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벤 러셀 Ben RUSSELL, 기욤 켈로 Guillaume CAILLEAU | Germany, France | 2024 | 216min | Documentary | 전주시네마프로젝트
‘퀵샌드(quicksand)’와 ‘무의식적 수용(subconscious acceptance)’. 한 여성이 심문의 전략을 의미하는 단어에 대해 기술한 책을 암송하고 있다. 카메라는 그의 얼굴 가까이에 고정된다. 그의 전언에 따르면 ‘퀵샌드’는 휘저어진 모래가 점진적으로 늪을 형성하여 빠져나올 수 없도록 다리를 옭아매는 것처럼 심문 대상자를 거짓말쟁이로 전락시키는 교묘한 함정 대화 기법을 의미하고, ‘무의식적 수용’이란 심문 초입에 나이나 고향 따위의 “예스(YES)”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는 질문을 쏟아냄으로써 심문 대상자가 긍정적, 협력적 태도를 수용하도록 만드는 대화법을 말한다. 따라서 심문을 받는 사람들에게는 ‘침묵’이 요구된다. 카메라가 뒤로 물러서고 여성이 몸을 숙이면 이 교훈적인 문구를 들려주고 있는 상대가 진흙 바닥에 누워 잠자고 있는 돼지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대략 5분여에 달하는 기나긴 숏 뒤에 이어지는 숏은 낙서가 가득한 벽을 쇠망치로 부수는 젊은이들을 보여준다. 놀이 또는 노동의 사이쯤에 놓일 이 망치질로 생긴 구멍은 하나에서 여러 개로 증식하고 청년들은 해방의 기운에 도취되어 간다.
〈다이렉트 액션〉의 초반부를 채우는 이 젊은이들은 프랑스 북서부 도시 낭트 인근에 위치한 마을 노트르담데랑드(Notre-Dame-des-Landes)에 거주하는 기후 위기 활동가 그룹 자드(ZAD, Zone to Defend)의 일원들이다. 자연주의적인 인상을 풍기는 자드는 이 아름다운 시골 마을에서 1960년대부터 시작된 프랑스 정부의 매립, 이주 정책에 대항하면서 자신들의 땅을 지키고자 하는 농부, 활동가 들의 커뮤니티이다. 벤 러셀과 기욤 켈로의 공동 연출로 완성된 〈다이렉트 액션〉은 압도적인 완력으로 원주민을 퇴거시키고 국제공항을 건설하려는 정부에 저항하여 승리를 쟁취해낸 자드에 관한 기록으로 시작한다. 쇠망치의 단단함을 닮은 투쟁력으로 철거의 압박, 최루탄 공세, 저열한 심문의 벽을 분쇄해 온 사람들을 관찰하는 이 영화는 반(反) 공간을 통해 21세기의 헤테로토피아를 건설하고 있는 이들의 활동을 묘사한다.
존중과 감탄의 태도가 묻어 있지만 〈다이렉트 액션〉은 대상과 더불어 살고 존재하는 관찰 다큐멘터리이다. 저항 그룹을 다룬 통상의 시도가 국가권력에 맞서 투쟁하는 이들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이 영화는 학대와 폭력 대신 고요하고 명상적인 일상의 순간들로 다수의 장면을 채운다.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이루어진 퇴거 조치에 맞선 투쟁 과정을 보여주는 푸티지로 시작하여 2023년 3월, 경찰과의 충돌로 마무리되는 도입부 일부 장면에 잔인함이 있지만 영화의 관심은 물리력의 충돌을 통한 혁명이 아닌 ‘다른’ 삶을 추구하는 투쟁이다. 이곳에서 발생하는 모든 활동에는 자동화의 흔적이 없으며 자연과 합일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진 창조적인 에너지가 흘러넘친다. 몰입력의 원천은 ‘노동’하는 삶이다. 경외심을 가지고 기록한 많은 장면들에서 자드의 구성원들은 밭을 갈고, 빵을 굽고, 나무를 자르고, 씨앗을 심고, 말과 돼지를 돌본다. 2022년부터 2023년까지 3개월 동안 자드 내에서의 생활을 기록하는 것에 헌신함으로써 두 공동 감독은 노동과 일상의 반복에서 추출된 대안적 생활 세계의 다층적인 매력을 전시한다.
따라서 ‘다이렉트 액션’이란 추상적인 개념을 앞세운 정치적 행동이 아니라 3시간 30분 동안 흘러가는 무수한 일상 활동을 포괄하는 용어라고 봐야 한다. 원초적인 삶의 한계와 불완전성뿐만 아니라 대안적인 삶의 양식에서 비롯된 자유는 기록의 방식에서도 기인한다. 벤 러셀은 오랫동안 관찰자와 관찰의 대상, 렌즈 뒤에 있는 사람과 앞에 있는 사람 사이의 경계를 테마로 삼아 왔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러셀은 영화 전체를 슈퍼 16mm로 촬영하였고, 숏의 평균 지속 시간을 5분에 달하게 함으로써 영화적 시간을 구조의 원칙(행위의 지속)으로 바꾼다. 노동을 수행하고 기술을 연마하고 숙달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확보함으로써 노동, 일상적 행위의 질을 보존한 것이다. 대상의 속성과 기록의 수단, 형식이 조화를 이룬 최면적인 이미지들의 절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