아야 할 것 같다. ‘우리’가 잃어버린 시의 마음에 대해, 곱씹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