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피에르앙리 지베르 Pierre-Henri GIBERT | France | 2023 | 67min | Documentary | 시네필전주
© 1970 ciné-tamaris – Festival Assistant
〈비바 바르다!〉는 프랑스 누벨바그의 중요한 행위자이자 70년간 열정적인 창작 활동을 지속했던 시네아스트이며 종내에는 스스로 하나의 작품이 된 영화예술계의 ‘이단아’ 아녜스 바르다에 대한 최초의 다큐멘터리다. 피에르앙리 지베르 감독은 지금까지 공개된 적 없는 아카이브 영상과 자료를 연대기순으로 배치하고 바르다의 가족, 친구, 협업자 들의 인터뷰와 엮어 그의 일생에 대한 명랑한 스케치를 완성했다. 바르다의 아카이브에는 그가 간직해 온 글, 사진, 러시, 미완성 영화, 개인적 문서 등이 담겨 있고, 덕분에 바르다를 사랑하는 우리는 다큐를 보며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또 다른 바르다를 만나는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다큐는 ‘최초’라는 이름에 걸맞은 매혹적인 에피소드들을 선보인다. 특히 바르다의 바이섹슈얼리티와 그가 레즈비언 조각가 발랑틴 슐레겔과 맺었던 관계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이야기다. 슐레겔은 이제 막 예술적으로 깨어나기 시작한 청년 바르다에게 큰 영감을 준 파트너였다. 흑백의 인터뷰에서 바르다는 말한다. “예술적 감성을 지닌 사람들은 어느 정도 양성적이죠. 그 감성은 우리가 성적으로 확정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에 더해 다큐는 바르다의 여성이자 페미니스트로서의 자의식 역시 진지하게 탐색한다. 그는 늘 ‘여성 감독’이라는 정체성을 안고 작업했고, 1970년대 래디컬 페미니즘의 공기 안에서 페미니스트로서 목소리를 내고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비바 바르다!〉가 바르다의 여성 정체성, 여성 감독으로서의 궤적에 방점을 찍는 방식은 일견 당연하면서도 이 다큐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 할 만큼 인상적이다. 결국 아카이브로부터 탄생하는 한 줄기의 서사란 무엇을 어떻게 큐레이션 하느냐에 달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큐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이내 ‘아녜스 바르다라는 모순’과 조우하게 된다.
아녜스 바르다라는 모순
『아녜스 바르다의 말』를 엮은 제퍼슨 클라인은 책의 서문에서 모순은 “바르다 작품들의 주요 테마 가운데 하나”이며, “소급 적용한다면 그의 모든 작품에서 포착할 수 있는 테마”라고 썼다. 바르다 본인 역시 “내가 관심을 가진 부분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사이, 주관과 객관 사이 그리고 클리셰와 클리셰 안에 있는 것들 사이의 변증법”이라고 말했다. 이에 더해 “정신 영역의 클리셰들과 실제 생활의 이미지들 사이의 변증법, 모호성, 그리고 모순이 내 모든 영화의 주제”이며, “내 모든 영화는 그러한 모순-병렬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라고 덧붙인다.
여성 가수가 시선의 대상이 되기를 거부하고 시선의 주체가 되는 두 시간(〈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 Cléo from 5 to 7〉〔1962〕), 여성 방랑자가 사회적 낙인을 비웃으며 삶의 에너지를 발산하는 이동의 경로(〈방랑자 Vagabond〉〔1985〕), 쓰레기통을 뒤지는 이들이 자본주의의 가장 급진적인 저항자가 되는 세계(〈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 The Gleaners & I〉〔2000〕) 등 바르다의 작품에서 사회의 고리타분한 편견과 함께 구성된 클리셰는 끊임없이 스스로의 모순을 드러내며 거절당하고 도전받는다. 이것이 바르다의 작품이 기존의 관습과는 다른 가치를 추구하며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는 방식이다. 이에 더해, 클라인이 주목하고 있는 것처럼 “바르다 영화의 기저에 흐르는 중심 모순은 픽션과 다큐멘터리 사이의 모순”이었다. 바르다는 극영화 작업을 하면서도 다큐멘터리의 질감을 놓치지 않으려 했고, 다큐 작업을 하면서도 극영화적인 통제된 구성을 내려놓지 않았다.
나는 친절한 생애사인 〈비바 바르다!〉를 보면서 그의 삶 자체가 모순적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그 모순들의 충돌로부터 변증법적으로 그의 창작 활동을 추동했던 동기와 아이디어, 그리고 역동이 촉발되었던 건 아닌지 질문하게 되었다. 브뤼셀의 부유하고 보수적인 부르주아 가정에서 태어나 자랐으면서도 그 계급이 주도해 온 계급적 위계와 정상성의 규범을 비판하고 주변부의 창의적인 뒤틀림을 탐색했던 백인 엘리트. 상업영화 감독과 사랑에 빠진 전위예술가. 래디컬 페미니스트이자 동시에 진실한 사랑에 몰두하는 아내였고, 남편이었던 자크 드미라는 남성 감독에 대한 신화 쓰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여성 감독. 육아 때문에 “탯줄에 묶인 듯” 집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현실을 오히려 창작의 조건으로 활용해 기어코 작품 활동을 해내는 다큐멘터리스트. (그렇게 해서 탄생한 작품이 다큐멘터리 〈다게레오타입 Daguerreotypes〉〔1975〕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을 드러내면서도 교묘하게 숨기는, 그 모순적인 경계 위에서 평생을 작업해 온, 우리에게 가장 친숙하면서도 (어쩌면) 가장 신비로운 아티스트.
물론 〈비바 바르다!〉에서 다종다양한 충돌의 현장을 목격하는 중에서도 나에게 가장 흥미롭게 다가온 것은 그가 엄청난 통제광(control freak)이었다는 사실이다. 타고난 반항적인 기질을 바탕으로 정해진 규범과 형식을 타파하고자 시도했고, 관습을 거부하면서 도시와 광야를 흘러 다니는 창발적인 정신(emergent mind)을 포착하고자 꿈꿨던 그는 또한 모든 이미지와 이야기를 통제해야 하는 통제광이었다. 구속을 거부하는 영혼과 통제하고자 하는 욕망, 발산하는 에너지와 수렴하는 에너지, 언어화되지 않는 것을 기어코 언어화하려는 욕심. 이런 것들은 바르다 안에서 어떻게 만나고 있었던 걸까?
그런 그에게 디지털카메라의 등장은 일종의 해방구였을지도 모른다. ‘후기 바르다’를 열어준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는 소형 디지털카메라의 등장과 함께 자유를 얻은 여성 감독의 경쾌한 행동성을 담고 있다. 덕분에 그는 때로 카메라를 들고 거리를 산책하다 만난 이들을 즉흥적으로 촬영하는 우연성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디지털 미디어는 픽셀 하나까지도 통제할 수 있는 콤퍼지션(composition)의 미디어다. 바르다는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결국 제겐 이 작품이 하나의 극영화처럼 느껴졌어요. (…) 그저 제가 영화감독으로서 이 주제에 어떤 구체적인 형태를 부여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은 거예요.” (『아녜스 바르다의 말』 328쪽) 결국 내가 바르다의 대표작으로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를 꼽는다면, 그건 이 작품 안에 바르다 평생의 ‘모순’들이 응축되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 모든 이야기가 〈비바 바르다!〉의 67분에 담겨 있다. (혹은 그 67분으로부터 튕겨 나와 관객에게로 닥쳐온다.) 바르다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는 다큐멘터리지만, 다큐 자체로는 사실 아무런 도전도 하지 않는다. 형식적으로 특별한 개성이 없다는 의미다. 이런 ‘아무 도전과 실험 없음’이 바르다를 다룸에 있어 적절한 형식이었을까? 「더 바서티 The Varsity」에 실린 리뷰는 적절하게 질문한다. “아녜스 바르다는 자전적 영화 제작에 익숙했는데, 이는 피에르앙리 지베르에게 도전적인 과제를 남겼다. 자신의 삶에 대해 강력하고 결정적인 기록을 남긴 예술가에 대해 더 무엇을 말할 수 있겠는가?” 지베르는 도전에 따르는 실패를 감수하기보다는 교본적인 다큐멘터리를 통해 바르다를 ‘제대로’ 소개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고, 덕분에 우리는 이제부터 시작될 ‘바르다 역사화’ 작업에 있어 꽤 괜찮은 출발점을 얻었다. 그나저나, 바르다의 역사화라. 바르다가 그걸 원했을까? 어쩐지 이 모순적인 양반은 그것을 뜨겁게 원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Suzanne Fournier-Schlegel – Festival Assist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