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피터슨: 블랙+화이트 Oscar Peterson: Black+White
감독 배리 에이브리치┃Canada┃2021┃83min┃월드시네마
재즈 작곡가 듀크 엘링턴은 오스카 피터슨을 가리켜 ‘건반의 마하라자’(고대 인도의 왕)라고 불렀다. 1925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태어난 피터슨은 생전에 그래미를 일곱 번 수상했으며 캐나다는 물론이고 프랑스 정부로부터 여러 개의 훈장을 수상했다. 전 생애를 통해 열세 곳의 대학으로부터 명예 박사학위를 받았고 그의 이름을 딴 음악당과 학교, 광장이 설립되었다. 2007년 타계 후 설립된 그의 동상 제막식에는 영국 여왕이 참석했다. 배리 에이브리치 감독의 이 영화는 재즈 피아노의 거장 중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오스카 피터슨의 일대기를 담았다.
자유를 향한 찬가
어린 시절부터 리스트를 비롯해 난기교를 요구하는 클래식 곡들을 막힘없이 익혔고 테디 윌슨, 냇 킹 콜의 피아노는 물론이고 누구도 흉내 낼 수 없을 것 같았던 아트 테이텀의 스타일을 10대 말에 이르러 섭렵한 오스카 피터슨은 타고난 천재였다.
우연히 라디오를 통해 그의 연주를 들은 제작자 노먼 그랜즈에게 발탁이 되어 ‘재즈 앳 더 필하모닉’ 콘서트에 출연한 그는 버브 레코드의 전속 피아니스트로 소속 아티스트들의 반주를 도맡았고, 동시에 자신의 트리오를 통해 1950년대부터 정상급 재즈 피아니스트로 자리 잡았다. 선천적으로 커다란 그의 양손은 한 옥타브 이상의 건반을 손쉽게 커버했고, 강하고 빠른 핑거링, 예리한 청각 그리고 무엇보다도 연주자로서 끊임없이 노력했던 태도는 자신을 재즈 피아노의 커다란 봉우리로 만들었다.
하지만 화려한 이력 속에서도 흑인으로서 겪어야 했던 인종 차별은 인간이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해 그에게 깊은 성찰을 주었고 이는 넬슨 만델라에게 헌정했던 ‘자유를 향한 찬가’(Hymn to Freedom)를 비롯한 그의 명곡들의 밑거름이 되었다.
오로지 음악에 헌신했던
1993년에 닥친 중풍을 극복하고 생애 끝까지 자신의 예술혼을 불태웠던 음악인으로서의 그의 면모를 담은 이 영화는 1940년대부터 만년까지의 사진 자료들과 인터뷰들 그리고 수많은 연주 장면을 통해 허브 엘리스, 레이 브라운, 에드 딕펜, 조 패스, 닐스헤닝 오르스테드 페데르센, 울프 바케니우스, 제프 해밀턴, 엘라 피츠제럴드, 앙드레 프레빈 등 그와 함께했던 명연주자들의 모습을 생생히 보여준다.
아울러 생전에 그와 인연을 맺었던 퀸시 존스, 램지 루이스, 허비 행콕, 빌리 조엘, 브랜퍼드 마설리스, 데이브 영, 존 배티스트 등의 음악인들과 그의 아내 켈리 피터슨은 고인의 음악, 그에 대한 추억을 세세히 영화에 담았다. 그 가운데서 명피아니스트 램지 루이스의 한마디는 피터슨의 존재를 일목요연하게 알린다. “복싱에는 무하마드 알리가 있고, 농구에는 마이클 조던이 있지요. 그와 마찬가지로 재즈 피아노에는 오스카 피터슨이 있습니다.”
오스카 피터슨을 약물과 함께 비운의 삶을 살았던 재즈 음악인으로 묘사한 많은 다큐멘터리와 달리, 오로지 음악에 헌신했던 한 재즈 거장으로 그려낸 웅장한 일대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