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이 넉넉한 가죽 재킷 깊숙이 어깨를 숨긴 채, 이가는 홀로 차에 몸을 싣는다. 눈길이 향하는 곳은 끝없이 펼쳐진 도로. 애인과의 이별은 익숙한 모든 것에서 이가를 멀어지게 했고, 지금부터 이가는 목적지에 구애받지 않으며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작정인 듯하다. 하지만 주유소에서 우연히 만난 이선이 그 소박한 계획에 예기치 않은 균열을 낸다. 짐이라고는 배낭 하나가 전부인 여행자를 모른 척할 수 없어서 이가는 결국 조수석에 이선을 태우고, 그렇게 두 사람은 나란히 창밖을 바라보며 달리기 시작한다. 낯설고 불편한 동행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서히 다른 분위기를 띤다. 짧은 대화 속에서 그들은 서로를 조금씩 알아 가지만, 동시에 쉽게 드러내지 못할 저마다의 사연과 마주하기도 한다. 두 사람은 과연 어디로 향하는 걸까. 도착하고 나면 떠난 이유도 찾게 될까. 이자벨라 브루네커 감독은 장편 데뷔작 〈슈거랜드〉에서 말과 침묵, 음악과 풍경을 경유하는 여정을 그린다. 영화는 화려한 볼거리나 극적인 사건 대신에 “순간을 포착”하며 “모종의 에너지”를 탐구하는 데 힘을 기울인다. 마치 차창 밖 풍경처럼 쉼 없이 움직이는, 헤매고 춤추고 싸우는 둘을 따라가다 보면 이가의 표현대로 아름답고도 두려운 무언가와 문득 마주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