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어 CLEAR 감독 심형준 SHIM Hyeongjun | Korea | 2025 | 67min | Fiction | 코리안시네마 Korean Cinema
〈클리어〉는 다큐멘터리와 SF 판타지를 오가고, 바다와 산속 고요한 풍경을 넘나들며 지구인과 외계인의 시선으로 환경문제를 바라보는 자유분방한 영화다. 지난해 다큐멘터리 〈안녕, 할부지〉(2024, 토마스 고 공동연출)로 영화계에 안착한 후, 두 번째 영화 〈클리어〉를 들고 전주에 당도한 심형준 감독에게 영화의 이모저모를 물었다.
그동안 사진, 광고, 뮤직비디오부터 예능, 다큐멘터리까지 대중예술 전 장르를 고루 섭렵하며 다양한 분야에서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독립영화 〈클리어〉는 창작자로서 어떤 의미의 도전이었나.
다큐멘터리 〈안녕, 할부지〉로 본의 아니게 첫 상업영화 데뷔를 하게 됐다. 다큐멘터리를 사랑하지만 차기작은 스토리가 있는 극영화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갑자기 동떨어진 장르를 하기보다는 첫 영화에서 보여 준 다큐적인 요소를 가미하고 싶었고, 다만 여기에 상상을 더한 실험적이고 작가주의적인 시도를 해보자 싶었다. 〈클리어〉는 내 멋대로 한 영화, 보여 줄 수 있는 것을 마음껏 보여 준 영화다. 그동안 나의 의도를 드러내기보다 (대중 콘텐츠 창작자로서) 자본에 끌려다니는 것에 어느 정도 지치기도 했는데, 오랜만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온전히 풀어낼 수 있었다.
이번 영화는 국제 환경보호단체 그린피스와 후지필름 일렉트로닉 이미징 코리아의 지원을 받았다. 그린피스는 주제적 부분에서, 후지필름은 제작과 기술적인 부분에서 작품의 기획과 완성에 도움을 주었을 것 같다. 구체적으로 어떤 교감과 지원이 있었나?
창작자로서 ‘환경’이라는 영감을 처음 받은 것이 그린피스였다. 그린피스와는 이날치,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와 함께 작업한 후쿠시마 오염수 관련 뮤직비디오를 계기로 인연을 맺게 됐는데, 뉴스를 통해서 접하기만 했지 직접 액션을 취할 기회가 없던 나에게 그린피스가 환경 이슈에 뛰어들 기회를 준 셈이다. 또 그린피스 뮤직비디오 이후 〈안녕, 할부지〉를 만들며 팬더들의 서식지 파괴 문제 등을 접하게 되면서 환경문제에 관해 조금씩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언젠가 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고, 그린피스 인터내셔널의 환경감시선 레인보우 워리어호의 ‘제로플라스틱 항해’(2024년 11월, 부산에서 열린 국제 플라스틱 협약 협상회의에 참석하는 세계 지도자들에게 플라스틱 생산 감축 등 협약을 촉구하기 위해 한 행동)가 〈클리어〉의 소재인 ‘플라스틱’으로 이어지게 했다. 영화에 등장한 레인보우 워리어호는 이제까지 국내외 유명인이 많이 탑승했지만 브이로그와 같은 형태로만 공개가 되어 왔다. 그런데 〈클리어〉에서 최초로 그린피스 크루들과 자원봉사자들이 모두 출연해 배의 이곳저곳까지 깊숙이 들어간다. 모든 것을 공개하며 촬영에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어서 무척 감사하다. 후지필름에서는 〈클리어〉의 제작비 대부분과 촬영 장비를 지원해 주었다. 또한 프로젝트 초기, 아무것도 없던 기획 단계부터 영화 완성까지 실무 전반에 걸쳐 프로듀서 역할부터 연출팀의 역할까지,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을 도와 주었다. 그럼에도 창작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하시면 된다”고 해주어서, 정말 내가 원하는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
그린피스 환경감시선에서 배우이자 뮤지션인 김푸름이 하룻밤을 보내는 파트 1과, 외계인 주영의 여정을 그린 파트 2가 서로 다른 형식과 이야기로 전개되다 끝내 하나의 줄기로 모아진다. 서로 다른 것들의 연결 고리를 만들어 가며 이야기를 구성하는 과정은 어땠나?
기본적으로 파트 1은 바다에 대한 이야기, 파트 2는 땅에서의 이야기로 틀을 잡았다. 파트 1은 구체적인 시나리오도, 사전 답사도 없이 현장에서 바로 촬영을 시작해야 했는데, 다큐멘터리적인 요소를 담으면서도 머릿속에 구상으로만 있던 파트 2로 이어지는 장치를 적절하게 집어넣어야 하는 작업이 어려웠다. 반면 파트 2는 완전히 스토리를 잡고 가고 싶었다. 다만 다큐 형식의 파트 1과 붙었을 때, 기법도 템포도 다르지만 두 이야기가 다른 영화로 보이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했다. 픽션과 논픽션을 자연스럽게 이어서 다른 영화인 듯하면서도 하나의 영화로 보이게 하는 것에 가장 신경 썼다. 덕분에 평소에 해보고 싶었던 톤을 다양하게 실험해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배우 김푸름과 이주영은 영화의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두 사람을 캐스팅하게 된 과정과 이유, 그리고 연기 디렉팅은 어떻게 했는지 궁금하다.
김푸름 배우는 〈안녕, 할부지〉의 OST에 뮤지션으로 참여하게 되어 만났다. 그가 출연한 오디션 프로그램 〈청춘스타〉(채널A)도 재미있게 봤고, 나이에 비해 어마어마한 감성을 가진 뮤지션일 뿐 아니라 재미있는 연기 필모도 있어서 캐스팅하게 됐다. 영화에서 김푸름은 순수한 아티스트, 십 대, 다음 세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김푸름의 세대가 우리 세대가 망쳐 놓은 환경을 조금이나마 복구할 수 있는 세대라고 생각해 그를 그린피스 환경감시선에 오르는 인물로 선택했다. 이주영 배우는 이충현 감독의 〈몸값〉(2015)이라는 영화를 통해 알게 됐는데, 실제 사기를 치는 고등학생인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연기가 신선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영화 〈독전〉(2018)에서도 신스틸러로서 어마어마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그래서 늘 머릿속에 담아 두었는데, 우연히 잡지 〈오보이 OhBoy!〉에서 진행한 행사에서 만나게 되어 영화 출연을 제안하게 되었다. 김푸름과 이주영은 둘 다 순수하고 각자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는 배우다. 김푸름은 날것의 십 대 느낌, 이주영은 있는 그대로의 개성이 좋아서 오히려 나의 디렉션이 그들의 개성을 해칠까 봐 조심스러웠다. 각자 본인만의 색깔이 나타날 수 있도록 열어 두고 싶어 배우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아이디어를 받아들였고, 캐릭터를 잡을 때도 의견을 많이 반영했다.
특히 이주영 배우는 물리적으로 힘든 촬영이 많았을 듯하다. 어떤 에피소드가 있었나?
나흘간 촬영한 파트 2는 꽤 순조로웠다. 다만 이주영 배우가 콘트라베이스를 메고 다니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데, 악기가 생각보다 많이 무거워서 깜짝 놀랐다. 그냥 조금 무거운 기타 정도겠거니 생각했는데 촬영 사이에 한번 메 봤더니 악기가 아니라 가구를 업는 느낌이더라. 그 무거운 걸 들고 계단을 오르고 산을 오르고 내리고…. 때론 의인화된 콘트라베이스를 업기도 했다. 그녀의 체력에 새삼 놀랐다. 또 파트 2에서는 외계인 주영이 플라스틱 컵을 씹어 먹는 장면도 나오는데, 식용 재료로 특수 제작한 컵을 씹어 보니 마치 본드를 입에 넣는 느낌이라 상당히 역했다. 캐릭터를 소화하느라 정말 힘들었을 텐데, 모든 장면을 훌륭하게 소화해 주었다.
전주국제영화제를 통해 관객들과 만나게 된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 〈클리어〉를 어떻게 소개하고 싶나?
환경에 대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고 해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환경 다큐멘터리 같은 영화는 아니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다. 나만의 방식으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것을 통해 영화를 본 관객의 머릿속에서 약간의 퍼즐이 맞춰질 수도, 물음표가 생길 수도 있지만 감독의 의도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듯하다. 영화를 본 여러분 스스로 각자의 퍼즐을 맞춰 가면서 생각을 정리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관객들이 영화를 보기 전과 후에 환경과 플라스틱, 그리고 일회용기를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쯤 달라질 수 있다면 영화의 목적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클리어〉를 계기로 창작자로서 더 확장하고 싶은 분야, 또는 주제가 있을까? 이번과 같은 독립영화 작업 경험이 차기작 혹은 차기 프로젝트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사실 나는 외계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우주, 외계인의 존재에 대해 다뤄 보고 싶고, 특히 우리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는 외계인의 이야기를 표현해 보고 싶다. 우리도 그들에게는 외계인이지 않을까? SF 영화 중에 〈케이 팩스 K-PAX〉(2001)나 〈컨택트 Arrival〉(2016)를 좋아하는데, 기회가 된다면 이처럼 차분하고 담백한 느낌의 SF를 해보고 싶다. 또 앞으로도 적절한 균형을 찾으면서 독립, 상업을 가리지 않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좋은 분들과 계속해서 작품을 만들어 나갈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