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2일 시나리오 작가 송길한 선생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그가 생전에 한 말이 떠올랐다. 전주국제영화제가 기획한 시나리오 작가 송길한 회고전을 준비하던 2017년 겨울, 송길한의 평창동 집 근처 막걸리 주점에서 〈비구니〉를 화제로 삼아 대화를 나누다가 한 이야기이다. “쓰레기 같은 세상은 교과서에 나오는 대로 돌아가지 않아. 언제나 우리의 기대를 배신하는 거야.” 어떤 맥락에서 이런 말이 나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치밀하게 주장된 거짓에 맞서고, 소외된 정체성의 무게를 직시한 이 작가에게 어울리는 일갈이었다. 그에 관한 단행본과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나는 송길한이 쓴 많은 계시적인 각본에 이와 같은 시각이 담겨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