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가 했던 말 TWST - Things We Said Today 감독 안드레이 우지커 Andrei UJICĂ | France, Romania | 2024 | 86min | Documentary | 마스터즈 Masters
1965년 8월 13일, 뉴욕은 비틀즈 열기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주말에 있을 셰이 스타디움 공연은 일찌감치 매진됐고 열성적인 팬들은 비틀즈를 보기 위해 그들이 머무는 맨해튼의 워릭 호텔 앞을 꽉꽉 메우고 섰다. ‘비틀마니아’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전 세계를 열광시킨 비틀즈. 그들을 향한 맹렬한 사랑이 푸티지 영상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오늘 우리가 했던 말〉은 그 뜨거운 여름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하룬 파로키와 함께 1989년 차우셰스쿠 정권에 저항한 시민 혁명의 르포르타주 〈혁명의 비디오그램 Videograms of a Revolution〉(1992)을 만들었고,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의 자서전 The Autobiography of Nicolae Ceausescu〉(2010)을 연출한 안드레이 우지커의 신작이다. 역사의 특정 시기, 정치적 격변과 인물에 관심을 벼려 온 그가 비틀즈를 소환한 것이 다소 의외로 보일지 몰라도, 아카이브 푸티지의 막대한 역량에 기대면서도 이미지 스스로 말하게 하려는 그의 지속적인 관심과 방식은 여전하다. 역사의 한가운데 있었을 구체적인 사람들의 흔적을 기록 이미지 속에서 발굴하고 그것에서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으로서의 몽타주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비틀즈의 뉴욕 공연까지의 며칠, 공연을 기다리던 이들은 무엇을 하며 어떠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까. 그 시각 뉴욕은, 세계는 어떤 상태였을까. 역동적인 역사의 일부, 역사의 역동적인 세부가 되기 위한 영화는 일종의 다큐‐픽션의 위치에 자신을 둔다. 수많은 아카이브 자료 속에서 비틀즈의 도착과 기자회견 영상, 뉴욕의 거리, 존스 비치 등을 찾아내고 그 위에 상상의 세계를 픽션으로 덧입힌다. 이 세계로의 안내자는 실존 인물에서 영감을 얻어 극적 터치로 태어난 제프리(시인 제프리 오브라이언)와 주디(소설가 주디스 크리스틴). 그들은 프랑스 작가 얀 케비의 섬세한 그림과 배우들의 목소리로 물리적 실체와 생명을 얻었다.
공연장으로 가기 전,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뉴욕을 배회한다. 제프리는 낙후한 할렘의 빈곤한 일상, 인종 차별에 따른 폭력과 경찰의 폭압적 진압, 베트남에서 들려오는 전쟁 소식을 보고 듣는다. 군중 속에서 유독 피곤하고 고독해 보이는 제프리를 따르다 보면, 우울과 긴장이 배음처럼 깔린 뉴욕과 마주한다. 한편, 비틀즈의 열혈팬인 주디는 콘서트에 가기 위해 들뜬 마음으로 필라델피아에서 뉴욕으로 온다. 근처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 박람회에 들른 그녀는 새롭고 획기적이며 흥미진진한 신문물을 보며 또 한 번 흥분한다. 주디의 시선 속 뉴욕은 온갖 가능성으로 가득 찬 매혹의 세계다. 제프리와 주디의 뉴욕, 우지커가 이해한 뉴욕은 그 모든 것이며 바로 이것이 기대와 전망, 낙담과 체념이 뒤섞인 뉴욕의 도시 몽타주이다. 그리고 마침내 다다른 콘서트장에서 우지커는 서정적이고 시적이며 몽환적이고 마법적인 영화적 순간으로 도시 교향곡을 완성한다.
〈오늘 우리가 했던 말〉은 영화가 꾸는 꿈, 영화라는 꿈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지나간 시간, 사라진 과거, 잊힌 세계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어 소생시키려는 무모하고 애틋한 부활을 향한 꿈, 이미 찍혀 있다는 의미로서의 불변하는 이미지를 다시금, 다르게 보이게 하려는 재생의 꿈. 실화와 극적 상상의 공존, 실존과 가공인물 간의 중첩, 미시사와 거시사의 접속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지난 시간, 이곳으로 메아리쳐 오는 또 한 번의 시간 여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