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선〉은 도널드 트럼프의 재선 여부에 이목이 집중되었던 지난 미국 대통령 선거와 나란히 진행된 연방 하원의원 캠페인을 따라가면서 미국 전역에서 한국계 미국인 후보로 출마했던 다섯 후보의 행적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캘리포니아의 한인타운에 출마한 신출내기 청년 정치인 데이비드 김, 주한미군으로 한국을 다녀간 흑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메릴린 스트리클런드(한국 이름 ‘순자’), 미국 정가에서도 이름이 꽤 알려진 성공한 정치인 앤디 김, 실패의 경험을 딛고 지역 사회의 신망을 얻어가고 있는 공화당 소속의 여성 정치인 미셸 박 스틸과 영 김이 그 사람들이다. 보수와 진보로 갈라진 정치적 기반, 미국과 한국이 연결되어 있는 정치 현안에 대한 의견들, 뚜렷하게 나뉜 신념의 간극에도 불구하고 한인 공동체의 권익 실현을 위해 모색하는 저들의 공동 대응 방식 등이 서사의 초점이 된다.

 

한인 정치가들의 삶을 들여다보기

미국의 정치적 상황과 한인 공동체의 디아스포라 경험, 이민 공동체의 동시대적 의제 등을 횡단하는 이 다큐멘터리의 미덕은 관찰자로서의 거리감을 지키기 위해 애쓴 흔적에 있다. 쿠바 한인들의 디아스포라 역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헤로니모〉(2019)를 연출했던 전후석 감독은 자신이 선택한 관찰 형식에 입각하여 민주당과 공화당 후보들의 생각을 균형감 있게 수록하고, 캠프의 풍경, 거리 홍보전, 열의에 찬 청년 데이비드 김이 그의 작고 어수선한 아파트에서 보내는 시간 따위를 선명한 논평이나 분석 없이 드러낸다. 평범한 선거 캠페인 스토리 안에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은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이유는 다섯 명의 후보들 가운데 주인공에 해당하는 데이비드가 외견상 이상적이지 않은 후보자로 보인다는 점 때문이다. 30대 후반의 변호사인 데이비드는 보수적인 목회자 아버지 슬하에서, 때때로 가정폭력까지 감내하면서 성장한 인물이다. 기득권화된 현직 민주당 후보를 비판하며 기본소득, 이민자들의 권리 실현 등 진보적 정책들을 공약하는 데이비드는 정치적 경험이나 대중적 인지도가 없다. 다인종 사회 안에서 핍박받을 만한 다양한 조건을 갖춘 그는 흑인 남자친구와 동거하고 있지만 보수적인 한인 커뮤니티의 시선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공적으로 커밍아웃하지 못한 처지에 있다. 진지하고 열정적이고 겸손한 그는 기업들로부터 거액의 후원을 받는 나태한 정치인에 투표할 것인지, 공동체에 헌신할 젊은 일꾼을 선택할 것인지를 결정 짓는 힘든 경쟁에서 대안이 되기 위해 풀뿌리 민주주의의 시험대 위에 선다.

 

기나긴 레이스의 종착점

선거 캠페인의 과정을 시간순으로 따라가는 정치 다큐멘터리가 도달하는 종착점은 우군이 적어 보이는 데이비드가 이 뜨거운 레이스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인가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위계가 존재하는 정글 같은 정치판에서 호소력 있는 정책과 겸손함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는 낙선한 정치 초년병에게 이 영화가 보여주고 싶은 가치가 응축돼 있다. 전후석 감독은 정치적 견해가 다른 정치인들이 팬데믹 이후 사회 문제화되고 있는 아시아계 이민자들에 대한 증오 범죄를 방지하기 위한 ‘아시안혐오금지법’을 통과시킨 사실을 엔딩에 배치함으로써 통합과 연대의 가치를 주장한다. 민주주의의 본질을 질문하는 선거의 대의에 답하기 위해 〈초선〉은 깨알 같은 차이들이 이념이 된 사회 안에서 그 간격을 넘어 대화하고 손잡는 것이 정치의 본분이라는 응당한 진리를 깨닫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