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스피노자의 명언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의 뮤지션 버전이라고 할까. 언더그라운드 뮤지션 페도르 오제로프는 곧 3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거라는 뉴스에도 아랑곳없이 대중의 마음을 움직일 신곡을 구상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벨라루스의 민스크 출신으로 현재는 폴란드 바르샤바에 거주하며 영화 작업을 하는 유리 세마시코 감독은 장편 데뷔작 〈페도르 오제로프의 마지막 노래〉를 만들면서 극 중 페도르 오제로프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투영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동맹이자 조국인 벨라루스에서 망명한 그는 이 혼란한 시기에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무엇일까를 고민한다. 조국이 러시아와 손잡고 세계 질서를 위협하는 와중에 ‘나는 한 편의 영화를 만들겠다’는 신념으로 〈페도르 오제로프의 마지막 노래〉를 완성해 어지럽고 뒤죽박죽인 세상에서 영화가 할 수 있는 역할에 관해 나름의 답을 내렸다. 그래서 그에게 물은 데뷔작에 관한 질문은 당연한 수순처럼 예술의 쓸모로 결말 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