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주 ESCAPE 감독 아다치 마사오 ADACHI Masao | Japan | 2025 | 114min | Fiction | 마스터즈 Masters
아다치 마사오는 실험영화, 정치적인 핑크영화, 풍경론에 입각한 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형식의 영화를 만들었고, 배우, 시나리오 작가, 감독 등 열정적인 활동을 지속해 왔다. 무엇보다 그는 평생에 걸쳐 혁명을 실천하고 있는 뼛속까지 혁명가인 사람이고, 그가 만든 영화는 정치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주〉를 보면 어쩔 수 없이 기리시마 사토시의 삶 곳곳에 아다치 마사오가 품어 온 삶과 혁명과 질문들이 겹쳐져 있음을 알게 된다. 그의 가장 내밀하고 정치적인 영화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고, 이에 대한 그의 명쾌하고 단호한 답변이 도착했다. 아울러 아다치 마사오가 인터뷰 말미에 답한 “현실 변혁의 절박함을 표현”하는 ‘영화일기’가 기다려진다. 그의 영속적인 혁명에의 의지는 영화를 통해 이어질 것이라 믿는다.
베이루트에서 일본으로 돌아온 후 36년만의 복귀작 〈죄수/테러리스트 The Prisoner/Terrorist〉(2007)를 공개했고 이후 〈단식 광대〉(2016)와 〈레볼루션 +1〉(2022)에 이어 〈도주〉를 최근에 만들었다. 〈죄수/테러리스트〉가 적군파 활동가 오카모토 고조에 대한 영화였고, 이번 영화는 동아시아반일무장전선의 전갈부대 소속 기리시마 사토시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인물의 어떤 면이 당신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는지, 그의 내면을 통해 어떤 것을 발견했는지 듣고 싶다.
49년간이나 도망에 성공했던 인물이 죽음을 앞두고 일부러 본명을 밝힌 점에 강렬한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왜 이름을 밝혔을지 추측하던 중에 기리시마 사토시가 자신의 죽음을 매개로 ‘도주=투쟁’을 실행할 수 있었던 것을 강하게 표명하고 싶었기 때문임을 알고, 매우 감동했다. 그 의사 표현은 자신의 동료들, 그리고 아직 ‘도망’ 하고 있는 수많은 유사한 삶의 방식을 강요받는 이들에게 보내는 연대의 메시지 표명임을 깨달았다. 즉, 그는 당시 젊은이들이 가지고 있던 공통의 정치사상적인 감정, “연대를 구하며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를 도망 생활 중 관철해야 할 행동 원칙으로 실천해 왔고, 마침내 경찰과의 쫓고 쫓기는 단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투쟁의 단계로 향하는 희망을 나타낸 것이라 추측했다. 이러한 그의 메시지 표명에 대해, 영화를 표현 수단으로 삼고 있는 나로서는 즉각 응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죽음을 매개로 표현한다’는 궁극적으로 큰 표현 의도에 답하고자 했다.
하자마 본사 폭탄 테러에 가담한 극 중 우치다 히로시는 49년간 도망다니다 2024년 사망했고 죽을 때 비로소 자신이 누구인지 밝혔다. 영화는 그가 활동하던 때는 짧게 다루지만 그의 도주에 대해 집중적으로 보여 준다. 그가 병상에 누워 있는 동안 그의 기억과 환상에서 마주하게 되는 끈질긴 질문과 자신의 삶에 대해 1인칭 내레이션으로 설명한다. 끝까지 도주하며 살아가는 것과 계속 달려가는 것이 투쟁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도주 과정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는데, 도주 생활을 영화화할 때 어떤 점에 중점을 두었는지 듣고 싶다.
기리시마 사토시가 오랜 시간 도망 생활을 유지한 것은 보통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저 막연하게 ‘숨으며 살아간다’는 것만으로도 그 괴로움과 고통은 매일 매 시간 한계에 다다르며, 다시 한번 의지를 다지지 않으면 생활을 계속할 수 없었을 테다. 보통이라면 자수해서 편해지는 길을 택했겠지만 기리시마는 붙잡히지 않는 것을 삶의 제1 원칙으로 삼을 정도로 자신을 단련시켜 나갔다. 끝까지 도망치는 것이 동료와의 연대 의지를 실행하는 것이라고 계속 스스로를 갈고 닦았다. 자신이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도망치는 것 자체를 임무로 삼는 방향으로 자신과 계속해서 싸워 왔다. 고독 속에서 괴로움과 고통을 마주하며, ‘이대로 괜찮은가? 잘못된 것인가?’ 자문자답하며 삶의 방식을 성찰하는 독자적인 도덕관의 세계를 구축한 것이다. 즉, ‘도주가 곧 투쟁’이라는 도덕관을 갈고 닦았다. 나는 그 모습을 그려 내는 데 가장 중점을 두었다.
〈레볼루션 +1〉에 이어 이번에도 실존 인물의 삶을 다룬 극영화를 만들었다. 두 영화 모두 1인칭 내레이션을 통해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불안과 고통을 풀어낸다. 하지만 전작과 달리 〈도주〉는 나와 나의 대면이라는 테마가 더 강조된다. 길을 걷다가 만난 젊은 기리시마와 노년의 기리시마가 대화하는 장면과, 승려 기리시마와의 대화에서 혁명과 삶의 방식과 도주가 어떻게 연관되는지 드러나는 것 같다. 나와의 대면을 환상이나 역할극처럼 표현한 이유가 궁금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정보 과잉의 현대를 살아가는 자에게 있어, 범람하는 정보를 가려내는 능력은 일상적인 생활 감정에서 태어나는 사회 비판을 자문자답하며 단련해 나감으로써 체득할 수 있다. 즉, 개인과 사회의 관계성을 사고하는 자기 해석 작업을 통해 세상을 꿰뚫어 보는 것, 그것을 계속함으로써 사상적인 자기비판 투쟁을 일상생활의 기본으로 삼을 수 있다. 그것을 사회 변혁 사상으로서 단련하는 것이, 지금을 살아가는 젊은이에게 있어 중요한 자기 인식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자기비판의 투쟁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으로, 그것을 영화의 표현 방법으로 계속 실험해 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기리시마의 수배 전단지에 실린 웃는 얼굴이 인상적이다. 그의 방에 불쑥 나타난 선배가 도주가 힘들더라도 투쟁 속에 기쁨이 있다는 걸 보여달라고 말한다. 당신은 영화에서 지친 기색이 역력한 기리시마의 얼굴을 자주 클로즈업 한다. 그의 미소와 눈물을 통해 회한의 감정이 드러난다. 클로즈업으로 얼굴을 담는 게 왜 중요하다고 생각했는지 듣고 싶다.
평소보다 클로즈업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기리시마 사토시가 그의 죽음을 매개로 해서 표현하고자 했던 ‘도주=투쟁’이라는 메시지는 새로운 투쟁의 단계로서의 연대를 호소하는 필사적인 선언이었을 것이므로, 그 순간을 응축시키고자 사용한 방법이다. 기리시마 사토시의 심정을 제3자의 시점에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또한 공감하면서도 공유를 구하는 수단으로 밀착감을 강조하였다. 자문자답 중에 망상으로 등장하는 선배가 “도주 속에서의 기쁨을 꼭 보여 주기 바란다”는 강렬한 요청을 남긴다. 이 요청을 관객이 남의 일이 아니라 자신의 일로 받아들일수 있도록 하기 위한 중요한 실험 중 하나였다.
〈도주〉는 실패한 혁명과 사람들이 죽은 것에 대한 죄책감을 안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다. 또한 끊임없이 자신의 신념에 대해 회의하면서도 끝까지 신념을 실천하고 임무를 충실하게 이행하며 혁명을 기다리는 사람의 이야기다. 무엇보다 고립된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기리시마가 신사를 오르고 길을 걷고 방 안에 혼자 있는 장면도 있지만 영화는 그가 타인과 함께 있는 장면을 더 많이 보여 준다. 영화에는 고립과 외로움과 회의가 신념이나 확신보다 짙게 배어 있는 것 같다. 혁명에 뛰어들어 온몸으로 부딪혀 온 당신의 삶을 생각하면 기리시마의 고백이 더욱 절실하게 들린다.
이번 작품은 기리시마 사토시가 49년간의 투쟁으로서의 도주 속에서 자문자답하며 갈고닦은 혁명적 행동의 종합적인 결론을 그리려고 했다. 그 중요한 내용은 승려 모습의 분신과 문답을 통해 말하고 있다. 정치주의적 관념론이 아닌 일상생활 속 고뇌(승려는 ‘번뇌’ 라는 단어로 표현)를 포함한 혁명에 대한 확신을 재구축해 나가는 영속 혁명에 대한 ‘확신’이야말로 중요하다고 말하는 장면이다. 이 영화는 가장 중요한 정치적 선언을 그리려고 했다. 즉 나는 정치주의적이지 않으면서 무엇보다 정치성이 높은 메시지를 정면으로 영화화했다.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한신아와이 대지진, 도쿄 지하철 사린 테러, 에키다 유키코 송환, 다카오 히모리의 자살, 가자 지구 폭격, 동일본 대지진, 다이도지 마사시의 죽음이 뉴스 보도 화면이나 신문, 소책자를 통해 제시된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병실의 천장이나 벽, 커튼에 비치는 뉴스 화면이다. 영화 스크린처럼 기리시마를 위해 펼쳐 놓은 기록 매체의 표현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듣고 싶다.
기리시마 사토시는 일상생활 속 음악 장면, 즉 자신의 방에서 록을 들을 때, 라이브하우스에서 밴드 음악을 즐기며 때로는 흥에 겨워 춤을 추고 스스로 악기를 연주할 때 유일하게 자유와 해방감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항상 일본의 사회적인 변화나 정치경제 상황을 민감하게 관찰하고 반응하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넘길 수밖에 없었던 분함을 쌓아 갔던 것 같다. 그 고립감을 시간의 경과와 함께 일체적으로 표현하려는 실험적 시도였다.
영화 초반에 일본이 아이누, 류큐, 타이완, 중국, 한국, 동남아시아를 점령하고 약탈하고 착취했다는 기리시마의 내레이션이 들린다. 제국주의와 군국주의, 천황제에 대한 비판적 견해가 〈도주〉의 시작점이란 생각이 든다. 당신이 겪은 60~70년대 격동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더 이상 나빠질 것이 없을 만큼 폭력과 혐오가 만연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현재 영화가 시도하고 실천할 수 있는 혁명의 구체적 활동에 대한 의견이 궁금하다.
영화는 지금도 혁명에 대한 ‘의식 혁명’에 매우 유효한 표현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혁명은 사람들이 고통스러운 일상생활을 초래하는 근거를 명확히 하고, 그 근거를 변혁시키려는 의식을 강화함으로써 비로소 시작되고 발전시킬 수 있다. 이것은 현대 세계의 정치와 경제의 바닥이 무너져 붕괴 상태에 있는 정황에서도 전혀 변하지 않는 원리다. 즉, 현대의 전쟁은 금융 자본가와 그 하수인인 국가 정치가들이 자신들의 편의를 위해 적을 설정하고, 폭력과 증오를 부추겨 비인간성의 극치를 만들어 낸다. 그 금융 자본가들과 하수인들에게 이의를 제기하고 반항하며, 새로운 인간성 회복의 방향으로 연대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다. 이를 위해 사람들의 고통의 근거를 만들어 낸 자들을 명확히 하고, 사람들이 본래 지니고 있는 새로운 사회를 열어 갈 가능성을 일상의 생활 감정이나 의식으로 자각할 수 있도록 도발하는 것이 중요해질 것이다. 커다란 혁명 이야기를 말하는 것만이 아니라, 개개인의 의식 개혁의 가능성을 직접 제안할 수 있는 영화 표현은 앞으로도 강력한 표현 수단으로 남을 거라 생각한다. 예를 들어, 게릴라가 새로운 싸움을 열어 가기 위한 무기로 총을 사용하는 것처럼, 나는 카메라와 영화 표현을 통해 의식 혁명을 영원히 이어 갈 생각이다. 영화는 사람들의 공존과 연대를 강화하는 의식 혁명에 있어 여전히 유효한 무기로 계속될 것이라 믿는다.
아베의 암살범 야마가미 데쓰야를 다룬 〈레볼루션 +1〉은 매우 촉박한 시간을 감수하면서 만들어지고 공개되었다. 〈도주〉의 주인공 기리시마 사토시도 작년에 사망한 후 영화화했다. 두 영화 모두 사안의 중요성을 고려한 것이란 생각이 든다. 마치 시대를 따라잡지 못하고 뒤처진 영화에 대한 경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당신은 지금, 영화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을 중요하게 여기는 듯하다. 이토록 급박하게 영화를 만들면서 동시대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목표는 무엇인가.
현대 세계가 던지는 과제에 직접 맞서는 영화를 계속 만들고 싶다. 그건 내가 현대의 정황을 비판하고자 하는 표현자로서의 욕구이며, 반드시 모든 영화가 그러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현대를 되짚어 보기 위해 역사적 과제를 해명하거나 사회적 부조리에 대한 해답을 차분히 추구하는 훌륭한 영화를 만드는 것도 중요한 작업이다. 요컨대 시대가 내포하는 모순적인 상황을 바꾸려는 메시지를 발신하는 영화라면 좋다는 것이다. 나는 전작 〈레볼루션 +1〉과 이번 〈도주〉에서 사회적으로 사건성이 높은 과제에 연관된 인물, 한 사람의 젊은이가 스스로 삶의 방식을 되묻는 모습이 의미하는 바를 사람들과 함께 받아들이고자 하는 마음을 메시지로 삼았다. 그리고 그것을 빠르게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영화라는 표현 방식을 택했다. 그 이유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젊은이들이 살기 어려운 이 사회를 조금이라도 빨리 변혁해야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약칭: 연쇄살인마〉가 상영되고 ‘풍경론’이 한국 관객에게 소개되었다. 풍경론은 한국의 젊은 감독들의 실험영화와 다큐멘터리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다큐멘터리를 다시 만들 계획이 있는지, 팔레스타인에서 기록한 영상은 영원히 볼 수 없는 것인지도 궁금하다.
이 답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학살을 멈추지 않고, 제노사이드 범죄를 계속 강화하고 있다. 살아남은 가자 주민들은 목숨을 걸고 눈앞에서 벌어지는 학살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며, 어떻게든 현 상황을 전 세계 사람들에게 전하고 “학살을 멈춰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과거, 미국의 베트남 침략 전쟁 시기에 전장의 취재 기자들이 미군에 의한 민중 학살 장면을 미국과 세계 민중에게 직접 전달할 수 있게 되면서, “베트남 민중을 학살하지 말라!”는 전 지구적 규모의 ‘베트남에 평화를!’ 운동에 대한 의식 고양을 불러일으켰다. 다큐멘터리 영상은 이처럼 무한한 힘을 내장하고 있다. 그것은 촬영자 주체와 촬영 대상 간의 긴장 관계가 엮어 내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다큐멘터리 작품들 대부분은 촬영 대상(현실)을 잘 응시하지만 대상 주변을 어루만지는 듯한 표현에 그치고, 촬영 주체와 현실 혹은 촬영 대상과의 관계를 변화시키거나 발전시키는 표현 실험이 이루어지지 않으며, 불확실한 표현으로 되돌아가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경향에 경고하기 위해 나 자신도 일상생활 속에서 호소해야 할 현실 변혁의 절실함을 표현하는 ‘일기영화’를 한번 만들어 볼까 생각 중이다. 또 하나의 질문에 대한 답변. 나의 게릴라 활동 시절의 필름 및 비디오 기록 영상 아카이브는 안타깝게도 1982년에서 84년 사이 이스라엘 공군의 공격을 받은 건물 안에서 모두 파괴되어 버렸다. 따라서 팔레스타인영화보관소(Palestine Film Archive)에 기증한 것 외에는 내 수중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아 상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