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봄의 축제’로, 한 해의 영화제를 시작하는 ‘선도적인 영화제’로 여러분을 초대해 오고 있는 전주국제영화제의 스물여섯 번째 개막이 다가옵니다. 올해 영화제를 준비하면서는 특히 어려운 일들이 많았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의 갈등과 위기로 인해 과연 즐거운 마음으로 집중해서 프로그래밍을 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하지만 ‘그래도 영화는 계속됩니다. 지난 겨울, 여러 가지 이유로 움츠렸던 마음을 훌훌 털고 저희들이 준비한 영화와, 또 ‘전주의 봄’과 만나 주시기 바랍니다.”전진수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의 강조점은?

내가 맡은 섹션에서 이야기하자면 ‘프론트라인 섹션의 강화’라고 할 수 있다. 프론트라인은 도발적인 소재와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내용을 보여 주는 작품들을 소개하는 섹션으로 많은 관심을 받아 왔고, 전주국제영화제의 성격에 잘 어울리는 섹션으로 프로그램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올해는 프론트라인 섹션 작품을 전보다 늘렸고, ‘다시, 민주주의로’라는 별도의 미니 섹션까지 구성하여 더욱 강조하였다.

특히 중점을 둔 사항이 있다면?

2024년 12월이면 영화제 프로그래밍이 한창 때라 봐야 할 영화들을 정신없이 보고 있던 시기였다. 하지만 계엄 이후 지금까지도 우리나라의 정치는 혼돈 속에 빠져 있고, 영화제 준비로 한참 바쁜 시기에 뉴스와 각종 정치 프로그램들을 보느라 많은 시간을 빼앗기며 정말 ‘뭐라도’ 하고 싶어졌다. 그렇게 준비한 프로그램이 ‘다시, 민주주의로’이다. 다른 여러 나라의 정치 사회상을 담은 작품들을 통해 아무쪼록 우리의 민주주의를 다시 돌아봤으면 한다.

관객에게 ‘강추’하고 싶은 상영작은?

〈폐허에서 파쿠르〉: ‘파쿠르’가 유일한 취미인 가자 지구의 청소년들을 담은 다큐멘터리이다. 폭격을 받아 허물어진 건물 잔해를 곡예하듯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이들의 모습은 슬프기도 하고, 묘한 감동을 주기도 한다.

〈슬로바키아의 희망, 주자나 차푸토바〉: 슬로바키아는 이웃 나라 체코만큼 우리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나라로, 역시 정치사회적으로 많은 불안 요소를 지닌 곳이다. 하지만 2019년부터 5년 동안 이 나라에는 주자나 차푸토바라는 훌륭한 여성 지도자가 있었다. ‘국민을 섬기겠다는 공약’에 충실하려고 노력했던 보기 드문 대통령을 가까이서 담은 다큐멘터리이다.

〈라몬과 라몬〉: ‘올해의 발견’이라고까지 말하기에는 너무 거창하지만,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페루 영화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영화제가 주는 즐거움임에 틀림없다. 〈라몬과 라몬〉은 팬데믹 시기,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고향에 모시려는 주인공과 우연히 만난 친구 사이의 우정을 섬세하게 그린 작품이다. 시네마페스트 섹션에서 상영되는 또 다른 페루 작품 〈퀸즈〉도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다.

프로그래머로 활동한 시기의 전주국제영화제를 자평해달라.

2020년부터 프로그래머로 일하면서 우선 모든 스태프와 함께 코로나 팬데믹을 겪었고, 그 어려움을 나름 잘 헤쳐 나갔다는 것은 잊을 수 없다. 전주는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국제영화제 가운데 매년 처음 열리는 큰 규모의 영화제다 보니 그 대처 방식이 다른 영화제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국내외의 젊은 감독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선보일 장을 마련해 주고 있다는 점은 점점 어려워져 가는 영화 제작 현실 속에서 더욱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점이다. 하지만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영화제의 예산은 오르는 물가에 비해 점점 줄어들고, 원하는 프로그램이나 해외 게스트의 초청 같은 부분에서도 아쉬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도 오랫동안 계획 중이던 ‘독립영화의 집’(독립영화 상영관) 공사가 시작되어 활력소가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앞으로 전주국제영화제는 무엇을 지향하며 나아가야 할까?

코로나 팬데믹 이후 지금까지 영화계의 변화는 엄청났다. OTT라는 플랫폼이 이렇게까지 빠르게 자리 잡을지, 그리고 극장이 이렇게까지 위협받을지 짐작한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문제는 앞으로도 이런 변화는 더 빠르고 급격하게 일어날 것이라는 점이다. 이런 시대에 영화제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다. 개인적으로 전주는 지금처럼 젊은 영화인들에게 계속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점점 더 그들의 작품을 보여 줄 공간이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음악이나 미술 등 다른 장르와 영상이 결합된 새로운 분야에도 눈을 돌려야 할 것이다. 극장이라는 플랫폼이 허물어지듯, 전통적인 장르에 집착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이 상업적인 방향으로 흘러서는 안 되겠지만.