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나를 데려가게 해주오(SEVEN WINTERS IN TEHRAN)
감독 스테피 니더촐 | Germany | 2023 | 99min | 프론트라인
영화는 감옥으로부터 걸려온, 그러나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한 소녀의 목소리에서 시작한다. 열아홉 대학생이던 레이하니 자바리는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곧 있을 아트페어 관련 전화를 하고 있을 때, 그녀의 통화를 듣던 한 중년 남자가 다가와 자기 사무실 인테리어를 맡기겠다고 제안한다. 자바리를 사무실에 데려간 그는 강간을 시도하고, 이에 저항한 자바리는 인근에 놓인 칼을 그의 등에 꽂고 정신없이 도망쳐 나온다.
정당 방위였고 그는 분명 살아 있었다. 다음 날 그녀는 갑자기 그의 정부이자 살인자가 되어 언론에 보도된다. 중년 남자 사르반디는 이란 정보국 직원이었고 그의 가족은 전통적인 이슬람으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복수를 이행하고자 했다. 제대로 된 수사 없이 강제 연행 후 반복되는 고문으로 거짓 증거와 강제 자백을 받아낸 경찰은 열아홉 자바리를 사형에 언도한다. 영화는 그 후 자바리가 겪은 일곱 번의 겨울을 담는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는 자바리와 그녀의 가족이 겪은, 더 나아가 이란 여성이 겪은 얼어붙은 시간을 담는다. 강간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어 사형을 받는, 상식적으로는 이해 불가지만 실제 삶에서는 비일비재한 여성 인권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는 여러 층위의 현실을 보여준다. 먼저 여성의 사회적 지위다. 가정에서 누구보다 밝고 자유롭고 열정적으로 키워진 열아홉 자바리는 어느 날 갑자기 낯선 남자로 인해 세상이 송두리째 뒤바뀌어 버린다. 그녀가 운이 나빴던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다수의 여성이 운이 좋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이 사건은 이 사회의 기울어진 운동장의 현존을 본다. 여성 인권은 개인의 차원이나 가족의 차원에서 풀어질 문제가 아닌 것이다. 사회 인식과 구조의 차원에서 여전히 옴짝달싹하지 못한 채 한발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법정에서 검사는 당당하게 말한다. “왜 소리를 지르지 않았냐?” “왜 뛰어내리지 않았냐?” 강간을 당하는 사람에게 피해자성을 강요하고 질타를 하고, 무엇보다 당한 사람이 자신의 무죄를 밝혀야 하는 기이한 현장이다.
다음은 여성들의 연대다. 자바리는 피해자이지만 가해자가 되어 감옥 생활을 시작하면서 강간으로 삶이 엉클어진 수많은 여성들을 만난다. 그들에게 법은 보호망이 아니라 고문과 거짓 자백으로 이차 가해를 가하는 곳이었다. 감옥에서 자바리는 자신을 돕는 여성을 만나고, 자신 또한 다른 어린 여성들이 자신처럼 당하지 않도록 마음을 다해 돕는다. 감옥 속 여성들의 연대는 감옥 밖으로도 확장되어 전 세계 여성들이 함께한다.
여성들의 풀뿌리 연대에 반해, 영화는 또한 보이지 않는 그러나 도처에 존재하는 권력과 법의 힘도 함께 담는다. 마치 그물망처럼 촘촘하게 엉켜있는 이란의 남성 중심 사회는 처음부터 사르반디 편이었다. 그의 죽음만이 문제고, 그를 죽인 범인을 찾아 응징하는 것에만 사건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 여성이 당한 강간은 사건의 논의 대상조차 되지 못한 것이다. 살인과 치정에 초점을 맞춰 확증 편향으로 몰아붙인 검찰과 언론은 자바리를 비롯해 힘없는 여성들에게는 또 다른 쇠사슬이었다. 영화는 자바리의 사건을 억울한 한 개인의 경험이 아니라, 여성 인권에 대한 집단의 경험이자 사회 구조의 문제로 다뤄낸다.
영화는 여기서 보다 섬세하게 들어가, 이슬람 문화의 이면을 드러낸다. 이슬람 문화에서 죽은 아버지를 대신해, 자바리의 사면 여부를 결정하는 최종 권리는 집안의 장자인 그의 아들에게 주어진다. 아들은 아버지의 명예를 위해 복수를 해야 한다는 의무와 누군가의 사형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무거운 짐을 지게 된다. 동시에 자바리의 어머니는 딸을 살리기 위해 사건의 당사자가 아닌 사르반디의 아들에게 읍소를 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진다. 결국 국가가 개인의 보호망이 되어주지 못하자, 자바리 어머니는 강간범의 아들에게 딸의 목숨을 부탁하고, 아들은 집안의 명예를 위해 자바리에게 강간당하지 않았다고 밝히라 하고, 감옥에서 자바리는 그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는 개인들의 갈등이 된다.
영화는 이들의 모습을 인물로 비춰내며 동시대 이란의 풍경 이미지로도 담아낸다. 풍경은 사건의 배경이자 말의 증거이지만, 흔들리고 비어 있는 풍경 이미지를 통해 한편으로는 자바리를 비롯한 인권의 빙하기를 보내고 있는 이들의 내면을, 다른 한편으로는 풍경 저편에 존재하는 거대한 힘을 무심하고도 서늘하게 가시화한다. 사건에 얽힌 사람들이 입과 꼬리를 물고 서로를 삼켜야 하는 것처럼, 풍경 역시 내면과 외면을 넘나들며 오르보스 형상을 한다. 그렇게 영화는 자바리 자신의 목소리로 사건을 알려낼 수 있도록 하는 자기 소명의 장이자 애도의 장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