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창호의 클로즈 업 The Close Up of Bae Chang-ho 감독 박장춘 PARK Jang-choon, 배창호 BAE Chang-ho | Korea | 2025 | 90min | Documentary | 배창호 특별전: 대중성과 실험성 사이에서 Bae Chang-ho: Between the Popular and the Experimental
〈배창호의 클로즈 업〉은 배창호의 로드무비다. 이 단순한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하나는 표면적인 진실로 이 영화가 배창호 감독의 발걸음을 따라 국내외에 펼쳐진 그의 영화 촬영지를 로드무비 형식으로 보여 준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여정에서 배창호 감독의 삶과 영화의 궤적을 되돌아보는 일종의 시간 여행이 펼쳐진다는 것이다. 그의 로드무비는 앞으로 나아가는 여행이면서 뒤를 돌아보는 여행이다. 생각해 보면 배창호의 영화는 언제나 집을 나서는 자들의 여행으로 채워져 있지만 원래의 곳으로 되돌아가려는 귀향의 의지도 존재한다. 배창호에게 있어 긴 시간에 걸쳐 방랑하는 자들의 로드무비는 영화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첫 장면에서 배창호 감독은 기차에 탑승해 있다. 〈황진이〉(1986)의 초반부에서 우연히 마주친 스님은 황진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있을 자리에 있지 못하고 누울 자리에 눕지 못했구나. 육신의 자리란 없는 것이니 마음의 자리를 잡으시기를.” 스님의 이 말은 배창호와 그의 영화 전체를 향해 있는 공유된 관점으로 번진다. 배창호의 인물들은 주어진 공간에 머무는 대신 문밖을 나서고 낯선 환경에 침입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황진이〉의 황진이, 〈꿈〉(1990)의 태수, 〈정〉(2000)의 순이는 정해진 삶의 조건을 버리고 문밖으로 향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바다로 산속으로 갈대밭으로 움직여 나간다. “여행은 혼자 떠났다가 다시 찾은 자신과 함께 돌아오는 것”이라고 말하는 배창호 감독의 말처럼 그것은 세속적 세계에서 물러나는 고독한 여정이 아니라 마음의 내밀한 거처를 찾으려는 실존적인 몸짓이다. 앙드레 바쟁의 말을 빌려 배창호 감독이 직접 말하듯이 그의 영화는 낯선 공간으로 향하는 자들의 어두운 앞길을 비추는 작은 손전등 같은 것이다.
배창호의 영화는 낯선 곳으로 떠나는 사람들의 정서를 자연적 풍경과 결합한다. 〈배창호의 클로즈 업〉이 영화에 담긴 공간을 되짚는 여정으로 전개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그의 영화 속 인물들의 여정은 거세게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고 눈이 오고 안개가 끼는 자연의 표정들과 연결되어 있다. 여행은 단지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장소의 행위이고 자연의 행위다. 인물의 정념과 풍경의 반응은 하나의 변주곡을 빚어내며 스크린에 떠오른다. 〈배창호의 클로즈 업〉은 배창호가 필름에 옮겼던 풍경의 감각을 되돌아보면서 그것들이 지워지거나 사라지고 있는 장소의 시간을 통과한다. 배창호 감독은 그곳을 지나치면서 자연의 장소가 배경으로 밀려나는 것을 비판한다. 어쩌면 이 영화는 시급함으로 만들어졌다고도 할 수 있다. 배창호 감독의 영화는 장소에 새겨지는 기억이고, 그 장소의 흔적은 하나둘씩 사라져 가기 때문이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배창호 감독은 다섯 살에 보았던 페데리코 펠리니의 〈길 The Road〉(1954)의 장면들이 오래전에 꾸었던 꿈처럼 희미하다고 말한다. 그의 말에 덧입혀지는 것은 1990년에 만들어진 배창호의 〈꿈〉을 감상한 80대 여성 감독이 극장 문을 나서면서 했다는 말이다. “저건 꿈이 아니야.” 영화는 희미한 꿈 같은 것이지만 또한 꿈이 아니다. 배창호의 영화와 〈배창호의 클로즈 업〉이 담아낸 삶의 한 가지 진실이 여기에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