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의 A.I. A.I. at War
감독 플로랑 마르시┃France┃2021┃107min┃프론트라인
〈전장의 A.I.〉라니, 미래 전쟁에서 사용될 살인 로봇들이 떠오르는 무시무시한 제목이다. 하지만 종군기자이자 저널리스트이고 영화감독인 플로랑 마르시가 이 영화에서 추구하는 방향은 관객의 예상과 정반대이다. 고맙게도 영화는 〈터미네이터〉류의 살인 기계들의 발전에는 티끌만큼의 관심도 없다.
전쟁과 폭력을 학습하는 작은 로봇
플로랑 마르시는 아이작 아시모프의 고전 SF 소설에 나올 법한 아이디어로 독특한 다큐멘터리의 문을 연다. 일단 말레이시아 회사에서 만든 소타라는 이름의 로봇 하나를 빌린다. 그리고 이라크와 시리아의 전쟁터, 노란 조끼 시위가 한창인 파리 시내를 함께 누비며 로봇에게 인간과 전쟁과 폭력에 대해 학습하게 한다.
구식 SF에 나올 법한 이야기이고 마르시 역시 이를 의도했겠지만 이 설정은 비교적 평범하게 설명된다. 소타는 장난감 크기의 작고 귀여운 로봇으로, 사물을 구별할 수 있는 카메라와 센서, 인터넷으로 연결된 대화 기능이 장착되어 있다. 상대와 눈을 맞추고 약간의 제스처를 취하면서 대화를 할 수 있지만, AI의 개념만 따진다면 알렉사나 시리 같은 보이스 에이전트와 크게 다를 게 없다. 노인 간병용으로 만들어졌지만 식당에서 메뉴를 소개하거나 PC를 연결해 프레젠테이션용으로 쓸 수도 있다. 2015년에 만들어졌으니 급변하는 세계의 기준으로 보면 꽤 옛날 기기이다.
그러니까 마르시는 아직 완전히 준비되어 있지 않은 기계를 갖고 미리 SF의 서사를 쓰는 것이다. 현실 세계의 전쟁이 배경이고 그 세계를 사는 진짜 사람들이 등장하는 다큐멘터리지만, 그 때문에 〈전장의 A.I.〉는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점점 더 사이언스 ‘픽션’의 정의에 가까운 작품이 되어간다. 전쟁터의 실제 사람들이 인간의 사고와 대화를 알고리듬을 통해 모방하는 초보적인 AI와 유사 대화를 나누면서 만들어가는 참여형 SF라고 할까.
부조리한 인간 세상을 바라보는 비인간의 이야기
마르시가 그리는 세계는 처참하다. 죽음과 고통은 일상화되었고, 전쟁으로 살해당한 시체들이 돌덩이처럼 사방에 뒹군다. 이라크와 시리아를 떠나 서구인들이 안전하다고 느낄 법한 프랑스 파리에 도착한 뒤에도 폭력은 멈추지 않는다. 아니, 카메라 앞에서 진짜로 위험한 폭력이 터지는 곳은 오히려 파리다. 이런 상황에서 작은 장난감 로봇을 갖고 SF 실험을 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놀랍게도, 소타는 이 위험한 세계에서 당당한 주인공 역할을 해낸다. 이 기계엔 자아도, 영혼도 없다.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알고리듬이 고른 것으로 종종 영매의 답변처럼 무의미하거나 애매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인간이 아닌 존재에게 마음을 열고 대화를 시도하고 의미를 읽으려는 인간의 본능은 자연스럽게 소타에게 캐릭터와 감정을 씌운다. 사람들은 소타와 대화를 나누고,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부조리한 인간 세상의 폭격을 맑은 눈으로 바라보는 비인간의 이야기가 거의 완성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